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학교 들어가 한글 겨우 깨쳤을 때, 한달에 한번 아버지에게 가는 어머니 편지 쓰는 일은 내 몫아 되었다.
천부적인 사투리의 여왕인 어머니가 불러주는 말들이 국어 교과서의 철자를 능멸하는 것이어서, 국민학교 일학년 실력이 감당하기 여간 곤혹스지 않았지만, 전쟁통에 혼자 된 어머니가 만난 아버지는 무슨 선물인 양 아이 하나 두고 멀린 떠난 다음. 곧이곧대로 받아쓴 사투리로 장식된 편지를 읽는 일이 한순간 즐어움이었단다.
무정한 아버지.침 묻힌 힘으로 살아나는 연필심이 어머니 고단한 세월으 가시 같은 아픔으로 돌아서서 어린 손끝을 찌르곤 했던 걸 아시기나 했을랑가.
내가 만났던 첫 모국어.
어머니의 언어는 떠나간 아버지에게 전달되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이 편지는 아이에게 힘든 일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소중한 연결 고리였습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과 아이가 그 아픔을 물리적으로 느끼는 경험을 연필심으로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그 시절 왜 그런 아버지가 그리 많았을까. 고운기 시인의 시 '모국어', 웃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이렇게 비틀어 놓으면 어쩌자고요.
내 물고기 절에서 만난 사람
두 스님 개울가에서 물고기 한마리씩 잡아먹고 내기를 했다지요. 한 스님 그냥 똥으로 나오는데 다른 한 스님 먹었던 물고기가 살아 나와 헤엄쳐 가더라나요. 破顔大笑(파안대소). 저거 내 물고기야. 외쳐 거기 지은 절 이름 吾魚寺(오어사) 그 스님 천한 근본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행실이 비범해 면천받았지만 살다 간 승려 생활 시정을 떠나지 않았답니다
옛날 이야기 한자리 펼치며 가는 곳
烏川(오천)에는 까마귀처럼 제철공장
검은 흙빛이 누워 있는데
고향 떠나 대구에서 사업하다 몸만 망쳤다는
중년의 사내는 서늘한 바람에 지고 있었다
우리는 물고기를 잡아먹지만 더러 어떤 이는 물고기의 물고기를 먹고, 우리의 입과 배와 창자는 물고기를 해체시키지만 더러 어떤 이는 입에서 배와 창자로 맑은 물살을 흘려보내. 거기 다시 살아 헤엄쳐가는 물고기의 한자락 꿈을 꾸지
사내여, 나 또한 부질없는 그림자 좇아 와서
이 절 어느 개울가에 똥이나 싸는구나
제철공장 마을 흙빛보다 더 검은 세상을 뿌리고
홀로 저무는 서러움 같은 것에 몸을 맡기기도 하는구나
그런데 똥싸서 체면 구긴 스님?
글쎄 그게 원효라나.
한 스님은 이미 도들 득하고 한 스님은 도에 이르지 못했을까? 먹으면 똥을 보는 게 동물의 삶이니 그 평범한 삶에서 깨달움을 깨친 이가 원효일까?
어릴 적 살았던 오천에는 포항제철이 들어섰어도 맑은 냇물이 흘렀고, 그 냇물에 뱀장어가 올라왔었습니다. 제철 공장만이 형산강 줄기를 검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여 어디 똥 오줌만 쏟아내었던가요, 욕망의 철물을 쏟아내면서 이 지구별이 어떻게 버틸 재간이 있겠습니까?
산부인과 병실에서
아들을 낳은 여자가 저토록 의기양양해하는지
몰랐다. 고추 하나가
친정 쪽 식구들의 얼굴에 저토록 안도의 눈빛을 흐르게 하는지
미처 몰랐다
두번째 자궁 수술을 받으러 온 여자와
빵 굽는 일을 한다는 김형만이
꽃도 선물 꾸러미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틀째 되던 날밤, 나 또한 비슷한 처지였기에
우리는 流産(유산)의 어둠속에 서로의 여자를 두고
함께 나가 길가 편의점 비치 파라솔에 앉아 캔맥주를 마셨는데
밤 공기에 움츠린 듯 사라지는 별똥별이
젖어 있던 그의 눈에도 들어왔을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남아서 제자리인 듯 어디 가지 않는별들이
우리들 하늘 위에 헬 수 없는 것을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병실로 들어가며 김형은 입양해야겠다고
술 힘이었을까
조금 어깨를펴며 말했다
의기양양하지도 안도의 눈빛도 아닌
그래. 술기운을 빌린 것은 더욱 아닌
붙박여 있거나 떨어자거나 생명은 제 스스로 오고 그리고 가고
우리는 끝내 지켜볼 밖에 없다고 다짐했을는지 모른다.
2001년, 그 때는고추가 중요했었군요. 출산율 0.79명. 제한돤 공간에 밀도가 높으면 스스로 그 밀도를 낮추는게 이 지구별 생명체들이 공통된 특징이라고 했던가요. 출산율을 걱정하기 앞서서 어깨에 무거운 짐을 매고 이 골목 저 골목 거리를 방황하는 21세기 대한민국 헨젤과 그레텔에게 가족이 함께 했으면 합니다. 자지던 보지던 뭐가 중한디.....?
어머니 김치
결혼하고서도 내내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김치 가져다 먹었지요. 요새 젊은 여자들 김치 담가 먹을 사람 몇이나 되겠나 싶어 의당 그러려니 하며, 오로지 입맛 당길 반찬이여 김치 하나인데다 분가해 살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기분을 갖는것 좋은 일이긴 했습니다. 전라도 고흥 여자 어머니의 김치 맛이야 달리 말할 필요없지만, 들어갈 양념 모자라 실력 발휘 못하던 때말고는 김치 하나로 입안 가득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세월의 켜가 쌓이는 만큼 머리는 밝아지지만 손끝은 무디어지는가요. 칠순 넘기고 어머니 얼마 전부턴가 손에 물 묻히기도 힘들어하시더니, 상에 오른 김치 먹다, 당신이 만들었어. 눈 흘기며 마누라 쳐다보는데, 어머니 입맛이 예전 같지 않아요, 대답에 나는 울컥 속으로 눈물 삼키고 말았지요.
결혼하는 날, 문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부르셨습니다. "오늘부터 네 음식 맛 잊어라," 어마니가 말씀하셨지요. 그러고는 이불대리점 정리하고 은퇴한 칠순이 지나 공황장애가 들 때까지도 매주 온 가족이 모여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나누었고,여러 종류의 김치와 음식들을 가득 챙겨 집으로 왔지요, 팔순이 되어 유방암 수술 받고나서도 기력이 없다면서 김장을 담가 나눠주었지요, 그리고 이천 이십 삼년 겨울, 여든 다섯에 김장김치를 사다 드렸지요.
* 이 책의 첫 주인일까, '오줌', '몽블랑', 그리고 '어머니 김치'를 접어두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이 시집은 헌책을와 팔려와 새로운 인연을 맺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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