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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개밥풀》 이동순, 창비시선 0024 (1980년 4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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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詩(서시)

 

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

남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

달리던 노루는 찬 기슭에 무릎을 꺾고

날새는 떨어져 그의 잠을 햇살에 말리운다

지렁이도 물 속에 녹아 떠내려가고

사람은 죽어서 바람 끝에 흩어지나니

아 얼마나 기다림에 설레이던  푸른 날들을

노루 날새 지렁이 사람들은 저 혼자 살다 가고

그의 꿈은 지금쯤 어느 풀잎에 가까이 닿아

가쁜 숨 가만히 쉬어가고 있을까

이 아침에 지어먹는 한 그릇 미음죽도

허공에 떠돌던 넋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리라

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

날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

성난 목소리도 나직이 불러보던 이름들도

언젠가는 죽어서 땅위엣것을 더욱 번성하게 한다

대자연에 두 발 딛고 밝은 지구를 걸어가며

죽음 곧 새로 태어남이란 귀한 진리를 얻었으니

하늘 아래 이 한 몸 더 바랄 게 무어 있으랴

<自由詩·1979>

 

이동순 시인의 '서시'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과 죽음을 깊이 있게 성찰하며, 생명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시인은 "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 남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는 구절을 통해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통해 다른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새로운 생명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 순환 과정을 강조합니다. 노루, 날새, 지렁이, 사람 등 다양한 생명체를 언급하며, 이들이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고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이는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상기시킵니다.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이야기합니다. 죽음을 통해 남아 있는 생명들이 더욱 번성하고, 그들의 꿈이 풀잎에 닿아 쉬어간다는 표현은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터전이 됨을 시사합니다. 시인은 "하늘 아래 이 한 몸 더 바랄 게 무어 있으랴"는 구절을 통해, 생명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얻는 깨달음과 감사함을 표현합니다.

 

 

개밥풀

 

아닌밤중에 일어나

실눈을 뜨고 논귀에 킁킁거리며

맴도는 개밥풀

떠도는 발끝을 물밑에 닿으려하나

미풍에도 저희끼리 밀고 밀리며

논귀에서 맴도는 개밥풀

방게 물장군들이 지나가도

결코 스크랩을 푸는 일 없이

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

휘파람 불며 불며 저어가노라

볏짚 사이로 빠지는 열기

음력 사월 무논의 개밥풀의 함성

논의 수확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버리며

우리의 자유를 소중히 간직하더니

어느날 큰비는 우리를 뿔뿔이 흩어놓았다

개밥풀은 이리저리 전복되어

도처에서 그의 잎파랑이를 햇살에 널리우고

더러는 장강의 소요돌이에 휘말렸다

어디서나 휘몰리고 부딪치며 부서지는

개밥풀 개밥풀 장마 끝에 개밥풀

자욱한 볏짚에 가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논바닥을 파헤쳐도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

추풍이 우는 달빛이면

우리는 숨죽이고 운다

옷깃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귀뚜라미 방울새의 비비는 바람

그 속에서 우리는 숨죽이고 운다

씨앗이 굵어도 개밥풀은 개밥풀

너희들 봄의 번성을 위하여

우리는 겨울 논바닥에 말라붙는다

<創作과 批評·1977>

 

이동순 시인의 "개밥풀"은 민중의 삶과 생명력, 그리고 연대와 희생의 가치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작은 식물인 개밥풀을 통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 개밥풀:  개밥풀은 '개구리밥'이라는 여린 식물입니다. 영어로는 'duckweed'라고도 불리는 이 식물은 물 위에 떠서 자라는 작은 수생 식물입니다. 주로 논이나 연못, 호수 등에서 발견됩니다. 개밥풀은 작은 타원형의 잎을 가지고 있으며, 군락을 이루어 물 위를 덮습니다. 이 식물은 빠르게 번식하여 물의 표면을 덮을 수 있습니다. 수질 정화와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식물이며 개밥풀이 오염된 물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수질 오염의 지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개밥풀은 김수영의 '풀', 이성부의 '벼'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숨죽이며 울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봄의 번성을 꿈꾸는 우리의 삶, 민중의 함성을 보는 듯합니다.

