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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194

《國土(국토)》 조태일, 창비시선 0002 어머님 곁에서 온갖 것이 남편을 닮은 둘쨋놈이 보고파서호남선 삼등 야간열차로육십 고개 오르듯 숨가쁘게 오셨다. 아들놈의 출판기념회 때는푸짐한 며느리와 나란히 앉아아직 안 가라앉은 숨소리 끝에다가방울방울 맺히는 눈물을내게만 사알짝 사알짝 보이시더니 타고난 시골솜씨 한철 만나셨다山一番地(산일번지)에 오셔서이불 빨고 양말 빨고 콧수건 빨고김치, 동치미, 고추장, 청국장 담그신다.양념보다 맛있는 사투리로 담그신다.          엄니, 엄니, 내려가실 때는요         비행기 태워드릴께,         안탈란다, 알탄란다, 값도 비싸고         이북으로 끌고 가면 어쩌 게야? 옆에서 며느리는 웃어쌓지만나는 허전하여 눈물만 나오네. 1971년 작품. 1968년에 태어난 사람은 조태일 시인의 가 찡하게 .. 2024. 5. 9.
《農舞(농무)》 신경림, 창비시선 0001 農舞(농무)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레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1971년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약 3,260만명이었으며, 농촌 인구는 .. 2024. 5. 9.
《그럴 때가 있다》 이정록, 창비시선 476 뱁새 시인   수컷은 보폭이 커야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 알잖여? 그게 나쁜 말이 아녀. 자꾸 찢어지다보면 겹겹 새살이 돋을 거 아닌감. 그 새살이 고살 거시기도 키우고 가슴팍 근육도 부풀리는 거여. 가랑이가 계속 찢어지다보면 다리는 어찌 되겄어. 당연히 황새 다리처럼 길쭉해지겄지. 다리 길어지고 근육 차오르면 날개는 자동으로 커지는 법이여. 뱁새가 황새 되는 거지. 구만리장천을 나는 붕새도 본디 뱁샛과여. 자네 고향이 황새울 아닌가? 그러니께 만해나 손곡 이달 선생 같은 큰 시인을 따르란 말이여. 뱁새들끼리 몰려댕기면 잘해야 때까치여. 그런데 수컷만 그렇겄어. 노래하는 것들은 다 본능적으루다 조류 감별사여. 시란 게 노래 아닌감? 이리 가까이 와봐. 사타구니 새살 좀 만져보게... 2024. 5. 8.
《슬픔이 택배로 왔다》 정호승, 창비시선 482 새해의 기도 올해도 저를 고통의 방법으로 사랑해주세요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결코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그렇지만 올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마소서 올해도 저를 쓰러뜨려주세요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쓰러뜨리신다는 것을 이제 아오니올해도 저를 거침없이 쓰러뜨려주세요그렇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쓰러뜨리지는 말아주소서 올해도 저를 분노에 떨지 않도록 해주세요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하기보다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세요그렇지만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을 정도로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게 하소서 올해도 저에게 상처 준 자들을 용서하게 해주세요용서할 수 없어도 미워하지는 않게 해주세요그렇지만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받지 않게 해주소서무엇보.. 2024. 5. 6.
《모른 다는 건 멋진 거야》 글 아니카 해리스, 그림 존 로, 옮김 공민희 우리는 배우고 발견하기 위해 살아요.그리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지요.모르는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질문할 수 있어요.궁금해하며 질문하다 보면 조금씩 우리의 생각이 널리 뻗어나가요. 2024. 5. 5.
《김남주 농부의 밤》 김남주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노래할 때나는 자유이다땀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피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 칠때 나는 자유이다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사람들은 맨날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제 자신을 속이고서 1972년 유신 헌법이 선포되자 이강 등과 전국 최초로 반유신, 반파쇼 지하신문인 을 제작. 지는 주로 유신 독재에 대한 고발을 주제로 다뤘고 후에는 전국적인 신문으로 확산시키고자 로 명칭을 바꾸기도 했다.. 2024.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