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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콜리플라워》 이소연, 창비시선 0503 (2024년 6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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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플라워

 

콜리플라워가 암에 좋다니 사 오긴 했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 꽃양배추보다는 사람이 더 좋아"*

댈러웨이 부인은 이 말을 다른 말과 헷갈리고

나는 이 말은 누가 했는지 헷갈린다

 

조난당한 사람들이

들판에 쌓인 눈을 퍼 먹는 장면을 봤다

콜리플라워 맛이 난다

 

진동벨이 울린다

암 걸린 애가 커피 가져와

암에 걸리면 맘에 걸리는 말이 많다

아픈 건 마음밖에 없네

눈 뭉치 속에 숨겨놓은 돌멩이를

믿고 싶다

흰빛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가 한 말들이 맘에 걸려 있다

아파트 화단에 10층에서 떨어진 이불이 걸려 있다

 

엄마가 동영상을 보냈다

나의 여인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트로트 음악이 깔리고

꽃을 찍은 사진 위에 수놓은 건강 상식

첫 페이지는 오이와 양파를 꼭 먹으라는

 

이런 건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거야

 

나뭇가지 휘어지는 밤

흰 눈을 퍼 먹는 기분으로

동영상을 끝까지 본다

 

이소연 시인의 시 '콜리플라워'는 일상의 사소한 경험과 생각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삶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시는 콜리플라워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삶과 죽음, 건강과 불안, 인간 관계와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일상 속의 사소한 경험과 생각들이 사실은 매우 깊은 의미와 감정을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삶은 단순한 일상의 연속이 아니라, 그 속에 불안, 혼란, 생존, 기억, 후회, 가족의 사랑 등 다양한 감정과 의미가 얽혀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삶은 일상 속에서도 깊은 의미를 찾고, 내면의 감정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2009

* 콜리플라워: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 브로콜리의 아종, 우리가 먹는 부분은 꽃이 변형된 부분이며 하얀색을 띈다.

 

 

우리 집 수건 

 

지푸라기같이 뻣뻣한 수건을 걷으며

해가 참 사납구나

 

수건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침의 얼굴이 있는가

저녁의 육체가 있는가

 

창밖에 널린 수건들

바람은 뒤집히고

뒤집힌다

 

수건은 다른 것과 섞이지 않는다

수건부터 널고 수건부터 개킨다

팔도 없고 다리도 없는 단순한 사각

수거는 많고 수건은 모자란다

바짝 마른 평면을 접는 일에 애착이 생긴다

 

수건은 시간을 옮긴다 냄새를 옮긴다

수건이 수건에서 빠져나온다

 

내가 발을 닦은 수건으로

남편이 얼굴을 닦는다

발을 닦은 수건이 얼굴을 닦은 수건보다 더러울 것 같진 않는데

발이 알면 억울할 일

말하지 않기로 한다

시를 읽다가

발 닦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걸 알게 될 수도 있다

수건이 나를 두른다

 

거기 수건 좀 ...

 

돌잔치나 회갑연마다

수건을 돌리고

어제는 출판기념회에서

새 수건을 받아 왔지만

수건이 모자란다

 

수건으로 열리고 닫히는 집, 나는 마지막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다 최근에 가져온 수건이다

 

수건은 스물아홉장, 아직 하나가 모자란다

 

이소연 시인의 시 '우리 집 수건'은 일상 속에서의 평범한 물건인 수건을 통해 인간의 삶, 관계,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작품입니다. 시는 수건이라는 단순한 사물을 통해 가족의 일상, 삶의 반복,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수건이 시간을 옮기고 냄새를 옮긴다는 표현은 수건이 단순히 물리적인 물건이 아니라, 그 속에 시간의 흔적과 기억을 담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새로운 수건을 받아오고, 수건이 모자라는 상황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자신의 일상 속에서 숨어 있는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을까요?

