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렴
여름방학을 맞아 내 아들이 가져온 성적표를 보면
음악과목이 낙제점수다
나는그러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섭섭하게도 내 아들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니까
목소리는 제법 우렁차지만
아들의 노래는 고음에도 걸리고 저음에도 걸린다
제 목소리 하나도 조정하지 못한다
모처럼 노래를 시켜보아도
남이 부르던 노래
귓전에 익숙하고 입에 익은 가락만 흥얼거린다
누구일까, 내 아들의 음성을 망치는 자는?
노래를 못 부르는 조상의 피 탓일까
아니면 흥에 겨워 스스로 흥얼거리는 자신의 탓일까
악보 하나도 제대로 읽지 않고
오선지 한 줄도 제대로 보지 않는
변성기도 아직 먼 내 아들에게
후렴만 부르게 하는 자는 누구일까
<世界의 文學·1981>
초, 중, 고 음악시간 치르는 음악시험으로 곤욕을 치루곤 했지요. 이론 시험은 내용을 이해하면 100점, 처음에 노래 시험이 어려웠으나 KBS 1FM에서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시험 보는 날까지 반복해서 따라 부르다 보면 좋은 점수를 받았답니다. 그런데 악기라곤 배워본적 없는 제게 악기 연주 시험을 보게 하니 교육 시스템 자체를 비판하게 되던군요. 음악시간에 악기를 가르쳐 주고 얼마나 습득하고 발전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악기를 가져와서 시험을 보라고 했으니까요. 고등학생 시절 단소로 아리랑을 연주하고 평가는 받을 때는 수업 시간에 단소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고 시험을 보았으니 변규백 선생님이 잘 했다 칭찬을 주셨지만, 리코더가 앨토도 있고 한 걸 시험을 치루면서 알겐 된 성과라면 성과일까요. 하모니카라도 배워둘 것 후회 막심이었습니다만, 피아노 연주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가 되는데, 한 친구가 집에서 거문고를 가져와서 연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이런 더러운 세상이 있을까요? ㅋ
海堂花(해당화)
저 바다
거센 파도 내 남편 잃고
덕장에서 손 찔리며 고기를 말린다
내 남편 고향은
명사 십릿벌
해당화도 피어나는 영흥땅이라네
6·25 적 월남해 와
눌러앉은 이곳
배고파 막막해 다시 탔던 배
명태잡이 영랑호는 해일을 만나
깊고 깊은 바다 속에 휩쓸려갔네
해당화야, 해당화야
질긴 뿌리야
남편 없는 살림살이 자식은 다섯
바닷바람 견딘
네 뿌리는
내 허리 신경통에 약이 될 건가
배를 타면 고향도 바라보인다고
웃으면서 떠나던
남편의 모습
저 바다
거센 파도 내 남편 잃고
부두에 나가서 그물 깁는데
파도야 파도야
높은 파도야
봄이 되면 속초바다 모랫벌에도
북풍에 안 꺾이는 해당화 피랴
* 해당화: 동해안에 주민들은 해당화 뿌리를 약으로 씀
안동포
그 봄에도 삼밭은 어우러지고
어매는 하루 종일 삼을 삼았다
남정네 하나 없는 빈 고향집
밤을 세며 어매는 삼베를 짰다
그 봄에도 낙동강은 다시 푸르르고
아배는 전선에서 소식 없었다
아배야 아배야 우리 아배야
얼굴도 보지 못한 우리 아배야
어매가 하루 종일 삼끈을 비벼
달그닥달그닥 삼베 짜던 날
안질이 드신 할매 강둑을 넘어
아지랑이 서린 먼 길 바라보셨다
그 봄에도 산꿩은 서럽게 울고
철모르던 우리 종반 끼들거리며
강둑에서 무질레만 꺾어 먹었다
그 봄에도 삼밭은 어우러지고
전선에서 설운 소식 들리어 왔다
우리 어매 우리 할매 통곡하던 날
어매 짜던 안동포 허리 무질러
아배의 혼백을 산에 묻었다
<서강학보·1983>
* 안동포: 경북 안동지방의 특산품인 삼베의 일종.
그대의 눈은 ☆표를 보고 있는가
어제 저녁 나는 우리집 아이들이 보고 있는 잡지를 뒤적이다가 이상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무당벌레와 두꺼비에 관한 그림이었는데, 아무리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내 둔한 필체로는 그대로 옮겨놓을 수 없어 그림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나는 웬지 위의 그림에서 무당벌레가 두꺼비에게 잡아먹힐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아이들은 절대로 무당벌레가 잡아먹힐 리가 없다고 말했다.
"무당벌레가 잡아먹히다니요! 무당벌레는 무당벌레대로 잘 기어가고 있잖아요. 그리고 두꺼비와도 떨어져 있잖아요. 그것은 세상을 너무 어둡게 보는 아버지의 시선 탓이에요."
"글쎄, 내 어두운 시선 탓이라고?"
나는 두꺼비 혓바닥 앞에 ☆표를 하나 그려놓고 그 ☆표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내 눈을 가까이 가져더 본즉, 분명히 무당벌레는 두꺼비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불쌍한 보호색깔을 하고 있는 무당벌레가 엉큼한 끈끈이 혓바닥을 숨기고 있는 두꺼바 입 속으로.
그대여, 그대의 눈은 어디를 보고 있는가?
그대여, 그대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21人 新作詩集(21인 신작시집), 꺼지지않는 횃불로·1982>
우리 세상을 너무 어둡게 보지 말아요. 시인이자 아동 문학가인 김명수 시인은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사물과 소시민을 불러내 그들의 소외와 슬픔을 위로하며 사소한 존재를 긍정하는 시를 노래한다고 합니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364).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네 어머니와 이웃의 삶을 그리고 지구별 구석구석 사람들의 아픔을 노래합니다.
"어두운 시절, 새삼 내 시는 누구를 위해 쓰여져야 하고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 후기를 쓰면서 문득 이 같은 의문을 다시 해보는 것은 아직도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너무 어둡고 나와 내 이웃들의 삶이 보다 나은 내일로 이어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 1985년 5월·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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