https://m.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16826&Newsnumb=20221216826

 

[시집 리뷰] 김일형, 이동순, 이구락, 서종남의 신작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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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nthly.chosun.com

 

앵두밥

 

우리가 끼니 잇기도 몹시 힘들었던

그때가 아마 대동아전쟁 무렵이지

가을 거두어 먹던 나락

쌀독 바닥이 둥글게 드러나고

봄보리 나면 좀 살겠다던

그해는 감꽃도 더욱 노랗게 보였지

설익은 보리이삭 뜯어다가

네 엄니 맷돌에 얹어 두 손으로 비빌 때

학교 갔다 돌아온 네 큰형은

빈 쌀독에 머릴 박고 따라오기를 불렀지

그 사이 보리껍질 조금씩 벗겨지고

네 엄니 손바닥 골엔 피가 맺혔지

한 겹 벗긴 보리알을 솥에 삶아내어

오뉴월 멍석 위에 오래 말리고

디딜방아 뭉치 끝에 쿵쿵 찧을 때

네 엄니 감꽃으로 허기를 달래고

내 가슴은 방아틀에 찢기는 듯하였지

찧어낸 보리알로 밥을 지으면

그 이삭밥 앵두알만큼 긁고 거칠어

사람들은 앵두밥이라고 부르곤 했지

눈물호 간을 맞춰 비벼멱던 염천에

이제 누가 그 앵두밥을 기억조차 하겠느냐

앵두밥 앵두밥 한이 맺힌 앵두밥

멀건 나물국에 방울방울 떨어지던

이제 누가 그 피눈물을 알고나 있겠느냐

<創作과 批評·1978>

 

이동순 시인의 시 "앵두밥"은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그 시절의 절박한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고난 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희망을 전달합니다. 대동아전쟁 시기, 일본제국주의 강점기, 독립전쟁 시기 보다도 한반도 남북전쟁 이후 50년대가 더 살기 힘들었다고 하던가요. 60년대에도 보릿고개 이야기가 있었고 70년대에도 혼분식을 강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80년 초 대홍수로 북한의 쌀을 지원받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음식이 넘쳐 나고 음식물 쓰레기가 새로운 산들을 만들어 낼듯 합니다. 그 속에서도 하루 한끼 밥을 먹기도 힘든 사람들이 있는 세상입니다. 조금 적게 남기지 않을 만큼 이 지구별과 다른 작은 인간들을 위해서 음식 쓰레기를 만들지 말아요.

 

 

새의 自由(자유)

 

새가 새장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새장을 새장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온실의 구석에서 겨울을 나며

부리에는 조그만 햇살을 물도 논다

아무리 날아도 더할 수 없이 네모난

하늘, 하늘 속의 새의 자유

한날절이면 둥지 속에

두어 개의 슬픈 새알을 낳으러 간다

푸른 산골과 메밀밭은

잊은 지 이미 오래다

횃대의 땅에서 횃대 하늘로

횃대의 하늘에서 횃대 땅으로

새는 조금도 새장을 느끼지 않고

그의 공간을 즐기는 것이다

<創作과 批評·1977>

 

이동순 시인의 "새의 자유"는 자유와 구속, 삶의 인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시로, 자유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인식과 태도에 달려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구속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내면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새장 안에서의 삶이 진정한 자유일까요? 새장이 익숙한 새들은 새장의 문을 열어 주어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새장에 머물러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 갈까요?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슬픔의 현실을 해학과 풍자로 극복하는 내 고향마을 사람들의 삶의 의지를, 언젠가는 시 속에 되살리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신화의 영역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 '두렵다. 왜이리 떨리는지. 무엇 때문에 가슴 저미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넌 해낼 수 있어 다시 한번 시작해 봐. you can do this.' 이 글을 남긴 누구여, 당신은 해내었나요? 해내었겠지요. 해내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