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65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변혜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593 하늘과 땅 사이에 뭐가 있더라? 인부는 먼저 공사를 진행 중이다. 푸른 초원 위에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집을 짓는 것은 나의 오래된 소망이었 다. 벽돌로만 집을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나를 위 해 기꺼이 해주겠다고 인부는 내가 가진 것을 아주 조금 만 받겠다고 말해주었다. 땀을 흘리며 줄눈을 바르는 인 부의 목덜미가 아름답고, 부지런히 구름을 캐내는 희고 푸른 하늘이 아름답고, 이 모든 아름다움은 오후에 상장 했다가 저녁이 되면 폐지될 예정이다. 아름답다는 말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 각을, 생각을 그만두는 마음 한편에 앉혀두고서. 기다려. 얌전한 개가 된 생각애개 명령한다. 지급 대금을 공란으 로 남겨둔 인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그 는 내게 첫눈에 반.. 2024. 4. 17.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김윤이, 창비시선 328 어른의 맛 결코 경험만이 아니고 아니고요 그걸 그냥 연애라 말할까봐요 1.5볼트짜리 건전지. 양극 바로 옆에 음극이네요. 시가지 걷다 시그널 음악 멎었을 때 한 걸음 반에서 한사코 숙여 발끝 보던 내게서 가장 먼 날 환히 상상할 수 있어요. 키스처럼 혀끝 대봐요. 찌릿찌릿하고 야릇한 씁씁한 맛 전류가 남았는지 알 수 있다네요. 그렇게 내가 흘러온 방향과 흘러가는 방향을 아는 거래요. 하지만 별로 권하진 말아요. 불 켤 수 있는 남은 양 알면 예기치 않게 놀랄 수 있겠네요. 기묘한 동작으로 형언키 어려운 청춘의 불빛들 충전할 수 없는, 날들은 눈부신 거죠 시침 땐 표정으로 눈 감아도 느껴지는 이상한 맛 몸뚱어리에 퍼지고 비로소 어른이 되어버렸죠 사랑이렀나요? 우리 아둔한 질문에 쓴웃음 지으며 몸만 남아 수.. 2024. 4. 16. 《누가 진짜 나일까?》 다비드 칼리 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나선희 옮김 나의 복제 인간이 나 대신 나의 삶을 사는 동안, 나는 오로지 일만 해야 하는 걸까? *2018년 9월 6일 라이킷에서 만난 인연 2024. 4. 10. 《Lost Forest》 글·그림 Alexandra Dvoronkova, 번역 이유선 어느 날 야생 벗섯을 따러 숲으로 갔는데 길을 잃어버렸어. 나침반이 고장 나 버렸지만 걱정하지 않았어. 나는 숲 근처에서 자라서 숲이 익숙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버섯을 조금 더 채취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버섯의 향기를 쫓아 깊은 숲으로 들어가자 평소에는 익숙했던 숲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어. 그때 전에는 본 적 없는 매혹적인 버섯을 발견했어. 마치 버섯이 나를 더 깊은 숲 속으로 안내하는 것 같았지. 그렇게 점점 더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 멀어진 거야. * 2018년 9월 6일 제주 탑동 칠성시장 '라이킷'에서 만난 인연 2024. 4. 10. 《하지 않으면 어떨까?》 글·그림 앨리슨 올리버, 옮김 서나연 문은 늘 할 일이 많았어요 숙제, 방 청소, 운동 연습, 음악 레슨, 수학 과외... 할 일, 또 할 일 자유로운 건 어떤 느낌일까? 제멋대로 굴어 보면 어떨까? 행복하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 2018년 10월 22일 제주 탑동 라이킷에서 만난 인연,라이킷은 이제 찾을 수 없을지도요...칠성시장에서는 문을 닫았답니다. 2024. 4. 10. 《하얀 사슴 연못》 황유원, 창비시선 493 천국행 눈사람 눈사람 인구는 급감한 지 오래인데 밖에서 뛰놀던 그 많던 아이들도 급감한 건 마찬가지 눈사람에서 사람을 빼면 그냥 눈만 남고 그래서 얼마 전 눈이 왔을 때 집 앞 동네 놀이터 이제는 흙이 하나도 없는 이상한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을 봤을 때 그건 이상하게 감동적이었고 그러나 그 눈사람은 예전에 알던 눈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거의 기를 쓰고 눈사람이 되어보려는 눈덩이에 가까웠고 떨어져 나간 사람을 다시 불러 모아보려는 새하얀 외침에 가까웠고 그건 퇴화한 눈사람이었고 눈사람으로서는 신인류 비슷한 것이었고 눈사람은 이제 잊혀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눈사람에서 사람을 빼고 남은 눈이 녹고 있는 놀이터 사람이 없어질 거란 생각보다 사람이 없으면 눈사람도 없을 거란 생각이 놀.. 2024. 4. 3.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