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book)/김용택5 《김용택 시인의 자갈길》 글 김용택, 그림 주리, 바우솔(2021년 7월) 어머니! 흙먼지 속을 걷고 있는어머니를 소리 내어 크게 부르고 싶었다. 의자 밑으로 허리를 숙였다.돈을 쥔 손을 폈다.돈이 땀에 젖어 있다.눈물이 왈칵 쏟아졌다.혼자니까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어깨를 들먹이며, 꺽꺽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점심도 굶은 어머니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오리 신작로 자갈길을 또 걸어야 한다.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육성회비를 내지 않은 사람 이름이 교문 앞 게시판에 붙은 지 3일째다.학교에 가자마자 집으로 돌려보내졌다.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자취집도 들르지 않고 집을 향했다.길은 비포장 자갈길 사십 리다. 2024. 11. 24. 《맑은 날》 김용택, 창비시선 0056, 1986년 8월 섬진강 22 - 누님의 손끝 누님. 누님 같은 가을입니다. 아침마다 안개가 떠나며 강물이 드러나고 어느 먼 곳에서 돌아온 듯 풀꽃들이 내 앞에 내 뒤에 깜짝깜짝 반가움으로 핍니다. 누님 같은 가을 강가에 서서 강 깊이 하늘거려 비치는 풀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누님을 떠올립니다. 물동이를 옆에 끼고 강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강물에 이르르면 누님은 동이 가득 남실남실 물을 길어 바가지물 물동이에 엎어 띄워놓고 언제나 그 징검다리 하나를 차지하고 머리를, 그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흘러가는 강물에 풀었었지요. 누님이 동이 가득 강물을 긷고 머리를 감는 동안 나는 물장난을 치며 징검다리를 두어 간씩 힘껏힘껏 뛰어다니거나 피라미들을 손으로 떠서 손사래로 살려주고 다시 떠서 살려주며 놀다가 문득 누님을 쳐다보면 노을은.. 2024. 6. 8. 《섬진강》 김용택, 창비시선0046, 1985년 1월 詩人(시인) 金龍澤(김용택)씨 수상. 6회 金洙映(김수영) 문학상 제 6회 金洙映(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金龍澤(김용택)씨 가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시집 「맑은 날」(창작사刊(간)). 전북 임실군 덕치면에서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金(김)씨는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에 시 「섬진강1」 등을 발표하며 데뷔한 신예 시인이다. 작년 첫 시집 「섬진강」을 냈으며, 지난 8월 제 2시집 「맑은 날」을 출간했다. 그의 시는 『시대 착오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관념을 배제하고 체험에 뿌리내린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청정한 서정성이 돋보인다』는 評(평)을 받았다. 지난 81년 도서출판 民音社(민음사)와 유족들이 공동제정한 金洙映(김수영) 문학상은 그동안 鄭喜成(정희성), 李晟馥(이성복.. 2024. 6. 5.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김용택, 창비시선 0360, 2013년 4월 달콤한 입술 작은 물고기들이 등을 내놓고 헤엄을 친다보리밭에서는 보리가 자라고 밀밭에서는 밀이 자라는 동안산을 내려온 저 감미로운 바람의 발길들,달빛 아래 누운 여인의 몸을 지난다.달콤한 키스같이 전체가 물들어오는, 이 어지러운 유혹의 입술,오! 그랬어.스무살 무렵이었지.나는 날마다 저문 들길 끝에서 있었어.어둠에 파묻힌 내 발목을 강물이 파갔어.비가 오고, 내 몸을 허물어가는 빗줄기들이 강물을 건너갔어. 그 흰 발목들,바람이 불면 눈을 감고 바람의 끝을 찾았지.얼굴을 스쳐지나가는 단내 나는 바람!나는 울었어. 외로웠다니까. 너를 부르면 내 전부가 딸려갔어.까만 돌처럼 쭈그려앉아 눈물을 흘렸어.그리움을 누르면 피어나던 어둠 속에 뜨거운 꽃잎들,말이 되지 않는 말들이 나를 괴롭혔어. 집요했어.바위 뒤 순한.. 2024. 6. 2.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김용택, 2019년 11월 는 김용택 시인이 72세(우리 나이)였던 해에 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은 시와 산문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대전 유성의 책방지기(주인장)가 시인을 만나러 간다고, 사인을 받아 올테니 그 때 책을 찾아가라고 했답니다. '해 져요 오늘 할 일은 다 하셨나요 나는 산 아래 있어요' 글 귀위 위에 제 이름과 날짜를 친필로 써주셨습니다. 옛날 시를 찾았다 아내가 맛있는 김치를 담갔다.돌나물과 물김치하고 국물이 찰박한 물김치를 담갔다.맛있다.병원에 갔다.밀려서 두 시간 동안 병원에 앉아 있었다.짜증이 여기저기에서 슬슬 기어나와내 얼굴로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얼굴을 자꾸 고쳤다.오늘은 옛날 시를 몇 편 더 찾았다.알고 보니, 내가 환갑 무렵에 쓴 동네 이야기들이다.딸이 이 시는 영화 같다고 한다.「가을」과.. 2024. 6. 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