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금방 떨어질 것 같은 빨간 홍시
감나무 꼭대기에 한두 개
놀며 오가며 어린 시절
목젓 떨어지게 바라보던 까치밥
돌팔매를 쏘고 싶지만 참았던 까치밥
쏘아도 쏘아도 맞지 않던 까치밥
죽어도 안 떨어지는 까치밥
훈훈하고 고운 마음씨가
지금도 감나무에 매달려 있다.
옛날부터 감 따는 법을 칼로써 선포해했거나
가르친 바도 없이 자연법이 생겨
어떤 욕심장이 가난한 백성이라도
까치들의 겨울 양식을 남겼으니
법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질고 순한 것이며
없으면 안될 법은 저절로 씨가 떨어져
울타리 안에, 동네 고샅에, 멧갓에
이렇게 큰 법이 되어 열리는구나!
까치 까치 까치야,
기다리는 봄동산
기다리는 감격을
언제 물고 오려는 것이냐,
까치 까치 까치 까치 .....
<現代文學(현대문학)·1982>
* 고샅: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 골목 사이
멧갓: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가꾸는 산
이운룡 시인은 '까치밥'은 어린 시절 감나무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면서, 그 감들이 까치의 겨울 양식으로 남겨져 있는 모습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을 그려냅니다. 더 나아가, 시는 "법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질고 순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법과 규칙이 인간의 이타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억압과 공포의 수단이 아닌 공존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가을이면 감을 주렁주렁 가득 매달고 세상에 나눠주던 원동 외갓집 그 큰 감나무가 여전히 감을 품어 이애를 하고 있는지, 올 가을에는 외갓집에 가서 그 감을 직접 만나고 오려고 합니다.
쌀뜨물
쌀 반되를 씻으며 어머니는
말쌀을 씻는 듯 요란스러웠다.
함박이 너무 커서
잘도 씻어지는 쌀 반되
부엉이 방귀 뀐 함박을 쓰면 절로 부자가 된다는
우리집 함박이 너무 커서 잘도 씻어지는 쌀 반되,
어머니는 멀건 쌀뜨물 받아 시래기국을 끓이셨다.
서해 바다 짠물 전 왕멸치 통째로 넣고
서양 사람 십리도 도망칠 된장을 풀어넣고
우리 어머니 땟물 탄 솜씨 어찌 그리 훌륭하던고!
쌀 반되를 씻으며 어머니는
말쌀을 씻는 듯 흥이 나셨다.
함박이 너무 커서
잘도 씻어지는 쌀 반되
어머니 생전에 즐거우셨던 쌀뜨물 시래기국.
<現代文學(현대문학)·1980>
* 말: 쌀 1말 = 8kg, 1말 = 10되, 1되 = 10홉
함박: 박을 두 쪽으로 쪼갠 바가지
쌀뜨물: 쌀 씻은 물
시래기: 건조한 후 일정 기간 보존했다가 먹는 나물을 말하는데 보통 무우청을 말린 것으로 알고 있음
우거지: '웃 걷이'에서 비롯된 말로써 채소, 푸성귀의 위, 바깥의 먼저 자란 부분, 웃자란 부분을 말하는데 보통 배추 겉을 말린 것으로 알고 있음
이운룡 시인의 시 '시래기국'은 어머니가 쌀을 씻는 평법한 일상을 통해 가정의 따뜻함과 어머니의 손맛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넉넉하지 못한 쌀 반되를 마치 한말을 씻는듯한 어머니의 모습, 그 단순한 일이 어떻게 가족을 이어주고, 집안을 풍성하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풍경이었다면, 2024년의 풍경은 사뭇 다르겠지요. 쌀뜨물을 받아 왕멸치로 우려낸 육수에 시래기국 끓였다면, 지금은 햇반에 포장된 시래기국으로 차린 밥상이 일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그 변화된 모습 속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은 여전히 가득할 것입니다.
정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세요.
키 큰 나무가 난장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 높다란 처마가 방바닥에 누워 있고
산봉우리들이 무덤처럼 엎드려 있어요.
그래서 모든 사물은 절을 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세요.
난장이가 갑자기 키다리로 보일 것입니다.
지붕이 태산처럼 구름을 이고 있고
산봉우리들이 하늘나라를 기웃거려요.
그래서 모든 사물은 제왕이 되는데
무엇이 어떻게 보이든 잘못이라는 것.
이상해요, 아래에서 보면 높게 보이고
위에서 보면 낮게 보이는 엉터리 생각.
나의 하느님, 한쪽 눈만이라도 좋으니
진실로 바른 것이 바르게 보이는 눈을 주세요.
<서울신문·1982>
"니는 나의 시가 내용의 경직과 또는 형식상 언어의 지나친 압축과 논리성으로 하여 뼈만 앙상하게 남는 결과를 원치 않으며, 리얼리티와 해학정신 혹은 현실인식이 정당성·보편성을 지니면서 민중의 뿌리를 찾고 싶은 욕심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이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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