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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龍仁(용인) 지나는 길에》 민영, 창비시선 0011 (1977년 8월)ㅡ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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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時代는

 

이 시대는 

불의 시대가 아니다.

形體(형체)가 다 타고 남은 재에서

덧없이 풀썩거리는 먼지의 시대다.

 

이 시대는

詩의 시대가 아니다.

짜고 남은 香油(향유)의 찌꺼기에서

고름 썩는 냄새가 나는 시대다.

 

숲 이룬 굴뚝에서는 연기가 오르지만

시든 肉身을 좀먹는 벌레,

생존의 고삐가 영혼을 옥조이는

飽滿(포만)으로 나빠진 斃死(폐사)의 시대다.

<1977·週刊시민>

 

1977년 수출 100만불 시대를 달리고 있었을 무렵, 시인은 열정적인 시대도 아니고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퇴락한 시대라고합니다. 부패와 퇴락한 시대, 물질적 풍요와 외형적 번영 뒤에 숨겨진 정신적 공허함과 도덕적 영적 붕괴와 타락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龍仁(용인) 지나는 길에 

 

저 산벗꽃 핀 등성이에

지친 몸을 쉴까.

두고 온 고향 생각에

고개 젖는다.

 

到彼岸寺(도피안사)에 무리지던

연분홍빛 꽃너울.

먹어도 허기지던

三春(삼춘) 한나절.

 

밸에 역겨운

可口可樂(가구가락) 물냄새.

구국 구국 울어대는

멧비둘기 소리.

 

산벗꽃 진 등성이에

뼈를 묻을까.

소태같이 쓴 입술에

풀잎 씹힌다.

<1977·月刊文學>

 

* 到彼岸寺(도피안사): 깨달음의 경지( 彼岸 )에 도달하는( 到 ) 사찰(寺)

* 可口可樂(가구가락): 입에 맞고 즐겁다, 마셔서 즐겁다, Coca-Cola

 

코카콜라가 상징하는 서구문화 때문에 고향이 옛 모습을 잃었다고 이야기하는 시일까요? 시인이 요즘 용인을 지나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격세지감? 산전벽해? ...... 아니면......??

 

 

대조롱 터뜨리기

 

당산학교 운동회날

대조롱 터뜨리기 하는 걸 보았다.

장대끝 매달린 대조롱 속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제기로 조롱을 치면

찢어진 거죽을 뚫고 비둘기가 날아오르기 마련.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

그래서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전날 밤, 그 속에 갇힌

비둘기의 불안은 헤아리지도 못하고!)

네 기쁨은 내 아픔 위에 세워진다.

<1972·時文學>

 

1970년대 초등학교 다닐 때 운동회 하루 전날, 다음 날 있을 대조롱박 터뜨리기에 쓰기 위해 어머니는 오재미를 만들어 주셨다. 준비해가 오재미를 신나게 던지다 보면 대조롱박이 터지고 종이 꽃가루가 날리며 큰 플랭카드가 나왔었는데. 비둘기를 넣어두었다니. 요즘 같으면 동물 학대로 고발당할 일이 겠군요. 당신의 기쁨은 나의 아픔 이어서는 좋은 사회, 좋은 지구별이 아니겠지요.

 

"첫 시집 <團章>이 나왔을 때, 내 주위는 짙은 어둠과 적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하여, 어줍잖은 노래들을 읽어 줄 독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고, 오직 해 저문 들판에 서서 씨를 뿌리는 農夫의 마음으로 책을 서점에 내맡겼었다. 그러나 <斷章>은 예상과는 달리 한 해 동안 20부가 팔렸으며, 그것은 내가 서점에 내놓은 그 책의 全量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내 五官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솟았고, 그것은 아직도 나를 叱咤(질타)하는 原動力(원동력)이 되고 있다. 즉, 자기가 사는 시대의 온갖 상황을 똑바로 보고 목청껏 노래 부르기만 한다면, 언제가는 귀담아 들어줄 사람도 있으리라는 確信(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