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을 메우다
마당에 손바닥만 한 못을 파고 연(蓮) 두어 뿌리를 넣었다
그 그늘에 개구리가 알을 슬어놓고 봄밤 꽈리를 씹듯 울었다
가끔 참새가 와 멱을 감았다
소금쟁이와 물방개도 집을 지었다
밤으로 달이나 별이 손님처럼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다
날이 더워지자 개구리를 사랑하는 뱀도
슬그머니 산에서 내려왔는데
그와 마주친 아내가 기겁을 한 뒤로
장에 나가 개 한마리를 구해다 밤낮없이 보초를 서게 했다
그사이 연은 막무가내 피고 졌다
마당이 더는 불미(不美)하지 않았으나
마을에 젊은 암캐가 왔다는 소문이 나자
수컷들이 몰려들어 껄떡대는 바람에 삼이웃이 불편해했고
어쩌다 사날씩 집을 비울 때면 그의 밥걱정을 해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모슬 메워버렸다
마당에 평화가 왔다
시는 집 마당에 작은 못을 파고 연을 심으며 시작됩니다. 이 작은 연못은 개구리, 참새, 소금쟁이, 물방개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모여들며 작은 생태계를 이룹니다. 이곳은 단순한 연못을 넘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이 깃든 공간이 됩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생태계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생활 사이에서 충돌하며 깨지기 시작합니다. 뱀이 나타나자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이 드러나고, 결국 개를 들여 보초를 서게 하는 등 자연에 개입하게 됩니다. 이후 수컷 개들이 젊은 암캐를 쫓아다니며 마을의 평화를 해치는 문제까지 일어납니다. 이처럼 작은 연못이 일으킨 자연의 복잡성과 불편함이 인간의 삶에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결국 연못을 메우면서 마당에는 평화가 찾아오지만, 이는 자연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지, 그리고 인간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월식하는 밤에
모년 모월 모시에 달이
무서운 벌레에게 잡아먹히거나
한낮에도 천지가 캄캄하게 되는 걸
신라나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저들이 뭘 잘못해서 그런 줄 알고
하늘에 용서를 빌었다는데,
소나 고양이는 물론 모르긴 몰라도
기러기나 고래도 그런 날은 일을 안하고
집에서 아이들이나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무들도 제 몸의 어딘가에
까마귀처럼 새까맣던 날을 새겨두고
그때쯤이면 밖에 안 나갔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십수년 하늘을 날아
어떤 별에 착륙선을 내려보낸 인공위성이 있었다
세상에, 사람들이 그런 기계를 다 만들다니
그런데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것들이
그 먼 데는 왜 가는지,
거기 내려도 되는지
그 별에게 물어봤을까?
이상국 시인의 시 "월식하는 밤에"는 인간의 기술 발전과 자연에 대한 태도를 성찰합니다. 시인은 과거 신라나 바빌로니아 사람들처럼 월식을 신성한 사건으로 여기고, 인간이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이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때 사람들은 하늘에 용서를 빌고, 동물들조차 일을 멈추고 조용히 지냈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인간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자연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심지어 인공위성을 통해 다른 별에 착륙선을 보내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인간의 지나친 자신감을 경계합니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현대인들이 왜 굳이 먼 우주로 가야 하는지, 그곳에 착륙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묻습니다. 이 시는 인간의 기술적 성취가 경이롭지만, 동시에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연결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합니다. 시인은 인간이 자연과의 균형과 조화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을 우려하며,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길 촉구합니다. 마치 원주민이 살고 있던 땅을 신대륙이라 부르며 침탈했던 그리고 독을 팔 수 있는 자유를 달라며 전쟁을 벌이고 점령하고 식민지를 삼았던 제국주의자들처럼, 인간이 우주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 과연 환영할까요? 사람이 살알갈 새로운 별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를 개척하겠다는 제국주의자로 살아가겠다는 건지, 누군가를 학살하는 죄를 짓겠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도둑과 시인
어느 해 추석 앞집에 든 도둑이
내 차 지붕으로 뛰어내리던 밤,
감식반이 와서 족적을 뜨고
나는 파출소에 나가 피해자 심문을 받았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그리고
하는 일 등을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달려라 도둑」이라는 시를 썼다
들키는 바람에 훔친 것도 없으니까
잡히지 말고 추석 달빛 속으로
그림자처럼 달아나라는 시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경찰서에서 그 사건을 불기소처분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나라 경찰은 몰라보게 편리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도둑의 무게만큼 찌그러진 차
지부을 새로 얹는 데 든 만만찮은 수리비에 대하여서는
앞집은 물론 경찰도 전혀 알은채를 하지 않았다
그 시로 원고료를 소소하게 받긴 했으나
그렇다고 이미 발표한 시를 물릴 수는 없고
그래서 나는 그 도둑이라도
이 시를 읽어주었으면 하는데 ......
이상국 시인의 시 "도둑과 시인"은 일상의 소소한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고 그려냅니다. 시인은 도둑이 자신의 차 지붕으로 뛰어내린 사건을 바탕으로 "달려라 도둑"이라는 시를 씁니다. 그 시에서는 도둑이 들키지 않고 달아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도둑으로 인해 망가진 차의 수리비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시인은 원고료를 받긴 했지만, 실제 손해가 보상되지 않았습니다. 이 시는 도둑과 같은 작은 사건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복잡한 감정과 현실적 문제를 동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시인은 도둑을 용서하거나 동정하는 듯한 시를 썼지만, 결국 도둑이 가져온 물리적 손해와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 한껏 비틀며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존엄에 대하여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미안하지만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문 좀 두드려달라던 작가는 스스로를 버렸다
식은 밥이나 이웃에게도 그랬겠지만
자기가 쓴 시나리오에게도 떳떳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주검을 치우는 사람에게
개의치 마시고 국밥이나 한그릇 자시라며
제 손으로 목숨을 접은 어느 독거노인은
따뜻한 국밥 몇그릇을 세상에 남겼다
가난했지만
죽음에게까지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그 소중한 유산을 남겼던 것이다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주검들이 수줍게 떠올라도
아이들 몇몇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앳된 나이에 퉁퉁 부은 민낯을
죽어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송파 어디선가 월세 살던 세 모녀가
공과금과 마지막 집세를 계산해놓고
한날한시애 세상을 버린 것도
다시는 볼 일 없더라도
국가와 집주인에게 당당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뭔가에게 굽히기 싫었던 것이다
이상국 시인의 시 "존엄에 대하여"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깊이 성찰합니다. 시인은 가난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존심과 예의를 지키고자 했음을 강조합니다. 작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이웃에게 밥과 김치를 부탁하면서도, 자신의 작품과 삶에 떳떳하고자 했습니다. 독거노인은 자신의 주검을 치울 사람에게 국밥 한 그릇을 권하며, 죽음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송파의 세 모녀는 공과금과 월세를 정산한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통 속에서도 무언가에게 굽히지 않으려 했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이들의 선택을 통해, 삶의 고통과 가난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해, 자신에 대해 떳떳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이 살아서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함께 할 수 없었을까요? 앞으로도 죽음 앞에서 존엄을 잃지 않는 사람들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대체로 삶은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내리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는 순해지거나 정처를 구하지 못하는 말들과 설악산 자락 오두막에서 손바닥만 한 생을 이리저리 늘리고 뒤집어보다가 또 한철 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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