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book)/허수경1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문학과지성 시인선 0118 (1992년 5월) 불우한 악기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초라한 남녀는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노래하는 것 이곳에서 차를 타면일금 이 천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이 있다네왕릉 어느 한 켠에 그래, 저 초라한 벗은젖은 알몸들이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엉겨붙어 무너지다가문득 불쌍한 눈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굴곡진 몸의 능선이 마음의 능선이 되어왕릉 너머 어디 먼데를 먼저 가서그림처럼 앉아 있지 않겠는가 결국 악기여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또 좀 불우해서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허수경 시인의 '불우한 악기'는 삶의 불우함과 고독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비에 젖은 남녀가 서로 기.. 2024. 10. 2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