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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재구성》 안현미, 창비시선 306 와유(臥遊)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하게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봄비 내리는 밤 복숭아꽃(桃花, 도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도화주에 취하고 싶은 4월의 봄입니다. * 와유(臥遊):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臥遊山水(와유산수)는 옛 선비들이 방 안에 산수화를 걸어 놓고 누워서 상상 속의 절경 유람을 즐겼던 것을 뜻합니다. 이 별의 재규성 혹은 이별의 재구성     나하고 나 사이에 늙고 엉뚱.. 2024. 4. 29.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근화, 창비시선 402 대파에 대한 나의 이해   대파를 샀다. 중파도 쪽파도 재래종 파도 있었지만 대파를 샀다. 굵고 파랗다. 단단하고 하얗다. 맵고 끈적끈적하다. 대파다. 흙을 털고 씻었다. 부끄러운 것 같았다. 큰 칼을 들고 대파를 썰 차례다. 억울하면 슬픈 일을 생각하면 좋다. 도마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대파니까. 시장바구니에 삐죽 솟아오른 것이 대파였다. 설렁탕도 골뱅이도 없이 대파를 씹는다. 미끈거리고 아리다. 썰어서 그릇에 담는다. 대파여서 뿌듯하다. 종아리 같은 대파였으니까. 파밭의 푸른 기둥이었으니까. 뿌리를 화분에 심으면 솟아오르는 대파니까. 허공에 칼처럼 한번 휘둘렀으니까. 대파하고 파꽃이 피고 지면 알게 될까. 대파를, 뜨거운 찌개에 올려 숨 죽인 대파의 침묵을 어떻게 기록할까. 대파를 어떻게 만들 수.. 2024. 4. 28.
《호숫가 작은 집》 글 토머스 하딩, 그림 브리타 테켄트럽, 옮김 김하늬 지중해 해변 근방 가자 마을에는 벽돌 주택 한 채가 있습니다.거의 100년 전에 증조할아버지가 지으신 집입니다. 증조할아버지네 가족은 시온이 집권했을 때 강제로 이 집을 떠나야 했지만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2028년, 가자로 갔습니다.그리고 버려진 채 방치된 무너진 집을 발견했습니다.거기서부터 나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모았습니다.시온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가자 장벽이 세워졌다 무너진 때까지그곳에 살던 네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모은 것입니다.역사의 최전선에서 잊혀진 채 조용히 서 있던한 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2024. 4. 27.
《밥상 위의 안부》 이중기, 창비시선 206 는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 등을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이중기 시인의 시를 모아 2001년 출간한 시집입니다. 한국 농촌도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습니다. 특히,  1997년 국가 부도 사태와  IMF 구제 금융 시대,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는 농촌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고, 많은 농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7년 이후 농산물 가격 하락과 내수 시장의 침체, 농촌 인구의 감소 등 여러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사과 수출도 영향을 받아 수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이는 과수원 운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무렵 이중기 시인도 키우던 사과 밭을 갈아엎었습니다. 풋것이 돈이 된다  나, 매음굴 하나 알고 있네초록은 날것의 상쾌함을 가져사내들 풋것.. 2024. 4. 27.
《늑대의 선거》 다비드 칼리 글, 마칼리 클라벨레 그림, 김이슬 옮김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선거!새로운 후보 늑대는 금새 모두에게 주목받았어요.늑대 후보는 농장 동물 모드에게 친절했고,멋진 약속을 내걸었어요. 모두의 친구 파스칼항상 당신 곁에 있는 친구가 되겠습니다. 2024. 4. 26.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창비시선 204 해남 들에 노을 들어 노을 본다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해남 들 가운데를 지나다가들판 끝에 노을이 들어어찌할 수 없이서서 노을 본다노을 속의 새 본다새는내게로 오던 새도 아닌데 내게로 왔고노을은나를 떠메러 온 노을도 아닌데나를 떠메고 그러고도 한참을 더 저문다우리가 지금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저 노을 탓이다이제는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르지 말자고중얼거리며조금씩 조금씩 저문다해남 들에 노을이 들어 문득여러날 몫의 저녁을 한꺼번에 맞는다모두 모여서 가지런히잦아드는 저것으로할 수 있는 일이란가슴속까지 잡아당겨보는 일이다어쩌다가 이곳까지 내밀어진 생의 파란 발목들을덮어보는 일이다그렇게 한번 더퍼보는 것뿐이다내게 온 노을도 아닌데해남 들에 뜬 노을저 수천만 평의 무게로 내개로 와서내 뒤의 긴 그림자까.. 2024.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