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87 《즐거운 日記(일기)》 최승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040 (1984년 12월) 언제가 다시 한번 언젠가 다시 한번너를 만나러 가마.언젠가 다시 한번내 몸이 무덤에 닿기 전에. 나는 언제나 너이고 싶었고너의 고통이고 싶었지만우리가 지나쳐온,아직도 어느 갈피에선가흔들리고 있을 아득한 그 거리들. 나는 언제나 너이고 싶었고너의 고통이고 싶었지만그러나 나는 단만 들이키고 들이키는흉내를 내었을 뿐이다.그 치욕의 잔끝없는 나날죽음 앞에서한 발 앞으로한 발 뒤로끝없는 그 삶의 舞蹈(무도)를다만 흉내내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너를 피해달아나고 달아나는흉내를 내고 있다.어디에도 없는 너를 피해. 언젠가 다시 한번너를 만나러 가마언젠가 다시 한번내 몸이 무덤에 닿기 전에. (이 세계의어는 낯선모퉁이에서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최승자 시인의 시 '언젠가 다시 한번'은 깊은 상실감과 그리움.. 2024. 8. 6. 《지리산 갈대꽃》 오봉옥, 창비시선 0069 (1988년 7월) 난 너의 남편이야 이웃나라 북한여자와 결혼을 했어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우린 이 옷 저 옷 팽개치고 속살로 만났지아픈 허리 휘어감고 밤새 뒹굴었어무에 더 필요 있을까달덩이 같은 방뎅이 이렇게나 푸짐한데요건 분명 외국산이 아니었지한라에서 백두까지 몇천번 핥아도다시다시 엉기고 싶은데요건 분명 먼 사람이 아니었지무에 더 필요 있을까 난밤새 간 칼날보다 예리하게 세워다가온 오진 너에게 이몸 주고무에 더 필요 있을까 넌기다리다 지친 고운 몸 오늘사 활짝 여니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일----- 난 너의 남편이야해외토픽에서 떠들었어신문마다 특종감이라 지껄였어도망을 갔지세상에서 가장 원수라는 나라북한여자와의 결혼은매국노보다 더 반역이기에 염병할혼인신고는 두만강에 흘려보내놓고숨었지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뛰었지3.. 2024. 8. 6. 《 GG 》 김언희, 현대문학 핀 시리즈 PIN 025 (2020년 3월) 생 로랑 선물을 받는다장갑이네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가죽, 물개 좆으로 만든생 로랑 장갑 장갑 속을 들여다본다 이것은屍姦(시간)같고이것은獸姦(수간)같고劫姦(겁간)같고뒤집혀질로둔갑한이것은모종의협잡같고손가락을찔러넣어서라도 세워라, 나를! 촉촉한 물개 가죽은 살에 착 감기고 장갑은손가락들을 흠씬 빨아들인다 입처럼항문처럼 너는, 죽은 물개의 입에손가락을 찔러 넣은 채 살게 될 거다 너는, 죽은 물개의 항문에손가락을 찔러 넣은 채 살게 될 거다 다시 죽을 수 없게 된 물개 열 마리가열 손가락을 쭉쭉 빨아댈 거다 너는 쭉쭉 빨릴 거다 골수가 녹아내리고 창자가 녹아내리고 뼈마디가 녹아내릴 거다 너는이 장갑을 영영 벗을 수 없을 거다 구멍 속의 손가락들은 이미 구멍의 것이미 질척거리고 산 채 벗겨져 더 질 좋은 생.. 2024. 8. 6. 《봄비를 맞다》 황동규, 문학과지성 시인선 0604 오색빛으로 몸 다 내주고 나서전복 껍데기는 오색빛 내뿜지.몸 없어진 곳에 가서도 노래하시게.더 낭비할 것이 사라진 순간몸 있던 자리 훤히 트이고뵈지 않던 삶의 속내도 드러나겠지.좋은 날 궃은 날 가리지 않고어디엔가 붙어 기고 떨어져서 기는기느라 몸 없어진 것도 모르고계속 기고 있는 몸 드러나겠지.마음먹고 다시 둘러보면주위의 모두가 기고 있다.저기 날개 새로 해 단 그도 기고 있다.뵈든 안 뵈든 묵묵히 기는 몸 하나하나가오색빛 새로 두르게 노래하시게. 팔순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는 황동규 시인의 시 "오색빛으로"는 삶과 죽음,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주위의 모두가 기고 있다. 저기 날개 새로 해 단 그도 기고 있다"는 구절은 높은 위치에 있거나 특별해 보이는 존재들조차도 결국 같은.. 2024. 8. 4. 《사월 바다》 도종환, 창비시선 0403 (2016년 10월) 내소사 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전나무 숲길 오래 걸었으므로삼층석탑 전신 속속들이 보았으므로백의관음보살좌상 눈부처로 있었으므로단청 지운 맨얼굴을 사랑하였으므로내소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깊고 긴 숲 지나요사체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그가 붉은 단풍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능가산 품에 깃들여 고즈넉할 때는 나도그로 인해 깊어지고 있었으므로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다 안다고 말하곤 하였다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종양이 자라는 것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그의 오래된 내상(內傷)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그가 왜 직소폭포같은 걸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어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그의 .. 2024. 8. 4. 《요즘 우울하십니까?》 김언희, 문학동네시인선 004 해피 선데이 동물농장 사자들이코끼리 똥에온몸을문지르며 웃는 일요일 십일조를 받고하느님은내 죄를달게먹어주신다 자기!부르면동네 개가다돌아보는 일요일 애인 위에애인을눕히는 일요일애인이 애인 위에누적되는 일요일 김언희 시인의 "해피 선데이"는 일요일이라는 날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통해 현대인의 삶과 사회적 현상을 풍자적으로 묘사합니다. 시인은 일요일의 다양한 장면을 통해 인간의 욕망, 죄책감, 사회적 관계 등을 드러내며, 그 속에서 느끼는 허무함과 기이함을 표현합니다. 바셀린 심포니 내가 사랑하는 것은북두칠성의 여덟번째 별 내가 사랑하는 것은혓바닥에 구멍을 내고야 마는 추파춥스 내가 사랑하는 것은아침 새를 잡아서 발기발기 뜯고 있는 고양이 내가 사랑하는 것은발광하는 입술과 피를 빠는 우주 내가 사랑하는.. 2024. 8. 3. 이전 1 2 3 4 5 6 7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