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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49

《즐거운 日記(일기)》 최승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040 (1984년 12월) 언제가 다시 한번 언젠가 다시 한번너를 만나러 가마.언젠가 다시 한번내 몸이 무덤에 닿기 전에. 나는 언제나 너이고 싶었고너의 고통이고 싶었지만우리가 지나쳐온,아직도 어느 갈피에선가흔들리고 있을 아득한 그 거리들. 나는 언제나 너이고 싶었고너의 고통이고 싶었지만그러나 나는 단만 들이키고 들이키는흉내를 내었을 뿐이다.그 치욕의 잔끝없는 나날죽음 앞에서한 발 앞으로한 발 뒤로끝없는 그 삶의 舞蹈(무도)를다만 흉내내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너를 피해달아나고 달아나는흉내를 내고 있다.어디에도 없는 너를 피해. 언젠가 다시 한번너를 만나러 가마언젠가 다시 한번내 몸이 무덤에 닿기 전에. (이 세계의어는 낯선모퉁이에서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최승자 시인의 시 '언젠가 다시 한번'은 깊은 상실감과 그리움.. 2024. 8. 6.
《지리산 갈대꽃》 오봉옥, 창비시선 0069 (1988년 7월) 난 너의 남편이야 이웃나라 북한여자와 결혼을 했어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우린 이 옷 저 옷 팽개치고 속살로 만났지아픈 허리 휘어감고 밤새 뒹굴었어무에 더 필요 있을까달덩이 같은 방뎅이 이렇게나 푸짐한데요건 분명 외국산이 아니었지한라에서 백두까지 몇천번 핥아도다시다시 엉기고 싶은데요건 분명 먼 사람이 아니었지무에 더 필요 있을까 난밤새 간 칼날보다 예리하게 세워다가온 오진 너에게 이몸 주고무에 더 필요 있을까 넌기다리다 지친 고운 몸 오늘사 활짝 여니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일----- 난 너의 남편이야해외토픽에서 떠들었어신문마다 특종감이라 지껄였어도망을 갔지세상에서 가장 원수라는 나라북한여자와의 결혼은매국노보다 더 반역이기에 염병할혼인신고는 두만강에 흘려보내놓고숨었지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뛰었지3.. 2024. 8. 6.
《금빛 은빛》 홍희표, 창비시선 0064 (1987년 9월) 금빛 은빛 - 씻김굿 16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면임진강변의 민들레하이얀 남으로 떠나가네. 한양으로 부산으로달리고 싶어도달리지 못하는 鐵馬(철마).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면임진강변의 민들레하이얀 낙한산 달고북으로 북으로 떠나가네. 평양으로 신의주로달리고 싶어도달리지 못하는 鐵馬(철마). 금빛 은빛 혼령만 오가고 ...... 홍희표 시인의 시 "금빛 은빛"은 한반도의 분단과 그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 그리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현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이산가족이 느끼는 그리움과 상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임진강변의 민들레를 통해 분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민들레는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지만 .. 2024. 7. 31.
《푸른 별》 김용락, 창비시선 0062 (1987년 3월) 푸른 별 안마당무더운 한여름 밤이 빛을 틔워가면타작 막 끝낸 보리 북더기 위에서개머루 바랭이 쇠비름 똥덤불가시풀 들이서로의 몸을 비비며마지막 남은 목숨 모기불 만들기에 한창입니다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초저녁 샛별이 뜨고연기 맵고 극성스로울수록울양대 넌출 세상 수심보릿대궁 한숨소리 깊어갈수록별은 더욱 깊어 푸르러갑니다올 여린 멍석 위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옛이야기에 취하다 보면어느덧아버지의 야윈 어깨 위로 걸리는 초생달이밤이슬에 반짝이고달맞이꽃 개울물에 목욕 갔던누나들의 발짝 소리가쿵쿵 좁은 골목길을 흔듭니다나는 할머니 이야기의 숨결을 마저 이으며안간힘을 쓰다가 못내 잠이 들면 "밤이슬은 몸에 해롭다방에 들어가서 자그래이"나는 누군가의 포근한 품에 안겨 어디론가 가고내 누웠던 그 자리엔덩그로니 별 하나 떨어.. 2024. 7. 31.
《이슬처럼》 황선하, 창비시선 0067 (1988년 3월) 序詩(서시) - 이슬처럼 길가풀잎에 맺힌이슬처럼 살고 싶다.수없이 밟히우는 자의멍든 아픔 때문에밤을 지새우고도,아침 햇살에천진스레 반짝거리는이슬처럼 살고 싶다.한숨과 노여움은 스치는 바람으로다독거리고,용서하며사랑하며감사하며,욕심 없이한 세상 살다가죽음도크나큰 은혜로 받아들여,흔적 없이증발하는이슬처럼 가고 싶다. 황선하 시인(1931 ~ 2001)은 1962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을 통해 등단하였습니다. "평생 시집 한 권이면 족하다"며 꼭 한 권의 시집 을 남기고 정말 이슬처럼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시인이 말한 '이슬'은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못하는 그런 깊은 계곡에 매달린 투명하고 찬란한 그런 이슬이 아니라 " 수없이 밟히우는 자의 / 멍든 아픔 때문에 / 밤을 지새우고도 / 아침 햇살에 .. 2024. 7. 30.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김언희, 민음의 시 0095 (2000년 3월) 햄버거가 있는 풍경 식빵 한 조각을 깔고 식빵 한 조각을 덮고다져진 살코기가 오한을참고 있다 짓무른 상추 혓바닥에검은 반점들이 번지고 엎어놓은 스텐 식기 아래 두 손을 사타구니에 찌른 채 도르르 몸을 말고 죽어 있는 괄태충 행운목은, 토막난 몸에서 돋아나오는 잎사귀를 증오한다 제 잎사귀가아닌 푸른 김언희 시인의 시 '햄버거가 있는 풍경'은 현대 사회의 소외와 부조리를 햄버거라는 일상적인 음식을 통해 묘사한 작품입니다. 시는 불편한 이미지와 강렬한 대조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햄버거라는 친숙한 음식 속에 숨겨진 고통과 파괴,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의 소외와 고립을 통해 자신이 소비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 괄태충: 민달팽이  그라베   그 여자의 몸속에는 그 남자의 시신.. 2024.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