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덕장
아버지는 바다에 덕장을 세우셨다
바람이 그 덕장 속으로 빠졌고 고기들도 그 덕장의
기둥 사이로 지나갔다
덕장은 가끔 바닷물에 밀려 기울기는 했지만
결코 먼 곳으로 떠내려가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서른 살 때
한번은 남수평선까지 내려간 적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월은 이 바다에서 살았다
덕장이 그곳에 있었던 것은 그러니까
우연이 아니라 완전히 의지였다
아버지는 가끔 그 덕장 밑에서 잠을 잤고
나는 곤히 잠든 아버지를 보았다
덕장은 출렁거리고 흔들거렸어도
어느 한쪽 가라앉지 않고
지금도 덕장은 그 바다에 남아 있다
당신은 세상을 떠날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두고 떠나셨다
그리고 덕장만 그 바다에 남겨서
갈매기가 내리고 아이들이 올라가 놀게끔 했다
내가 지금도 알 수 없는 것은
이 바다에 덕을 맨 이 덕장
자랑스럽고 풀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업이다
나는 지금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달려가는 동풍과 배와 새를 조망하는
큰 축복을 지녔고
덕장은 그러니까, 떠내려가지 않으려는 그것이었다
늘 아침 햇빛 사방으로 퍼지는
시인은 아버지가 덕장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 힘쓴 과정을 통해 아버지의 헌신과 의지를 표현합니다. 덕장은 바람과 바닷물에도 흔들리지만, 결코 떠내려가지 않고 자리를 지킵니다. 이는 아버지가 어려움 속에서도 삶의 터전을 굳건히 지켜낸 모습을 상징합니다. 아버지의 삶과 그가 남긴 유산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담겨 있으며, 이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느껴집니다. 덕장은 아버지의 강한 의지와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어머니 친구들
어머니는 노동자였다
서른하나 되던 해 어머니는 쉰둘
어머니가 아니라 노동자였고
저녁마다 허리를 찔리는 이동녀는
그렇게 남동의 영랑동서 살고 있다
밤중까지 쇠로 잠긴 삭월셋방
아프지 않는 사천 원
밤 열한시까지의 홀어머니 노동이
사타구니까지 올라오는 검정장화를 신고
탕코 안에 들어가 질컥질컥 물노가리를 밟는다
이 밤도 그의 어머니는 두 리어카
노가리를 떼기*하며 대가리를 자를 것이다
비디오 아트 위성중계로
새로운 예술 장르가 생긴 그때까지도
그의 시는 고물은 아니지만
일 적을 때도 붙어 있자니
영랑통 부인네들 일자리를 다툰다
백촉 전등 밑에 눈이 어두운
어린이 어머니들 청장년의 노모들
칼소리가 창고 밖으로 들린다
생전서부터 가난한 여자들
궁색한 어머니의 친구들 이웃 처녀들
철문 틈으로 새는 불을 보고
어머니를 불려낼 수 없었다
다 고장난 생애들의 신장과 오금팍
고기 비닐의 희망은 무엇인가
인간다운 삶은 어디 있는가
자잘대던 물빛 그림자 어른대던 천정
봄날의 내 모성 이동녀
일곱시부터 노동은 쪼그리고 앉아
상징도 의미도 될 수 없는
칼질, 칼질 노동이다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비린내를 내는 어머니
이동녀는 노동자다
열여섯 시간 노동에 사천 원을 받는 그녀
일당은 돼지고기 두 근 값
생로병사 말고 다른 뭣이 또 슬픈 게 있는가
나의 문학이여
어머니는 군납업체 노동자
아니 그 늙은이는 지금도 조미공장 노동자
* 고기의 뱃바닥을 칼로 가르는 일
고형렬 시인의 시 '어머니 친구들'은 어머니와 여성 노동자들의 고된 삶과 그들의 희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다운 삶에 대한 문제를 다룹니다. 가난과 노동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을 냉철하게 묘사하고, 그들이 처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비판합니다. 또한,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시를 통해 시인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이 제대로 인식되고 존중받아야 하며, 그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의식을 담고있습니다.
