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
전나무 숲길 오래 걸었으므로
삼층석탑 전신 속속들이 보았으므로
백의관음보살좌상 눈부처로 있었으므로
단청 지운 맨얼굴을 사랑하였으므로
내소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깊고 긴 숲 지나
요사체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붉은 단풍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
능가산 품에 깃들여 고즈넉할 때는 나도
그로 인해 깊어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
다 안다고 말하곤 하였다
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
종양이 자라는 것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
그의 오래된 내상(內傷)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
그가 왜 직소폭포같은 걸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
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 사월 꽃등 행렬 가득하였으므로
그의 기둥과 주춧돌 하나까지 사랑스러웠으므로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해 기울면 그의 그리움이
어느 산기슭과 벼랑을 헤매다 오는지 알지 못하면서
포(包)* 하나가 채워지지 않은 그의 법당이
몇백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의 흐느낌 그의 살에 떨어진 촛농을 모르면서
도종환 시인의 시 '내소사'는 시인이 내소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소 있으며, 진정한 사랑과 이해에 대해 고찰합니다. 시인은 내소사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기쁨뿐만 아니라 고통과 상처까지 이해하고 함께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내소사의 아름다움과 역사적인 가치만을 보았지만, 내소사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모든 면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내소사'는 표면적인 이해와 진정한 이해의 차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 내면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깊은 연결을 통해 깊게 성찰합니다. 시인은 내소사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이해와 사랑을 반성하며, 더 깊이 있는 사랑과 이해를 추구합니다.
어느 저녁
끓어오르며 소용돌이치던 것들을
찬물에 행구어 채반 위어 얹어놓고 나니
마음도 국수 타래처럼 찬찬히 자리를 틀고 앉았습니다
애호박을 싸박싸박 채 썰어 밀어놓는 동안
마음 한쪽이 그렇게 소리를 내며
잘려나가는 듯한 초저녁
묵은 김치를 더 잘게 썰어 얹어 한그릇의
국수를 비우는 동안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산 위로 짙은 쪽빛의 시간이
잉크처럼 번져 내려오듯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아릿한 것이
명치끝을 타고 내려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승에서 이렇게 애틋함과 슬픔을
한그릇씩 나누어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찔레꽃에게 말하고
한세상 사는 동안
좋은 사람과 함께 호젓한 풍경이 되어
저물 수 있던 날을 고마워하며
찬물에 젓가락을 씻어 물방울을 털어내다가
잠시 뼈와 살 사이가 시큰해졌습니다
일어서기 전에 듣고 싶어하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오늘 처음 붓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가는 그이의 발소리를 붙잡지도 못하였습니다
밤에도 검은등뻐꾸기는 울고
북두칠성 일곱 별은 그가 가는 길을 따라
몸을 틀며 별자리를 조금씩 옮기고
아까시꽃이 향기의 긴 꼬리를 그으며
별자리 뒤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불빛 하나 고개를 넘어가다 잠깐 눈물처럼
반짝이며 떨어지고 난 뒤 사방은 더 어두워졌고
호랑이지빠귀가 한숨을 길게 쉬는 듯한 울음을 내뱉는 걸
