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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87

《龍仁(용인) 지나는 길에》 민영, 창비시선 0011 (1977년 8월)ㅡ 이 時代는 이 시대는 불의 시대가 아니다.形體(형체)가 다 타고 남은 재에서덧없이 풀썩거리는 먼지의 시대다. 이 시대는詩의 시대가 아니다.짜고 남은 香油(향유)의 찌꺼기에서고름 썩는 냄새가 나는 시대다. 숲 이룬 굴뚝에서는 연기가 오르지만시든 肉身을 좀먹는 벌레,생존의 고삐가 영혼을 옥조이는飽滿(포만)으로 나빠진 斃死(폐사)의 시대다. 1977년 수출 100만불 시대를 달리고 있었을 무렵, 시인은 열정적인 시대도 아니고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퇴락한 시대라고합니다. 부패와 퇴락한 시대, 물질적 풍요와 외형적 번영 뒤에 숨겨진 정신적 공허함과 도덕적 영적 붕괴와 타락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龍仁(용인) 지나는 길에  저 산벗꽃 핀 등성이에지친 몸을 쉴까.두고 온 고향 생각에고개 젖는다. 到彼岸寺(도피안사)에.. 2024. 6. 30.
《고두미 마을에서》 도종환, 창비시선 0048 (1985년 3월) 각혈 다시는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마지막 약속처럼 그대를 받아들일 때채 가시지 않았던 상한 피 남아이 신새벽 아내여, 당신이 내 대신울컥울컥 쏟아내고 있구나.삶의 그 깊은 어딘가가 이렇게 헐어서당신의 높던 꿈들을 내리 흔들고아득히 가라앉는 창 밖의 하늘은강아지풀처럼 나부끼며 나부끼며 낮아져맥박 속을 흐느끼며 깊어가는구나굳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당신의 살 속으로걸어 들어가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목숨을 따라내가 한없이 들어가고 있구나.그러나 아침 물빛 그대 이마에 손을 얹고건너야 할 저 숱한 강줄기를 바라보며아내여, 우리는 절망일 수 없구나. 접시꽃 당신은 삼십대 초반 위암으로 세상과 이별하였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 '각혈'에서는 접시꽃 당신과 겪고 있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과 인내를 노.. 2024. 6. 30.
《피뢰침과 심장》 김명수, 창비시선 0055 (1986년 8월) 돌고래를 위하여 - 분단된 이 땅의 철조망 아래, 안타까이 숨져간 미물들의 넋을 위해 1985년 1월 18일캄캄한 밤 11시 15분경에경상남도 삼천포시 해안초소 앞바다먹이를 찾았을까갈 길을 잃었을까코 둘레도 정이 가는 돌고래 한 마리가해안으로 물살쳐 헤쳐오고 있었다 어디에 살았던 포유류였는지지난 봄 대공원 수족관에서어린 딸이 손뼉 치고 환호하던 그 돌고래재롱을 부리던 또 다른 한 마리의형제였을까 동족이 총 겨누고 마주보는 이 땅에싸늘한 해안초소경비를 알 수 없던아직도 다 자라지도 못했다는그 돌고래 한 마리는두 사병에 의해무참하게 사살되어 떠올랐다 하는데 차라리 읽지 않아도 좋을 석간의 기사여 ...... 분단된 이 땅의 철조망 아래안타까이 죽어간 미물들의 넋들이어찌 너 한 마리뿐이랴마는 1985년 1월 .. 2024. 6. 27.
《달 넘세》 신경림, 창비시선 0051 (1985년 9월) 달 넘세 넘어가세 넘어가세논둑밭둑 넘어가세드난살이 모진 설움조롱박에 주워담고아픔 깊어지거들랑어깨춤 더 흥겹게넘어가세 넘어가세고개 하나 넘어가세얽히고 설킨 인연명주 끊듯 끊어내고새 세월 새 세상엔새 인연이 있으리니넘어가세 넘어가세언덕 다시 넘어가세어르고 으르는 말귓전으로 넘겨치고으깨지고 깨어진 손서로 끌고 잡고 가세크고 큰 산 넘어가세버릴 것은 버리고디딜 것은 디디고밟을 것은 밟으면서넘어가세 넘어가세세상 끝까지 넘어가세 * '달 넘세'는 흔히 '달람새'라고도 하는데 경북 영덕 지방에서 하는 여인네들의 놀이 '월워리 청청'의 한 대목으로서 손을 잡고 빙 둘러앉아 하나씩 넘어가면서 '달 넘세' 노래를 부른다. '달을 놈아가자'는 뜻의 '달 넘세'는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일을 상징한다고 말해진다.   신경림 시인.. 2024. 6. 26.
《내 따스한 유령들》 김선우, 창비시선 0461 (2021년 8월) 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강릉 바닷가에서 사는 아홉살 좌 서연이, 해먹에서 놀다가 갑자기 짖기 시작한다. 왕왕, 왈왈왈, 캉캉, 크앙크앙, 와릉와릉...... 산책길에 만난 이웃집 강아지 생각이 난 듯 너무 오래 짖길래 한마디 한다. "목 아프지 않아?" "쉬잇, 지금 중요한 이야길 하는 중이예요." 한참을 더 짖어대는 인간 아이가 눈부시다.    저런 때가 내게도 있었다. 아홉살 열살, 열한살, 어린 동생들과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바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싶어서 한없이 귀를 낮추던 때, 이윽고 귀가 물거품처럼 부풀고 공기방울의 말이 내 몸으로 스르르 들어왔다 나가면서 바다와 대화하고 있다고 느껴지던 신비한 순간들이.   오전 내내 짖는 조카를 보며 잘 늙어가고 싶은 어른으로 딱 .. 2024. 6. 18.
《無等(무등)에 올라》 나해철, 창비시선 0044 (1984년 6월) 그건 아야해 풀을 꺾는 내 아이에게풀은 아프다고 알려줬다.아이는 꺾인 것을 보면언제나 아야해그건 아야해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하나바보와 같은 이 행성.이쪽과 저쪽에서 끊임없이버려지는귀한 그 누구의 아버지, 누군가의자식과 아내, 그 행복,불도저에 밀리는 가족과족속, 그들의 평화와 기도,이대로 간다면사랑과 따뜻함을 다 익히기도 전에증오와 파괴의 추문은해일처럼 밀어닥칠 것이고너는 지극한 슬픔,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부끄러움에 울 것이다.아이야 너는 오늘도꽃을 꺾는 한 어른에게아야해, 그건 아야해작은 풀밭의 나라를 떠나며풀꽃들에게 손을 흔들며안녕 안녕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라고 합니다. 어떠 어른이냐면 경쟁에서 이기고,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고, 이름을 날리고, 뭐 그런가요, 다른 사람을 밟고 우.. 2024.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