사랑의 편지 - 1986년 5월
오월 서울 해가 뉘엿뉘엿 떨어졌던가
서울시민 불자들이 부처님 자비를 생각하며
부처님 크신 무량광명을 기원하면서
강 건너 여의도에서 대교를 건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단다 윤이야
그때는 나라가 민주주의가 되지 못해
모든 거리와 마음 어지러웠고
한 달 전인 사월만 해도 노동자가
분신자살을 하고 서울대학교 오빠들이
또 분신자살했단다
그들은 우리를 위한 군사작전으로
남동해안과 내륙에 와 있었지
또 네가 한 살 때 은이야
곳곳에서 농민 청년 학생 노동자들이
빼앗긴 자유와 경제를 돌려달라
큰 주장들을 요구하고 있었고
많은 지식인도 점점 말이란 걸 하고 윤이야
그런 오월인 오늘 우리 식구는
연등행렬 줄지어오는 조용한 한강
대교를 맞이한다 차가 다니지 않는 밤 한강 대교는
오직 사람과 세상에 평화와 자비
사람이 소중한 사랑이 있기를 빌지
사람들은 속으로 빌고 빌면서
한 발 두 발 천 발 만 발 줄지었단다
아빠도 윤이야 엄마와 난간을 잡고
다리 밑에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면서
사람과 노동과 올바름이
바로 설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빌었다
그들이 우리 앞에 다가와서
불밝힌 연등을 손과 손에 들고
조용히 우리 곁을 지나가는
윤이 너도 이날을 환히 기억하거라
엄마 등에 업힌 너도
네가 아지 못하는 이 나라가 하나가 될 때까지.
고형렬 시인의 시 '사랑의 편지 - 1986년 5월'은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어린 딸에게 편지 형식으로 당시에 겪은 역사적 순간을 전하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투쟁,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염원을 이야기합니다. 1986년 3월 박영진 님이, 4월에는 김세진 님과 이재호 님이, 5월에는 이동수 님이 분신 항거하였습니다. 이 시는 이런한 민주화 운동의 맥락에서 쓰였으며,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노동자, 학생, 농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와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고,, 시인은 그 모든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그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딸에게 그날의 기억을 간직하라고 당부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2024년 역사의 수레바퀴는 1980년대를 되돌아 1945년 해방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인민(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은 인민(국민)이 주인인 자주독립국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2396.html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0214020004893
그 이전 여름 밤
아내는 여름 밤 바닷가에 누워
하늘을 보았소 나와 살면서
하늘과 맞닿은 바닷가
백여 미터 높이 되는 산에서 살면서
아내는 젖이 불어서 동녘으로 난
조그만 굴뚝 밑에다 짜서 버리며
돌아올 때 모습처럼 날은 저물고
찾아오는 물소리는 기억을 반짝이고
산 그림자 어두운 길을 걸어
마을 서쪽 밭 사이로 돌아오는
맑고 깨끗한 소의 워낭소리와
굵은 발굽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더니
보셨수 아주 가까와진 여름 밤하늘
소곤거리는 아내의 물소리
바른 골을 찾아오고 있던 물빛을
땀때 묻은 저고리 흰 동정
흥건히 젖은 해변가 아내와
마당에 누워 하늘을 보았소
당신은 밝은 밤하늘을 보셨수
가마닛장을 깔고 마당에 곧바로 누워
맑은 하늘을 그 하늘 속의 것들을
고형렬 시인의 시 '그 이전 여름 밤'은 일상 속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느끼는 소박한 행복과 추억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내가 여름 밤하늘을 바라보며 보내는 평온한 모습을 통해 자연 속에서 느끼는 평화와 안식을 강조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일상 속에서의 행복과 함께, 지나간 시간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내의 소곤거리는 물소리와 소의 워낭소리, 그리고 저물어가는 하늘과 어두운 산 그림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이 시는 자연과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행복과 사랑을 그리며, 그 순간들이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아내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고요한 순간은 단순한 일상을 넘어서는 깊은 감동을 전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海靑(해청) 2
불사조라고 생각했다
짠 바닷물 속에서도 살고 푸른 하늘에도 살 그것을
가오리 같은 것으로도 보았다
끝내는 다 탄 뒤
다시 돌아오는 불사조를
그것을 생각한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끝내는 소멸하지 않는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오래 전 아버지 말이지
바다를 가르고
두 날개를 벌리고 치솟아 올라간
고기 같은 것이기도 했다
뻘건 아가미를 지닌
또
하늘로 낚아 올려지는 쥐 같기도 한
해청이라 할 만한 것
그는 분명
영원한 그리움 목이 타는 애태움
새까맣게 타면서
온몸이 숯불 조각으로 박혀
타들어가면서도
끝내는 다 탈 수가 없는 이름
땅에 사는 사람들
하늘 속의 불꽃 하나를
살려 달란다
이 세상 지킬 듯 살아 퍼덕이는
당신 가슴속
바다 하늘 속 해청
안 탈 수 없는 너
우천과 폭염 속에 떠 있는, 살아 있는 이름아
저걸 어쩌나!
