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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조국의 별》 고은, 창비시선 0041 (1984년 7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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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인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로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는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성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
출처: https://praxislife.tistory.com/103 [PraxisLife:티스토리]
 
고은 시인의 기행과 미투 사건 그리고 재판, 여러 증인들의 일관된 주장으로 고은 시인이 재기한 재판은 원고 패소로 종결. 창비시선을 정리하면서 고은 시인의 책들을 건너 띌까 하다가 최영미 시인의 '괴물'을 함께 올려놓으며 시인의 시집을 정리할까 합니다. 고은 시인 뿐만 아니라 최영미 시인도 여러 번 죽이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결혼식 주례를 보아 준 시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겠지만. 100년전에는 기행으로 끝났을 줄 모를 일일지 모르겠으나 21세기에는 성폭력은 비판 받고 처벌 받아야 하고 책임져야 할 행동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단, 작품 내용으로 문학적 허용에 대해서는 고민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성폭력, 성차별과 성의 자유, 성의 해방 ...... 때때로 자기검열의 시대를 살고 있지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들밥
 
제돈이 어머니가요
방아달 큰논배미 모 심으니
밥 먹으러 꼭 오라기에
점심때 맞춰 염치없이 나갔지요
그랬더니 일꾼들하고
일꾼네 아이들하고
저 건너밭에 나온 아낙까지도
어서 와 아서 와 불러다가
모두모두
논두렁 한 마당 밥 먹었지요
먼 산도 하늘도 와 함께
고봉밥 한 그릇 다 먹었지요
 
지금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런지요. 미니버스를 타고 왔다가 농사일 돕다가 그 버스 타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고은 시인의 '들밥'은 따뜻합니다. 일꾼들과 아낙네들, 아이들이 함께 논두렁에서 식사를 나누는 공동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소박한 삶들, 이런 삶들이 지구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삶이 겠지요.
 
 
黃土(황토)
 
우리는 유사 이래
하늘보다
황토 위에서 참되었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역사를
이와 반대로 써 왔읍니다
민중이란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날마다 일하는 사람입니다
정든 쇠스랑 박고 바라보면
재 너머로 넘어가는
끝없는 황토길이 우리 절경입니다
저만치서
말없이 살고 있는
아버지 황토무덤이 우리 절경입니다
우리가 먹을 황토 있는 한
상여 떠나
우리가 송두리째 묻할 황토 있는 한
한 삽으로 가득 뜬 황토 들어올려서
아메리카여 시베리아여
우리는 여기에 진리 있읍니다
 
 고은 시인의 시 '황토'에서는 민중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삶의 뿌리를 '황토'에서 찾고 있습니다. 황토 속에 담긴 진리와 삶의 진정성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보편적 진리를 찾고자 합니다.
 
 
도라지꽃 - 盧壽福痛史 序呤(노수복 통사 서령)
 
식민지 조선 또 시인 신나게 노래한 아아 쇼난또
싱가포르 함락 아아 쇼난또
가도가도 남지나해 그 너울 건너서
한 달 열흘 실려간 여자정신대
 
태평양으로 중국으로 간
조선의 처녀 20만 도라지꽃이여
니뀨이찌 삐 삐 도라지꽃이여
 
이제 그 치욕의 극치 깊이깊이 파묻어 두고 있는데
이 무슨 날벼락 청천벽력인가
한 여인의 일생이
3천만 동포의 몸뚱이를 껍질 벗겨
생살 떠 회치는 오늘
그 누가 이 아픔을 소리지르겠는가
하루에 서른세 놈에도 쉰 놈에도 살아남은 목숨으로
그 목숨으로
40여 년 동남아의 어디에 숨겨졌다가
이제 어느 할머니로 밝혀진 우리 민족이여
8·15에 돌아올 낯짝 없다고
그냥 야자수 아래에 주저앉아서
지난날 낙동강 모래밭 안심마을
뒷동산에 널린 그 사무친 도라지꽃이여
 
아아 이제부터 우리에게는
무궁화가 국화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 도라지꽃이 국화이리라
정신대 도라지꽃 백도라지꽃이 운명의 국화이리라
핮차이 마을 할머니의
우리 민족 낭떠러지 울음바다의
 
*쇼난또: 일본이 영국령 싱가포를 점령한 직후 일본식으로 부른 이름. 친일시인들이 함락 축시 '아아 쇼난또'를 발표했다.
* 니뀨이찌(29:1):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1명에게 일본군 29명을 담당케 한 데서 위안부를 지칭하는 은어. 뒤에는 50대 1로도 되었다.
* 삐: 위안부(일본군성노예)를 뜻하는 은어
* 도라지꽃: 일본군이 조선 여자위안부(일본군 성노예)를 말하던 은어
* 그 도라지꽃: 노수복 여사의 고향인 낙동강 상류에 많이 피었던 도라지꽃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03616.html

우리가 잊은 할머니들…국내 첫 커밍아웃 이남님, 타이에서 가족 찾은 노수복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인 첫 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의 통설

www.hani.co.kr

* 정신대: 소학교 고학년 정도의 나이에 일본 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가 군수품을 만드는 일을 강제당한 피해자
* 위안부: 일제에 의해 성노예를 강요당한 피해자
 
식민지시대 성노예를 부정하는 한반도의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그리고 그 따리지 극우 인사들, 아마도 이들은 우리 아내와 딸들을 성노예로 팔아먹을 앞잡이들로 세상천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닐 년놈들이 겠지요. 그 입과 가랭이를 찢어 죽일 년돔들이라고 했던가요.
 
 
걸레
 
바람 부는 날
바람에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다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단 한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못견디도록 헹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시인이여, 결국 걸레가 되었습니다. 없었던 일이라고 기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피해자가 있고 너무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결국 걸레가 되었습니다. 그 더러운 한평생 닦고 또 닦고 못 견디도록 헹구어지십시요. 시인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해서 시인을 사랑하고 좋아한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 배신감과 상실감, 그 더러운 한평샹 닦고 또 닦고 못 견디도록 헹구어지십시요.
 

 
"갇혀서 지낼 때의 그 시간들은 허가된 범위의 독서밖에는 다른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집필 행위는 엄두도 낼 수 없디. 왜 그런가, 일제시대의 처우에도 없던 그런 숨가쁜 조치였다...... 시인에게는 국어의 낱말 하나하나는 거의 운명이다, 나는 그 낱말들을 다시 생명으로 거둬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