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8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김언희, 민음의 시 0095 (2000년 3월) 햄버거가 있는 풍경 식빵 한 조각을 깔고 식빵 한 조각을 덮고다져진 살코기가 오한을참고 있다 짓무른 상추 혓바닥에검은 반점들이 번지고 엎어놓은 스텐 식기 아래 두 손을 사타구니에 찌른 채 도르르 몸을 말고 죽어 있는 괄태충 행운목은, 토막난 몸에서 돋아나오는 잎사귀를 증오한다 제 잎사귀가아닌 푸른 김언희 시인의 시 '햄버거가 있는 풍경'은 현대 사회의 소외와 부조리를 햄버거라는 일상적인 음식을 통해 묘사한 작품입니다. 시는 불편한 이미지와 강렬한 대조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햄버거라는 친숙한 음식 속에 숨겨진 고통과 파괴,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의 소외와 고립을 통해 자신이 소비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 괄태충: 민달팽이 그라베 그 여자의 몸속에는 그 남자의 시신.. 2024. 7. 24. 《콜리플라워》 이소연, 창비시선 0503 (2024년 6월) 콜리플라워 콜리플라워가 암에 좋다니 사 오긴 했는데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 꽃양배추보다는 사람이 더 좋아"*댈러웨이 부인은 이 말을 다른 말과 헷갈리고나는 이 말은 누가 했는지 헷갈린다 조난당한 사람들이들판에 쌓인 눈을 퍼 먹는 장면을 봤다콜리플라워 맛이 난다 진동벨이 울린다암 걸린 애가 커피 가져와암에 걸리면 맘에 걸리는 말이 많다아픈 건 마음밖에 없네눈 뭉치 속에 숨겨놓은 돌멩이를믿고 싶다흰빛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내가 한 말들이 맘에 걸려 있다아파트 화단에 10층에서 떨어진 이불이 걸려 있다 엄마가 동영상을 보냈다나의 여인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트로트 음악이 깔리고꽃을 찍은 사진 위에 수놓은 건강 상식첫 페이지는 오이와 양파를 꼭 먹으라는 이런 건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거야 나뭇가지 휘어지는 밤흰 눈을.. 2024. 7. 23. 《개밥풀》 이동순, 창비시선 0024 (1980년 4월) 序詩(서시) 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남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달리던 노루는 찬 기슭에 무릎을 꺾고날새는 떨어져 그의 잠을 햇살에 말리운다지렁이도 물 속에 녹아 떠내려가고사람은 죽어서 바람 끝에 흩어지나니아 얼마나 기다림에 설레이던 푸른 날들을노루 날새 지렁이 사람들은 저 혼자 살다 가고그의 꿈은 지금쯤 어느 풀잎에 가까이 닿아가쁜 숨 가만히 쉬어가고 있을까이 아침에 지어먹는 한 그릇 미음죽도허공에 떠돌던 넋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리라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날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성난 목소리도 나직이 불러보던 이름들도언젠가는 죽어서 땅위엣것을 더욱 번성하게 한다대자연에 두 발 딛고 밝은 지구를 걸어가며죽음 곧 새로 태어남이란 귀한 진리를.. 2024. 7. 21. 《트렁크》 김언희, 세계사 (1995년 9월) 아버지의 자장가 이리 온 내 딸아네 두 눈이 어여쁘구나먹음직스럽구나요리 중엔어린 양의 눈알요리가 일품이라더구나 잘 먹었다 착한 딸아후벼 먹힌 눈구멍엔 금작화를심어보고 싶구나 피고름이 질컥여물 줄 필요 없으니, 거좋잖니 ...... 어디 보자, 꽃핀 딸아콧구멍 귓구멍 숨구멍에도 꽃을꽃아주마 아기작 아기작 걸어다니는살아 있는 꽃다발사랑스럽구나 이리 온, 내 딸아아버지의 바다로 가자일렁거리는 저 거대한 물침대에너를 눕혀주마아버지의 바다에, 널잠재워주마 김언희 시인의 시 "아버지의 자장가"는 너무 강렬하고 섬뜩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 시는 극단적인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왜곡된 사랑과 폭력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이 시는 독자에게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은밀한 폭력과 학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라는 이름으.. 2024. 7. 20. iiin, i'm in island now, 2014, Summer "지난 봄 리얼제주 매거진 iiin(인)을 무사히 창간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두 팔을 벌려 환영해주신 많은 독자들 덕분입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차분한 마음으로 여름호를 통해 인사드립니다. 사실 잡지를 차안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을 차지하고서라도 여러 가지 힘든 점이 있었지요. 그 중 하나가 종이 잡지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발달된 인터넷 환경 속 공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누가 '돈'을 내고 '종이 잡지'를 사보겠냐며 걱정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들이 기유였다는 듯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 따뜻한 조언을 받았습니다." 바당밭의 농부, 해녀, 제주 바다를 지키는 여름제주 바다는 어느 개인의 바다가 아닌 마을 공동의 바다다. 함께 씨를 .. 2024. 7. 19. 《푸른 편지》 노향림, 창비시선 0433 (2019년 6월) 비눗방울 놀이 하는 부부 맹인 부부가 유치원 마당 구석 벤치에나란히 앉아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아이가 수업 받는 동안 이마 맞대고빨대로 하늘 높이 날리는 비눗방울들더러 키 낮은 편백나무에 걸리기도 하고두짝의 지팡이를 기대어둔바위의 등에 앉아 쉬어가기도 하고공중 높이 떠 올라가기도 한다. 아가, 보아라, 비눗방울은 일곱 무지개 빛깔이란다.네가 세상에서 제일 먼저 발음하게 된바다라는 이쁜 말이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초록빛 생명의 빛깔이라는데이 비눗방울 안에 웅크린 태아처럼 그게 숨어 있겠지.그 안에 숨은 눈 코 입을 너는 찾을 수 있지. 누군가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간다.제발 비눗방울을 터뜨리지 말았으면.너희들 희망을 밟지 말았으면. 노향림 시인의 시 "비눗방울 놀이 하는 부부"는 맹인 부부가 유치원 마당.. 2024. 7. 17.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