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book)194 《푸른 별》 김용락, 창비시선 0062 (1987년 3월) 푸른 별 안마당무더운 한여름 밤이 빛을 틔워가면타작 막 끝낸 보리 북더기 위에서개머루 바랭이 쇠비름 똥덤불가시풀 들이서로의 몸을 비비며마지막 남은 목숨 모기불 만들기에 한창입니다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초저녁 샛별이 뜨고연기 맵고 극성스로울수록울양대 넌출 세상 수심보릿대궁 한숨소리 깊어갈수록별은 더욱 깊어 푸르러갑니다올 여린 멍석 위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옛이야기에 취하다 보면어느덧아버지의 야윈 어깨 위로 걸리는 초생달이밤이슬에 반짝이고달맞이꽃 개울물에 목욕 갔던누나들의 발짝 소리가쿵쿵 좁은 골목길을 흔듭니다나는 할머니 이야기의 숨결을 마저 이으며안간힘을 쓰다가 못내 잠이 들면 "밤이슬은 몸에 해롭다방에 들어가서 자그래이"나는 누군가의 포근한 품에 안겨 어디론가 가고내 누웠던 그 자리엔덩그로니 별 하나 떨어.. 2024. 7. 31. 《이슬처럼》 황선하, 창비시선 0067 (1988년 3월) 序詩(서시) - 이슬처럼 길가풀잎에 맺힌이슬처럼 살고 싶다.수없이 밟히우는 자의멍든 아픔 때문에밤을 지새우고도,아침 햇살에천진스레 반짝거리는이슬처럼 살고 싶다.한숨과 노여움은 스치는 바람으로다독거리고,용서하며사랑하며감사하며,욕심 없이한 세상 살다가죽음도크나큰 은혜로 받아들여,흔적 없이증발하는이슬처럼 가고 싶다. 황선하 시인(1931 ~ 2001)은 1962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을 통해 등단하였습니다. "평생 시집 한 권이면 족하다"며 꼭 한 권의 시집 을 남기고 정말 이슬처럼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시인이 말한 '이슬'은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못하는 그런 깊은 계곡에 매달린 투명하고 찬란한 그런 이슬이 아니라 " 수없이 밟히우는 자의 / 멍든 아픔 때문에 / 밤을 지새우고도 / 아침 햇살에 .. 2024. 7. 30. 《알고리즘에 갇힌 자기 계발》 마크 코겔버그 글, 연아람 옮김, 민음사 (2024년 4월) "자기 계발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자기 집착과 완벽주의와 결합하면서 고된 일이 되어버리다. 사회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둔갑하고 집단행동, 국가의 기능, 사회 경제 제도는 논의되지 않는다. 행복을 증대하고 자아를 실현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을 탈바꿈시켜야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기분이 나쁘면 그건 내 잘못이다. 누구나 부단히 자아 계발에 힘써야 한다. 모든 것은 내 손에 달려 있다. 이런 식의 사고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마음의 짐능 안긴다. 절망에 빠뜨릴 만큼 무거운 마음의 짐을 말이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자기 계발의 의무를 안고 있다. 쉼이나 재미를 추구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자기 계발을 한다. 직장이나 가정생활에서만 번아웃이 오는 게 아니라 아.. 2024. 7. 27.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김언희, 민음의 시 0095 (2000년 3월) 햄버거가 있는 풍경 식빵 한 조각을 깔고 식빵 한 조각을 덮고다져진 살코기가 오한을참고 있다 짓무른 상추 혓바닥에검은 반점들이 번지고 엎어놓은 스텐 식기 아래 두 손을 사타구니에 찌른 채 도르르 몸을 말고 죽어 있는 괄태충 행운목은, 토막난 몸에서 돋아나오는 잎사귀를 증오한다 제 잎사귀가아닌 푸른 김언희 시인의 시 '햄버거가 있는 풍경'은 현대 사회의 소외와 부조리를 햄버거라는 일상적인 음식을 통해 묘사한 작품입니다. 시는 불편한 이미지와 강렬한 대조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햄버거라는 친숙한 음식 속에 숨겨진 고통과 파괴, 그리고 그로 인한 인간의 소외와 고립을 통해 자신이 소비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 괄태충: 민달팽이 그라베 그 여자의 몸속에는 그 남자의 시신.. 2024. 7. 24. 《콜리플라워》 이소연, 창비시선 0503 (2024년 6월) 콜리플라워 콜리플라워가 암에 좋다니 사 오긴 했는데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 꽃양배추보다는 사람이 더 좋아"*댈러웨이 부인은 이 말을 다른 말과 헷갈리고나는 이 말은 누가 했는지 헷갈린다 조난당한 사람들이들판에 쌓인 눈을 퍼 먹는 장면을 봤다콜리플라워 맛이 난다 진동벨이 울린다암 걸린 애가 커피 가져와암에 걸리면 맘에 걸리는 말이 많다아픈 건 마음밖에 없네눈 뭉치 속에 숨겨놓은 돌멩이를믿고 싶다흰빛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내가 한 말들이 맘에 걸려 있다아파트 화단에 10층에서 떨어진 이불이 걸려 있다 엄마가 동영상을 보냈다나의 여인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트로트 음악이 깔리고꽃을 찍은 사진 위에 수놓은 건강 상식첫 페이지는 오이와 양파를 꼭 먹으라는 이런 건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거야 나뭇가지 휘어지는 밤흰 눈을.. 2024. 7. 23. 《개밥풀》 이동순, 창비시선 0024 (1980년 4월) 序詩(서시) 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남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달리던 노루는 찬 기슭에 무릎을 꺾고날새는 떨어져 그의 잠을 햇살에 말리운다지렁이도 물 속에 녹아 떠내려가고사람은 죽어서 바람 끝에 흩어지나니아 얼마나 기다림에 설레이던 푸른 날들을노루 날새 지렁이 사람들은 저 혼자 살다 가고그의 꿈은 지금쯤 어느 풀잎에 가까이 닿아가쁜 숨 가만히 쉬어가고 있을까이 아침에 지어먹는 한 그릇 미음죽도허공에 떠돌던 넋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리라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날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 있게 한다성난 목소리도 나직이 불러보던 이름들도언젠가는 죽어서 땅위엣것을 더욱 번성하게 한다대자연에 두 발 딛고 밝은 지구를 걸어가며죽음 곧 새로 태어남이란 귀한 진리를.. 2024. 7. 21.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