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book)/박노해2 《노동의 새벽》 박노해, 풀빛판화시선5 (1984년 9월)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으로차가운 소주를 붓는다아이러다간 오래 못가지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기름투성이 체력전을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오래 못가도끝내 못가도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스물아홉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아 그러나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이 질긴 목숨을,가난의 멍에를,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가운 소주를 붓는다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세근세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2024. 6. 22. 《눈물꽃 소년》, 박노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소년 소녀가 살아있다. 돌아보면, 인간에게 있어 평생을 지속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소년 소녀 시절이다. 인생 전체를 비추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의 틀이 짜여지고, 신생(新生)의 땅에 무언가 비밀스레 새겨지며 길이 나버리는 때, 단 한 번뿐이고 단 하나뿐인 자기만의 길을 번쩍, 예감하고 저 광대한 세상으로 걸어나갈 근원의 힘을 기르는 때. 그때 내 안에 새겨진 내면의 느낌이, 결정적 사건과 불꽃의 만남이, 일생에 걸쳐 나를 밀어간다. 내가 커 나온 시대는 어두웠고 가난했고 슬픔이 많았다. 다행이 자연과 인정(人情)과 시간은 충분했다. 그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난과 결여는 서로를 부르고 서로를 필요로 하게 했다. 쓸모 없는 존재는 한 명도 없었다. 노.. 2024. 3. 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