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 놀이 하는 부부
맹인 부부가 유치원 마당 구석 벤치에
나란히 앉아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가 수업 받는 동안 이마 맞대고
빨대로 하늘 높이 날리는 비눗방울들
더러 키 낮은 편백나무에 걸리기도 하고
두짝의 지팡이를 기대어둔
바위의 등에 앉아 쉬어가기도 하고
공중 높이 떠 올라가기도 한다.
아가, 보아라, 비눗방울은 일곱 무지개 빛깔이란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먼저 발음하게 된
바다라는 이쁜 말이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
초록빛 생명의 빛깔이라는데
이 비눗방울 안에 웅크린 태아처럼 그게 숨어 있겠지.
그 안에 숨은 눈 코 입을 너는 찾을 수 있지.
누군가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간다.
제발 비눗방울을 터뜨리지 말았으면.
너희들 희망을 밟지 말았으면.
노향림 시인의 시 "비눗방울 놀이 하는 부부"는 맹인 부부가 유치원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모습을 통해 사랑과 희망, 그리고 소중한 일상의 순간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비눗방울은 일곱 무지개 빛깔'이라는 구절은 희망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맹인부부의 일곱 빛갈 무지개 평범한 일상, 그런 삶을 소망합니다.
채밀꾼
석청을 채밀하는 사냥꾼들은
여러날을 산속에서 보낸다.
혼신을 다해 구도하는 심정으로 산에 오르는
이들의 작업은 시 한편 찾는 일과 같으리라.
이들은 산에 오르기 전 목욕재계하고 누구와도 말을 섞지않는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첫새벽
간단한 낱말 몇벌만을 챙겨 산으로 향한다.
암벽을 타고 먼저 오른 두세 사람
나무둥치에 줄을 묶어 아래로 내려보내면
그 줄을 탄 채밀꾼은 곧 무너질 듯한 돌 틈 사이를 주시한다.
거기 말의 핵심이 숨어 있을 만해서다.
순식간에 핵심을 꺼내면 일부는 남기고 나머저는
재빨리 되넣어준다. 다음의 시편을 위해서다.
야생의 생각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사납다고 한다.
망을 쓴 얼굴이나 두꺼운 점퍼도
때로 말벌떼처럼 사정없이 뚫고 상상력을 쏘아낸다.
센 비가 내리치면 산속은 금방 캄캄해져 방향감각을 잃게 만든다.
우울과 고독의 습격을 막기 위해
챙겨간 비닐 장막을 치고 손전등을 켜놓아 견딘다.
여러날을 견디다 먹을 게 떨어지면 아끼던 금빛 낱말들을
한숟갈씩 나눠 먹으며 고립을 견디어낸다.
이들은 빈손으로 하산할지라도 다음에 오를 시가 있어
금방 내려온 산을 쓰윽 지운다.
결국 실패한 채밀의 반복이 작품 쓰기의 핵심이라는 것
시 한편을 찾는 일은 늘 그러하다.
노향림 시인의 시 "채밀꾼"은 석청을 채밀하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통해 시 창작의 과정과 시인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깊은 산속에서 고된 작업을 하는 채밀꾼들을 시인에 비유하며, 그들의 헌신과 고독, 끊임없는 노력과 실패의 반복을 그리고 있습니다. 채밀꾼들이 빈손으로 하산하더라도 다음 작업을 위해 다시 준비하는 모습은 시인이 끊임없이 새로운 시를 위해 준비하고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시 창작의 과정이 단순한 영감이 아니라, 헌신과 고독,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고된 여정임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반복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이는 모든 창작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이야이기도 합니다. 이 지구별 작은 인간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슬기로운 지혜가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그리운 서귀포 4 - 이중섭
내 몸에도 정체불명의 물고기가 살아요
섶섬이 바라다보이는 언덕엔
등 굽은 야생 매화나무들이
밤이면 유령처럼 쏘다니고 있어요
그 잎, 입들이 두런두런 말을 걸어와요
쏴아쏴아 파도 소리에 쓸리며
한쪽 귀가 다 닳은 나뭇잎들,
굼실거리는 지느러미를 매달고는
은갈치 어리뱅이 벵에돔 자바리
수중의 물고기가 되었을까요
별들은 매화나무 가지에 내려와
비좁은 방을 기웃거려요
빛도 들지 않는 빈방에서
은박지에 물고기가 그려진 그의 벽면에서
미라처럼 발굴된 말은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피항하듯 벼랑 아래로 숨어든
갈치잡이 배나
외눈박이 알전구 눈들 빨갛게 치켜뜬 채
두근두근 엿들어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화가 이중섭.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천재 화가 이중섭이 포기하지 않았던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그 사랑 속에서 희망을 찾아나가요.
