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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이슬처럼》 황선하, 창비시선 0067 (1988년 3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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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詩(서시) - 이슬처럼

 

길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살고 싶다.

수없이 밟히우는 자의

멍든 아픔 때문에

밤을 지새우고도,

아침 햇살에

천진스레 반짝거리는

이슬처럼 살고 싶다.

한숨과 

노여움은 

스치는 바람으로

다독거리고,

용서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욕심 없이

한 세상 살다가

죽음도

크나큰 은혜로 받아들여,

흔적 없이

증발하는

이슬처럼 가고 싶다.

 

황선하 시인(1931 ~ 2001)은 1962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습니다. "평생 시집 한 권이면 족하다"며 꼭 한 권의 시집 <이슬처럼>을 남기고 정말 이슬처럼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시인이 말한 '이슬'은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못하는 그런 깊은 계곡에 매달린 투명하고 찬란한 그런 이슬이 아니라 " 수없이 밟히우는 자의 / 멍든 아픔 때문에 / 밤을 지새우고도 / 아침 햇살에 / 천진스레 반짝거리는 / 이슬"입니다. 시인의 세상을 떠난 뒤 유고시집으로 <용지못에서>가 출간되었습니다.('이슬처럼 살다 이슬처럼 사라진 시인 - 황선하 유고시집 <용지못에서> 나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25634

 

이슬처럼 살다 이슬처럼 사라진 시인

섣달 그믐. 내 몸 안의 용지못은 꽁꽁 얼붙어 있었다. 철없는 아이들이 장난 삼아 던진 돌멩이들이, 상처의 흉한 딱지마냥 얼음판 여저기에 코를 박고 널브러져 있었다. 내 꿈은 얼붙은 못물에

www.ohmynews.com

 

가자, 아름다운 나라로

 

가자.

가자. 가자.

 

철수가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그린

아름다운 나라로.

아름다운 나라로.

 

그 나라에는 왕이 없다네.

그 나라에는 차별이 없다네.

그 나라에는 거짓이 없다네.

그 나라에는 미움이 없다네.

그 나라에는 전쟁이 없다네.

그 나라에는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뒤숭숭한 밤이 없다네.

 

그 나라는 

망아지와

새앙쥐의 

가난한 꿈을

이슬로

빚는 곳.

 

그 나라는

새근새근 잠자는

아가의

해맑은 넋이

예쁜 새가 되어

지저귀는 곳.

 

그 나라는

오직

진실과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정오의 날빛처럼

충만한 곳.

 

그런 나라에사 살면 재미가 없을까요? 하시절이 요상타. 그런 아름다운 나라를 소망합니다.

 

 

길들여진 개

 

어쩌면

잘 길들여진

개인지도 모른다.

어려선

부모에게 길들여졌고,

자라면서

일제에게 길들여졌고,

어른이 되어선

독재정권에게 길들여진

개인지도 모른다.

원망하면서도

순종했었고,

저주하면서도

굴종했었고,

증오하면서도

목청껏 외쳐보지 못했던

잘 길들여진

불쌍한 개인지도 모른다.

잘 길들여진 개는

배고픔은 모르지만,

휘영청 달 밝은 밤이면

자유로운 들개가 되고 싶어,

앞발을 핥으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지구별에 홀로 남은 개인인가 길들여진 개인가? 주인을 무는 개인가 주인인 개인인가?

 

 

순결한 바다로 가는 길

 

불신의 시대를 뒤덮은

두려운

어둠 속에서,

숨소리 없는

주검인 양

움쭉달싹 않고

번듯이 누워,

우리 어머님

모시 옷깃의

새하얀 동정같이

순결한

바다로 가는 길을 찾습니다.

땡 땡

낡은 괘종시계가

꿈속인 듯

아련히

두 점을 칩니다.

오늘밤도

부르튼 맨발로,

곧 허물어질 듯

몹시 흔들리는

지구를

서너 바퀴나 돌았어도,

순결한 바다로 가는 길을

끝내 찾지 못해,

밤이슬에 젖은

풀잎 한 잎 따다

입에 물고,

육신이란

고통스런 집으로 되돌아왔읍니다.

순결한 바다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봉오리 같은

열 여섯에

피를 토하고

죽어가는

가련한 소녀는 알고 있을까요.

 

 

* 1988년, 단기 4321년 그해 8월에 <이슬처럼>을 읽었던 그이는 이 지구별 어느 곳에서 이슬처럼 살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