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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넋이야 넋이로다》 하종오, 창비시선 0058 (1986년 11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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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굿  가운데에서

 

  어떻게 한 다리 걸치고, 어떤 놈들인지, 내 이승사람이 아니니 저승소리로 한번 훑어볼 테니 들어봐라! 

  내 문학이 모더니즘의 모범이라 치켜세우면서 제 글도 모더니즘에 한몫을 보려는 놈! 내 문학은 소시민적 갈등 속에서태어난 도덕적 진정성이라면서 거듭 되풀이 주장하는 놈! 내 문학은 도시적 감수성만 있기 때문에 농촌적 정서가 결여될 수밖에 없다고 운명적으로 말하는 놈! 내 문학을 싸움으로 여겨 그 싸움을 또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전부로 알고 기고만장해하는 놈!

  모조리 눈 감고 코끼리 다리 애무하고 있으니 내가 저승에선들 편하겠느냐?

  그놈들 찬물에 손 씻고 눈 비빌 땐데

  찬물에 밥 말아먹는 놈들이 또 있으니

  으음 황당하다 내 시에서 난해성만 쏙 빼 제 복잡성으로 버무려, 에에 날 시인적 대부로 삼으려는 놈!

  으음 꽤심하다 내 시에서 재기발랄성만 슬쩍해서 감수성으로 챙겨, 에에 날 시인적 스승으로 모시려는 놈!

  으음 버릇없다 내 시에서 기술성만 빌려와 제 재주로 얼렁뚱땅해서, 에에 날 시인적 형님으로 받들려는 놈!

  으음 맹랑하다 내 시에서 사회성만 똑 떼어내 제 투지로 부풀려서, 에에 날 시인적 동생으로 까뭉개려는 놈!

  이런 싸가지 없는 놈들에게 들려주고 준비한 말을 들어봐라.

  '너희들 저승 문단에 다시 데뷔하거라.'

 

하종오 시인의 <넋이야 넋이로다>는 1983년 신동엽창작기금의 지원을 받아 굿의 형식을 가져와 창작한 12편의 굿시를 모은 시집입니다. 시인굿은 신동엽 시인의 기일에 그의 고향인 공주에서 시인을 맞이하는 굿입니다. 신동엽 시인과 김수영 시인이 함께 불러낸 굿판에서 김수영 시인의 넋이 씌인 박수가 나와 풀잎춤을 추고 나서 던진 공수(신령이 무당의 입을 빌려 인간에게 의사를 전하는 일) 한마디입니다.

 

 

통일굿 가운데에서

 

(무당은 굿판을 돌면서 무가를 부른다.)

 

젖히고 젖혀를 주마 근심걱정을 젖혀를 주마

거두고 거둬를 주마 가난을 거둬를 주마

들판이 출렁이니 많은 백성의 밥이로다

젖히고 젖혀를 주마 우환재난을 젖혀를 주마

거드고 거둬를 주마 외세를 거둬를 주마

싸우더라도 끼리끼리 싸우면 한덩어리로다

젖히고 젖혀를 주마 관재구설을 젖혀를 주마

돋우고 돋워를 주마 자유민주를 돋워를 주마

사람이 갈길을 찾아가면 모든 곳이 다 한길이로다

젖히고 젖혀를 주마 재물손재를 젖혀를 주마

돋우고 돋워를 주마 평등평화를 돋워를 주마

어우러져 주고받고 살면 모두가 하나로다

 

그리고 나서 무당이 감격스런 통알춤을 추고 나서 분단원혼을 위무하는 분단 회심곡을 화랭이와 문답으로 부른답니다. 2024년 한반도의 젤렌스키는 태평성대를 위기의 시대라고 하는 주권자들을 정신병자라고 힐난한다지요. 남북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으르렁 거리고 당장이라도 똥벼락이 아니라 불벼락을 일으키려고 하는 시절입니다. 1980년대 많은 시인들은 남북 통일 염원을 노래하였습니다. 2024년 각자 갈 길 가자는 자와 흡수통일을 외치는 자 그 무리들에게 똥벼락도 불벼락도 천지신명이시여 제발 내려 주시고 남북 평화 통일 반전반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큰 칼로 댕겅댕겅 비나이다 비나이다 년놈을 젖히고 젖혀 년놈을 거두고 거둬 년놈을 젖히고 젖혀 년놈을 거두고 거둬 비나이다 비나이다 ......