난쏘공 부부 - 난쏘공1
키가 일 미터 남짓의 난쟁이 부부가
스크린 도어가 열리자 힘겹게 탑승합니다.
설 쇤 승객들로 꽉 찬 전동차거 선 구로역이었지요.
여자의 손에 든 '서천 재래김' 상표가 선명히 인쇄된
선물용 종이 가방이 그녀의 키보다 컸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공처럼 튕겨져 나온
이 부부의 등에 꽂히는 것이었어요.
부부는 손을 꼭 붙잡고 있었어요.
우릴 먼 데서 온 외계인처럼 쳐다보지 마세요.
그저 좀 작은 몸으로 태어난 사람일 뿐입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태어났으니
우리를 난쏘공이라 불러요.
불시착한 행성처럼 등에 혹이 매달려 있지만
천연기념물인 듯 우릴 신기하게 쳐다보지 마세요.
삶의 궤적에 따라 몇 생을 건너뛰어
당신들의 후생일 수도 있어요.
자리에 그냥 앉아 계셔요.
키 큰 사람들 틈에서 우린 넘어질 리 없어요.
언제든 깃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날고 싶어요.
저 창밖 전봇대보다 높이 날고 싶어요.
만원 전동차에서 키 큰 나라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다른 별에서 온 부부가 자리에 앉자
지구별 전동차는 환한 달빛 비치는 강물을 지나
멀리 무한궤도 열차처럼
극지의 별빛을 찾아 은하를 건너 힘차게 달려요.
난쏘공은 조세희 작가님이 쓴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가져온 그 '난쏘공'입니다. 이 시는 난쟁이 부부의 삶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 그리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부부의 모습을 통해 모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하는 힘을 상기시키며,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이 죄도 아니고 멸시 받거나 차별 받아서 될 일은 아닙니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회, 지구별이 되도록 뚜벅뚜벅 나아가 봅니다.
서천 재래김은 예로부터 임금에게 진상되던 특산물입니다. 신선하고 깊은 바다향이 나는 서천 재래김은 자연그대로의 바다 맛을 유지하고 있어 풍부한 감칠맛을 자랑합니다. 식감은 일반 김보다 두껍고 바삭한 식감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씹을 때의 풍미가 더욱 좋다고 합니다. 비타민 A, 비타민 C 등 비타민과 칼슘, 철분 등 미네랄 그리고 단백질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이런 서천 재래김과 같은 난장이 부부의 사랑과 삶을 응원합니다.
내 안의 저녁 풍경
배밭 너머 멀리 저녁 구름이 걸렸다
필라멘트 불빛처럼
역광이 구름 틈새로 새나오고
당신은 아직도 바다를 향해 앉아 있다
등 돌려 텅 빈 독처럼 앉아 있는
당신에게 시간은 저녁을
가득하게 퍼 담고 있어
하얗게 지는 배꽃들이
당신의 발등과 무릎 어깨 머리 위로 마구 떨어진다
바다 위에서는 새들이
한쪽 발을 들고 머리를 주어거린다
그들이 이따금 모래톱을 긴 부리로 물고 나는 사이
떠돌던 당신 마음은
어떤 빛일까
밤은 저만치 젖은 날개 터는 소리로
파도 위로 걸어오고
그렇게 당신은
오래도록 생각에 묻힌다
"푸른, 푸름이란 얼마나 무한대인가. 한겨울 깊은 땅속에 파묻힌 씨앗이 봄에 움튼다. 누가 그랬던가, 시의 씨앗을 사람들 마음 안에더 다 틔워주는 일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시간 속에서 잊혀가고 소외된 시의 본적지로 나는 오늘밤도 푸른 편지를 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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