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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시인더러》 조태일, 창비시선 0060 (1987년 3월) 깊은 잠 천년을 자야 깊은 잠이지한 시간쯤은 일보다가 그대로 천년을자야 그게 깊은 잠이지. 사람은 간사해서 겨우 7, 8시간 자고도깊은 잠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면서온 세상천지를 활보하는구나. 불쌍한 것들,우리가 뭐 나뭇가지에 걸린 이파리냐아스라한 실 끝에 매달린 연이냐.술잔 끝에 걸린 입술이냐자동차들의 경적 끝에 매달린 운명이냐 참으로 불쌍한 것들.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면서겁을 줘도 먹지 않고法을 줘도 길들지 못하는 우리는 참으로 잘난 것들이냐.우리의 말이 없었다면우리의 글자가 없었다면우리의 마음들이 없었다면이 볼펜 다 집어던지고한 천년쯤 자다가벌거숭이로 태어날 것인데. 인간의 허영심과 나약함.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찾기 위한 성찰과 겸손이 사피엔스에게 더 필요해진 시대. 겸손하고 성찰하는 자세로 진정한.. 2024. 6. 30.
《龍仁(용인) 지나는 길에》 민영, 창비시선 0011 (1977년 8월)ㅡ 이 時代는 이 시대는 불의 시대가 아니다.形體(형체)가 다 타고 남은 재에서덧없이 풀썩거리는 먼지의 시대다. 이 시대는詩의 시대가 아니다.짜고 남은 香油(향유)의 찌꺼기에서고름 썩는 냄새가 나는 시대다. 숲 이룬 굴뚝에서는 연기가 오르지만시든 肉身을 좀먹는 벌레,생존의 고삐가 영혼을 옥조이는飽滿(포만)으로 나빠진 斃死(폐사)의 시대다. 1977년 수출 100만불 시대를 달리고 있었을 무렵, 시인은 열정적인 시대도 아니고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퇴락한 시대라고합니다. 부패와 퇴락한 시대, 물질적 풍요와 외형적 번영 뒤에 숨겨진 정신적 공허함과 도덕적 영적 붕괴와 타락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龍仁(용인) 지나는 길에  저 산벗꽃 핀 등성이에지친 몸을 쉴까.두고 온 고향 생각에고개 젖는다. 到彼岸寺(도피안사)에.. 2024. 6. 30.
《고두미 마을에서》 도종환, 창비시선 0048 (1985년 3월) 각혈 다시는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마지막 약속처럼 그대를 받아들일 때채 가시지 않았던 상한 피 남아이 신새벽 아내여, 당신이 내 대신울컥울컥 쏟아내고 있구나.삶의 그 깊은 어딘가가 이렇게 헐어서당신의 높던 꿈들을 내리 흔들고아득히 가라앉는 창 밖의 하늘은강아지풀처럼 나부끼며 나부끼며 낮아져맥박 속을 흐느끼며 깊어가는구나굳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당신의 살 속으로걸어 들어가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목숨을 따라내가 한없이 들어가고 있구나.그러나 아침 물빛 그대 이마에 손을 얹고건너야 할 저 숱한 강줄기를 바라보며아내여, 우리는 절망일 수 없구나. 접시꽃 당신은 삼십대 초반 위암으로 세상과 이별하였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 '각혈'에서는 접시꽃 당신과 겪고 있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과 인내를 노.. 2024. 6. 30.
《피뢰침과 심장》 김명수, 창비시선 0055 (1986년 8월) 돌고래를 위하여 - 분단된 이 땅의 철조망 아래, 안타까이 숨져간 미물들의 넋을 위해 1985년 1월 18일캄캄한 밤 11시 15분경에경상남도 삼천포시 해안초소 앞바다먹이를 찾았을까갈 길을 잃었을까코 둘레도 정이 가는 돌고래 한 마리가해안으로 물살쳐 헤쳐오고 있었다 어디에 살았던 포유류였는지지난 봄 대공원 수족관에서어린 딸이 손뼉 치고 환호하던 그 돌고래재롱을 부리던 또 다른 한 마리의형제였을까 동족이 총 겨누고 마주보는 이 땅에싸늘한 해안초소경비를 알 수 없던아직도 다 자라지도 못했다는그 돌고래 한 마리는두 사병에 의해무참하게 사살되어 떠올랐다 하는데 차라리 읽지 않아도 좋을 석간의 기사여 ...... 분단된 이 땅의 철조망 아래안타까이 죽어간 미물들의 넋들이어찌 너 한 마리뿐이랴마는 1985년 1월 .. 2024. 6. 27.
《달 넘세》 신경림, 창비시선 0051 (1985년 9월) 달 넘세 넘어가세 넘어가세논둑밭둑 넘어가세드난살이 모진 설움조롱박에 주워담고아픔 깊어지거들랑어깨춤 더 흥겹게넘어가세 넘어가세고개 하나 넘어가세얽히고 설킨 인연명주 끊듯 끊어내고새 세월 새 세상엔새 인연이 있으리니넘어가세 넘어가세언덕 다시 넘어가세어르고 으르는 말귓전으로 넘겨치고으깨지고 깨어진 손서로 끌고 잡고 가세크고 큰 산 넘어가세버릴 것은 버리고디딜 것은 디디고밟을 것은 밟으면서넘어가세 넘어가세세상 끝까지 넘어가세 * '달 넘세'는 흔히 '달람새'라고도 하는데 경북 영덕 지방에서 하는 여인네들의 놀이 '월워리 청청'의 한 대목으로서 손을 잡고 빙 둘러앉아 하나씩 넘어가면서 '달 넘세' 노래를 부른다. '달을 놈아가자'는 뜻의 '달 넘세'는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일을 상징한다고 말해진다.   신경림 시인.. 2024. 6. 26.
《노동의 새벽》 박노해, 풀빛판화시선5 (1984년 9월)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새벽 쓰린 가슴으로차가운 소주를 붓는다아이러다간 오래 못가지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기름투성이 체력전을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오래 못가도끝내 못가도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스물아홉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아 그러나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이 질긴 목숨을,가난의 멍에를,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가운 소주를 붓는다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세근세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2024.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