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87 《콜리플라워》 이소연, 창비시선 0503 (2024년 6월) 콜리플라워 콜리플라워가 암에 좋다니 사 오긴 했는데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 꽃양배추보다는 사람이 더 좋아"*댈러웨이 부인은 이 말을 다른 말과 헷갈리고나는 이 말은 누가 했는지 헷갈린다 조난당한 사람들이들판에 쌓인 눈을 퍼 먹는 장면을 봤다콜리플라워 맛이 난다 진동벨이 울린다암 걸린 애가 커피 가져와암에 걸리면 맘에 걸리는 말이 많다아픈 건 마음밖에 없네눈 뭉치 속에 숨겨놓은 돌멩이를믿고 싶다흰빛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내가 한 말들이 맘에 걸려 있다아파트 화단에 10층에서 떨어진 이불이 걸려 있다 엄마가 동영상을 보냈다나의 여인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트로트 음악이 깔리고꽃을 찍은 사진 위에 수놓은 건강 상식첫 페이지는 오이와 양파를 꼭 먹으라는 이런 건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거야 나뭇가지 휘어지는 밤흰 눈을.. 2024. 7. 23. 《개밥풀》 이동순, 창비시선 0024 (1980년 4월) 序詩(서시) 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남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달리던 노루는 찬 기슭에 무릎을 꺾고날새는 떨어져 그의 잠을 햇살에 말리운다지렁이도 물 속에 녹아 떠내려가고사람은 죽어서 바람 끝에 흩어지나니아 얼마나 기다림에 설레이던 푸른 날들을노루 날새 지렁이 사람들은 저 혼자 살다 가고그의 꿈은 지금쯤 어느 풀잎에 가까이 닿아가쁜 숨 가만히 쉬어가고 있을까이 아침에 지어먹는 한 그릇 미음죽도허공에 떠돌던 넋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리라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날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성난 목소리도 나직이 불러보던 이름들도언젠가는 죽어서 땅위엣것을 더욱 번성하게 한다대자연에 두 발 딛고 밝은 지구를 걸어가며죽음 곧 새로 태어남이란 귀한 진리를.. 2024. 7. 21. 《트렁크》 김언희, 세계사 (1995년 9월) 아버지의 자장가 이리 온 내 딸아네 두 눈이 어여쁘구나먹음직스럽구나요리 중엔어린 양의 눈알요리가 일품이라더구나 잘 먹었다 착한 딸아후벼 먹힌 눈구멍엔 금작화를심어보고 싶구나 피고름이 질컥여물 줄 필요 없으니, 거좋잖니 ...... 어디 보자, 꽃핀 딸아콧구멍 귓구멍 숨구멍에도 꽃을꽃아주마 아기작 아기작 걸어다니는살아 있는 꽃다발사랑스럽구나 이리 온, 내 딸아아버지의 바다로 가자일렁거리는 저 거대한 물침대에너를 눕혀주마아버지의 바다에, 널잠재워주마 김언희 시인의 시 "아버지의 자장가"는 너무 강렬하고 섬뜩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 시는 극단적인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왜곡된 사랑과 폭력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이 시는 독자에게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은밀한 폭력과 학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라는 이름으.. 2024. 7. 20. 《푸른 편지》 노향림, 창비시선 0433 (2019년 6월) 비눗방울 놀이 하는 부부 맹인 부부가 유치원 마당 구석 벤치에나란히 앉아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아이가 수업 받는 동안 이마 맞대고빨대로 하늘 높이 날리는 비눗방울들더러 키 낮은 편백나무에 걸리기도 하고두짝의 지팡이를 기대어둔바위의 등에 앉아 쉬어가기도 하고공중 높이 떠 올라가기도 한다. 아가, 보아라, 비눗방울은 일곱 무지개 빛깔이란다.네가 세상에서 제일 먼저 발음하게 된바다라는 이쁜 말이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초록빛 생명의 빛깔이라는데이 비눗방울 안에 웅크린 태아처럼 그게 숨어 있겠지.그 안에 숨은 눈 코 입을 너는 찾을 수 있지. 누군가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간다.제발 비눗방울을 터뜨리지 말았으면.너희들 희망을 밟지 말았으면. 노향림 시인의 시 "비눗방울 놀이 하는 부부"는 맹인 부부가 유치원 마당.. 2024. 7. 17.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신용목, 창비시선 0411 (2017년 7월)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면 결국 그 시를 읽는 사람의 몫일테니시인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와 그 시를 읽는 사람의 해석은일직선일 수도, 어느 한 두 곳에서 잠시 만날 수도, 아니면 평행선일 수도 있으니신용목 시인이여 당신의 의도와 다른 해석이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시오그리고 소통이 실패했다고 자책하지 마시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고 창조이니 숨겨둔 말 신은 비에 빗소리를 꿰매느라 여름의 더위를 다 써버렸다. 실수로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구하기 위하여 안개가 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아침이었다.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신용목 시인의 시 '숨.. 2024. 7. 17. 《보고 싶은 오빠》 김언희, 창비시선 0396 (2016년 4월) 회전축 23도26분21초4119 지구의 기울기는발기한 음경의, 기울기 이 기울기를 회전축으로지구는 자전한다 창비시선을 하루에 한 권씩 읽으며 정리하고 하고 있습니다. 급성 충수염(맹장염) 수술을 하고 병원을 나와 집에 들어와 이번 주에 읽을 시집, 삼백번 뒤쪽의 시집 네 권을 집었습니다. 그 가운데 김언희 시인의 시집 . 2016년 출간되었을 때 사서 읽지도 않고 책장에 넣어두었었나 봅니다. 첫 시 '회전축'을 읽으며 처음인 것을 알았습니다, 김언희 시인의 많은 시들 가운데 제가 읽은 첫 시였습니다. "뭐지? 지구가 기울어서 회전하며 도는 것을 남자의 성기가 발기한채로기울어서 돌고있다고 표현하는 이렇게 강렬하고 도발적 이 시는 뭐지?" "도대체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은 누구지?" 1953년 태어나 환갑을.. 2024. 7. 16. 이전 1 ··· 3 4 5 6 7 8 9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