 

 

거리굿 가운데에서

 

(화형식이 끝나면 박수는 허재비의 역을 맡고, 무당·군중들과 문답요를 부른다.)

 

구해주소 구해주소

허재비 좀 구해주소

구하고야 싶지마는

우리 몸통 네가 빼앗아가

손이 없어 못 구하겠다

물 한 모금 끼얹어주소

물 한 모금 끼얹어주소

한 동이라도 주고 싶다만

우리 산천 네가 짓밟아

강물 없어 못 주겠다

에라 요놈 팍 사그라질 놈

네 눈물이나 콱 쏟거라

아이고 아이고

불 좀 꺼주소 불 좀 꺼주소

불이야 끄고 싶다만

네놈 살려 놨다간

온 나라에 불지를라

에라 요 잡놈 허풍선이놈, 꽃 피는 오월에 꽃송이 떨구고는 음풍농월 하던 놈, 들에 나가 모 심는다더니 힌 줌 꽂고 돌아와 대풍이라 큰소리 치던 놈, 밤샘하는 공원들 씩 웃으며 돌아보고 와 양주에 곯아떨어져 잠자던 놈, 백두산 상상봉 꿈꾸면서 철조망 치던 놈, 에라 요 오사리 잡놈 허풍선이놈

살려주소 살려주소

내 모든 것 다 줄테니

허재비 좀 살려주소

살리고야 싶지마는

너 이제 곧 재 될텐데

받아낸 것 없어 못 살리겠다

이도저도 안된다면

명당에나 묻어주소

우리 땅 네가 써버려

온 나라가 무덤인데

너 설 자리 어디 있나

에라 요놈 팍 사그라질 놈

네 한숨으로 바람 일으켜

지옥으로 쌩 날아가거라

 

* 허재비: 허수아비, 허사비, 허제비, 허아비 등으로 불리는 인형

 

80년대 독재자는  묻힐 한 평 땅을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 나라를 무덤으로 만든 2024년 허재비들도 설 자리 하나 주지말고 지옥으로 쌩 날려버리지요.

 

 

"84년 7월, 신경림, 정희성 두 분 시인을 모시고 민요연구회를 발족했던 그 달, 마당극 연출가 류혜정·김경란 부부와 함께 '민요의 날' 공연물을 만들 목적으로 굿시를 쓰기 시작했다. 첫 작품 '소리굿'을 황해도 무가가락에 실어 첫선을 보이고, 이어 대학축제에 초청받아 몇 차례 공연했었다. 그것을 본 이후로 시적 형상화와 무속적 연희와의 두 작업이 통일되는 새로운 형식의 시를 창조하고픈 욕구에 12편을 쓰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이 굿시집이다. 

  이 굿시들이 완료되기까지 굿판에서 만났던 여러 만신들과 굿시 하나하나의 주제에 따른 관련 자료집에 크게 도움받았으며. 특히 '의병굿' 중 '소녀의병 김서기'에 관한 서사무가는 백기완 선생의 이야기 제공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민요연구회 노래단의 무당과 잽이들이 가르쳐준 것들이 실제로 이 굿시 형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공연 연습중에 주체할 수 없었던 전율, 공연중의 열기, 공연을 마친 뒤 무구를 옆에 끼고 떼거지로 술마시며 달래던 허탈함, 이런 것들이 창작 욕구의 오만가지 감정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 하종오 시인이 누군가에게 친필 서명하고 선물한 시집이 어떻게 저와 인연을 맺었을까요? 아무쪼록 그 누군가 그분 무탈하시기릴 바라며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