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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고두미 마을에서》 도종환, 창비시선 0048 (1985년 3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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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혈

 

다시는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

마지막 약속처럼 그대를 받아들일 때

채 가시지 않았던 상한 피 남아

이 신새벽 아내여, 당신이 내 대신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구나.

삶의 그 깊은 어딘가가 이렇게 헐어서

당신의 높던 꿈들을 내리 흔들고

아득히 가라앉는 창 밖의 하늘은

강아지풀처럼 나부끼며 나부끼며 낮아져

맥박 속을 흐느끼며 깊어가는구나

굳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당신의 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목숨을 따라

내가 한없이 들어가고 있구나.

그러나 아침 물빛 그대 이마에 손을 얹고

건너야 할 저 숱한 강줄기를 바라보며

아내여, 우리는 절망일 수 없구나.

 

접시꽃 당신은 삼십대 초반 위암으로 세상과 이별하였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 '각혈'에서는 접시꽃 당신과 겪고 있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과 인내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였으면 합니다.

 

 

이 땅에 봄이 올 때

 

이 땅에 봄이 올 때

백목련의 도도함이나 황매화 꽃자리를

먼저 생각지 말아라.

겨우내 굳어 있던 쟁기날 깨어 일어나

갈아엎은 부드러운 흙도 흙이려니와

이 땅의 삼월 점점이 뿌려진 풀들

윤달조차 끼여 올봄 그슬린 잔디뿌리 더듬으며

개울가 버려진 바위 엉서리 비집으며

부들부들 몸 떨며 눈 틔우는 들풀

벌금다지나 어린 참쑥잎 황새냉이순

이 땅 저 땅 가리잖고

지금쯤 남녘 어느 얕은 산발치서 신호하여

장백산맥 근처까지 불 붙이며

뿌릴 흔들고 있을 이 땅의 크낙한 일깨움

그 푸른 빛을 당신은 올봄도 또 보잖는가.

 

그 봄이 지나 유월을 목마 타고 넘고 여름 장마비가 거칠게 내립니다. 비 그쳐도 바람은 여전히 거칩니다. 올 여름 장마 게릴라성 호우처럼 순간 순간 폭탄을 쏟는다고 합니다. 무탈하게 여름 보내고 가을 즐기며 겨울 다독이며 그 푸른 빛을 또 볼 당신이기를.

 

삼월 삼짇날

 

삼월이라 삼짇날 푸른 물에 머리 감다

손바닥으로 물을 밀고 눈 들여다 바라보니

손목을 감으며 남에서 오는 재구금

지금쯤 남쪽의 어느 구름 아래로

제비떼 열지어 몰려오고 있겠지.

때로는 이른 비에 깃날개도 적시우고

빗물 묻은 부리를 닦으며도 오겠지.

청명 한식 지나고 나면 개나리도 옮겨 심고

그쯤이면 우리 마을 깊숙이 날아들어

개흙 찍어 지어놓은 제 살던 집 추녀끝

살구나무 북녘 마을 지붕 아래 서까래

암컷 수컷 짝을 지어 새끼 낳고 넘나들고

남쪽 마을 살던 제비 남쪽으로 찾아들고

북쪽 동리 살던 것은 북쪽으로 갈 테지.

삼월이라 삼진날 푸른 물에 머리 감다

두 손을 물에 넣고 재구름 만져보네.

 

서울에서는 제비 보기가 어려워졌지만 공기가 맑은 교외만 나가도 반갑게 반겨 주는 제비들.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순환. 이런 자연에서 고요와 평화를 느끼는 기회를 얼마나 가지고 사는지. 이 지구별 작은 동물 인가, 자연과 조화로운 관계 속에 생명의 이어나갔으면 하네요.

 

 

소금

 

형님은 뜨거움을 강조하지 않으셨다.

불볕 속을 견디고 견디어 가장

나중까지 남은 빛 하얀 소금을 만지시며

곰섬의 그 흔하디흔한 바닷물 앞에서

땀과 갈망의 그 중 무거운 것을 안으로 눅이어

빛나게 달구어진 살갖으로 물들이 탔을 때

그것들을 한 그릇씩 자루에 담아

이웃의 식탁에 조금씩 나누며 기뻐하셨다.

가장 뜨거운 햇살 또 시간을 지나

우리의 허영과 거짓들이 모두 비늘을 털고 날려간 뒤

비로소 양식이 되는 까닭을 알고 계셨다.

육중한 짐자전거 바퀴 위에서 튼튼히 삶을 궁글리며

형님은 한번도 뜨거움이라 강조하지 않으셨다.

 

불볓 속을 견디고 견디는 삶, 우리의 허영과 거짓들이 모두 비늘을 털고 날려간 뒤, 뚜벅뚜벅 묵묵히.

 

 

"역사와 민중은 내 가까운 피붙이와 내 자신 속에서 늘 꿈들거리고 있다. 이 모든 동시대인들의 삶에 몇 발짝 비켜서서 자학하고 탄식하며 오만함 속에 또는 신비한 체험 속에만 빠져서 반성문 같은 시, 변명 같은 시만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는 삶 속에, 이 땅 위에 튼튼히 뿌리를 박는 서정과 용기이어야 하리라 믿는다. 분단시대 약소민족의 아들로 태어나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들 속에 서서 튼튼한 시를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