 

 

집 옮기기

 

너와 내가 키스를 하고 있을 때

두부 사러 가는 아이가 있다

 

수생식물처럼 떠 있던 집이 부서진다

빛이 으깨지는 여름이라면

 

키스가 입술의 일은 아니지

혀와 혀가 모서리를 접고

기둥을 접고 지붕을 접어

집 옮기는 놀이 같다

 

너는 음악 옮기길 좋아하고

나는 오늘 너의 집을 옮기는 중이야

삼각 지붕은 뾰족한데 안은 둥글어

절벽에 붙어 있는 바위솔처럼

'밀착'이라는 말은 너를 통해 배운다

 

돌아가야 할 집이

내 혀에 있다면

너는 내게 키스하겠지

남쪽 마당에는 꽃이 피었다는데

스페인 북부는 대설주의보야

너의 집을 옮길 때마다 나는

시드니를 지나쳐 온

지진 소식을 들어

 

나의 혀가 보관하고 있는 너의 첫 집

몇살이더라, 삼키지도 못하고

영원히 뱉지 못하는 해와 달 같은

집이 남았다

 

이소연 시인의 시 '집 옮기기'는 키스라는 친밀한 행위를 통해 인간 관계의 깊이와 복잡성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시는 키스라는 주제에 집이라는 이미지를 결합하여 독특한 분위기와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시의 중심에는 키스라는 친밀한 행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입술의 접촉을 넘어, 혀와 혀가 만나 집을 옮기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연결과 상호작용을 강조합니다. 집이 부서진다는 이미지와 키스를 통해 집을 옮기는 놀이를 대비시켜, 관계의 불안정함과 동시에 융합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빛이 으깨지는 여름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나의 혀가 보관하고 있는 너의 첫 집이라는 구절은 기억과 보존의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삼키지도 못하고 영원히 뱉지 못하는 해와 달 같은 집은 잊혀지지 않는 중요한 기억이나 경험을 상징합니다. 시인은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감정과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인간 관계의 본질을 깊이 있게 성찰합니다.

 

 

기부

 

"너는 몸 안에 든 바람을 꺼내줘야 해"

이건 엄마가 한 말

내 몸에 바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데

꺼내줄 생각을 다 하네

 

가나의 가난한 상인들은 '죽은 백인의 옷' 한꾸러미를 25달러에 사고

나는 오늘 헌옷수거함에 옷을 잔뜩 버렸다

청재킷 하나 옆구리 봉제선이 터져 있는데

 

"기부라는 말 뒤에 숨어 문제를 떠넘기지 마라"

이런 문장을 신문에서 읽었고

그날 밤엔 황인찬 시인이 '도봉산역'에 대해 시를 쓰자고 했다

 

그리고 잠 속으로

망치를 들고 들어갔다

엄마 몰래 떠나온 곳은 가나의 수도 아크라

나는 꿈속에서도 비죽 웃음이 났다

 

'낮에 신문 좀 봤다고 아프리카에 와 있다니'

전자 쓰레기를 해체해 먹고산다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열심히 쓸 만한 것들을 골라내고 있다

컴퓨터를 부수고 얻은 금속 물질

'이걸 팔아 떠나야지'

 

걸핏하면 화를 내는 당신도 여기서는 순해지고

'도봉산역'행 버스가 오고 있다

 

이게 기부 물품으로 들어온 버스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낡았고 바닥엔 구멍이 뚫려 있다

착한 일을 했다고 믿고 있나?

이젠 누굴 위해서라고 말하는 게 이상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 늘어난다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내는 사람들과

국어사전에서 쓸 만한 단어를 골라내는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의정부와 망월사에 가깝고

장암역에 가까운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다

한국어 노선 안내 방송도 그대로다

문만 열고 나가면

등산객들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버스 뒤로 먼지가 이글거린다

 

여기서 우리 동네 마을버스를 다 타보네

 

이소연 시인의 시 '기부'는 기부와 원조라는 주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와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시는 기부와 원조의 의미를 성찰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는 가난한 상인들이 '죽은 백인의 옷'을 사고, 전자 쓰레기를 해체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글로벌 사회의 불평등을 드러냅니다. 이는 기부와 원조가 단순히 선행이 아닌, 더 큰 문제의 일부임을 시사합니다. 시인은 기부와 원조의 복잡성과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문제들을 성찰합니다. 이 시는 단순한 기부와 원조의 문제를 넘어서,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와 개인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을 유도합니다.

 

 

" 시인의 말을 고민하는데, 자기 이름을 쓰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다. 

  누구의 이름을 쓰더라도 시인의 말이 되게 살고 싶다.

  나를 가족을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삶

  그런 게 시인가 한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심장이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