실 토막의 화약실들 퍽퍽 타들어가는
저 생명
저 여름 생명을
그러나 그는 바닷물 속으로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무서운 날짐승의 원한, 톱날
고형렬 시인의 시 '해청2'는 생명의 불멸성과 인간의 그리움, 그리고 그 속에 깃든 고통을 담고 있습니다. 시에서 '해청'은 불사조처럼 바다와 하늘을 넘나들며, 끝내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체로 그려집니다. 이 생명체는 타올라 재가 되지만, 다시 돌아오며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는 불멸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을 상징합니다. 시인은 '해청'을 통해 끊임없이 타오르는 생명의 본질과 그것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불꽃 하나를 살려 달라'는 요청은 소멸하지 않는 생명과 그 생명을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해청'은 바다와 하늘 어디서든 존재하며, 세상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력의 상징합니다. 이 시는 소멸과 재생, 생명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그리움과 애뜻함을 이야기합니다. '해청'은 이러한 감정과 함께 불안정한 인간 존재 속에서도 지속되는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합입니다. 시인은 이를 통해 삶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불멸에 대한 인간의 깊은 열망을 담고 있습니다.
※ 해청은 맷과의 새. 편 날개의 길이는 30cm, 부리의 길이는 2.7cm 정도로 독수리보다 작습니다. 등은 회색, 배는 누런 백색이며, 부리와 발톱은 갈고리 모양입니다. 작은 새를 잡아먹며, 사냥용으로 사육하기되기도 합니다. 해청의 정식 명칭은 '매'이며, 우리나라 사냥매인 해동청을 가리킵니다. 보라매는 알에서 깬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매이고, 수진이는 집에서 여러 해를 기른 매입니다. 해동청은 푸른빛이 나는 털을 가진 매입니다. 2010년 11월 16일, 한국의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번 등재는 한국뿐만 아니라 벨기에, 프랑스, 몽골 등 11개국의 매사냥이 공동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매사냥은 도박처럼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매력이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매사냥에 빠지면 ‘삼뜯기’가 된다고 하는 매사냥의 중독성을 풍자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매가 꿩을 뜯는 것이요, 둘째는 남편이 나무를 해오지 않아서 부인이 울타리를 뜯는다는 것이요, 셋째는 매사냥을 나간 남자가 수풀을 헤치며 다니다가 가시나무에 옷을 뜯긴다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매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중국의 황제들이 자꾸 매를 요구하여 이를 두고 조정에서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해청 온다"는 매가 날아온다는 의미로, 특히 사냥에서 매를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매가 하늘에서 날아와 사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거나 돌아오는 모습을 뜻할 수 있습니다. 더 넓게는, 어떤 중요한 일이 다가오거나 준비된 일이 시작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쓰일 수 있습니다.
'국민학교 입학 전부터 아버지가 "해청 온다"고 말했다. 바다 주변에 날아다니는 무엇인가보다 짐작했다. 언제는 초봄 샛바람이고 또 언젠가는 가뭄도 같았다. 무섭기도 한 그걸 나는 성질이 있는 날아다니는 짐승 같은 것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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