숲은 다 듣고도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어느 저녁'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감정의 깊이와 인간 관계의 소중함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시인은 국수를 준비하며 일상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합니다. 국수를 삶고 채소를 써는 평범한 과정에서도 마음속에 담긴 애틋함과 슬픔을 발견합니다. 찔레꽃과의 대화, 물방울을 털어내는 순간의 시큰함, 떠나는 이를 붙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모두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저녁산의 짙은 쪽빛, 밤에 우는 검은등뻐꾸기, 북두칠성의 움직임, 아까시꽃의 향기 등은 시인의 감정과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자연은 말없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인간의 감정과 일상을 조용히 받아들입니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애틋함과 슬픔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도 감사함을 찾습니다. 한세상 사는 동안 좋은 사람과 함께 호젓한 풍경 속에서 저물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작별의 순간조차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흐느끼는 예수
만일 예수가 눈발 풀풀 날리는 철거 지역에 와서
꺼멓게 타버린 슬픔의 시선을 안고 몸부림치는
늙은 여인 곁에 앉아 울고 있었다면
우리는 예수를 알아보았을까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해고노동자의
절망의 무게를 두 팔로 받아 안으려다
손에 피를 묻힌 채 흐느끼는 예수를 보았다면
우리는 그를 예수라고 믿었을까
가난한 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세상을 향해
예수가 독사에 빗댄 욕을 거칠게 내뱉었다면
우리는 막말하는 그에게 실망해 등을 돌렸을까
만일 예수가 로마의 군사기지 철조망 앞에 앉아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달라고 비에 젖으며 기도했다면
그날도 노인들이 군복을 입고 교회 앞에 몰려왔을까
만일 예수가 오늘 아침 이 땅에 와서
탐욕의 식탁과 향기 없는 정원
정의 없는 권력과 이성 없는 극단
자비 없는 기도를 비판한다면
그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 했을까
국정원이 몇가지 비리를 언론에 넘기고
조간신문 기사로 돌팔매질한 뒤
감옥에 가두려 하지 않았을까
불법체류자니 무슨 무슨 주의자로 낙인찍어
이 땅을 떠나게 만들지 않았을까
만신창이가 된 체
진눈깨비 내리는 지평선 속으로
혼자 걸어가게 하지 않았을까
요한복음 2장 13-22절 (개역개정)
13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녹군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과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희망의 이유*
떡갈나무 잎을 들추고 도토리를 파묻는
다람쥐의 분주한 발걸음을 보라
그대도 나도 가을까지 왔다
숲의 정강이를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기계톱의 질주에
우리의 안락한 정원이 있다고 믿지 말라
우리의 미래는
불에 탄 나무에서 다시 솟는 연둣빛 새순
하늘 꼭대가에서 거기까지
햇살의 화살 한개를 쏘고 있는
태양의 따스한 손길에 있다
국경을 넘어와 땅속 깊이 감춰진 벽을 뚫어버리는
가공할 폭탄의 힘에 한 시대의 가능성을 걸지 말라
밤의 거리에서 평화를 구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촛불과
그 불을 받쳐든 어린 두 손에 희망이 있다
이웃나라를 손쉽게 굴복시키는 폭력을
부러워하지 말라
만년을 녹지 않는 히말라야 숫눈처럼
빛나는 순백의 영혼
오체투지로 낮아지고 가난해져서
다시 일어서는 정신에
영원한 미래의 날들이 숨어 있다
우리가 잔인하게 쓰러뜨린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
승리의 포만감으로 가득한 식탁과 살찐 육신은
우리가 죽이고 짓밟은 것들의 묘지를 이루고 있나니
오래오래 주류로 살아온 이들이 잘 차려놓은
화려한 연회장이 아니라
그들이 경멸하고 손가락질하는 소수가
소박하고 정결하게 차린 두레반에 미래가 있다
어미 잃은 어린 짐승을 감싸안으며 눈물겨워하는
모성과 연민과 자비가 아니면 희망이 아니다
새 한마리의 목숨과 내 목숨의 무게가 같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직도 그대는 일주문 밖이다
속도와 경쟁과 승리의 갈망에 휘둘리지 말고
그만 내려서라
댓잎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는 바람의 속도
낙화 이후의 긴긴 날을 걸어가는
꽃의 발자국을 보지 못하면
그대가 달려가는 속도의 끝은 반드시 벼랑이다
증오의 말을 가르치지 말라
세상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경전 같은 말들이 있음을 가르치되
시인의 음성으로 하라
나약하지도 않고 사납지도 않은 목소리로
신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라
거기 희망이 있다 그들이 희망이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 오래도록 희망이다
* '희망의 이유'는 제인 구달의 책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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