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의 웃음소리
서른 해 넘도록 연인들과 노닐 때마다 내가 조금쯤 부끄러웠던 순간은 오줌 눌 때였는데 문 밖까지 소리 들리면 어쩌나 힘 주어 졸졸 개울물 만들거나 성급하게 변기물을 폭포수로 내리며 일 보던 것인데
마흔 넘은 여자들과 시골 산보를 하다가 오동나무 아래에서 오줌을 누게 된 것이었다 뜨듯한 흙냄새와 시원한 바람 속에 엉덩이 내놓은 여자들 사이, 나도 편안히 바지를 벗어내린 것인데
소리 한번 좋구나! 그중 맏언니가 운을 뗀 것이었다 젊었을 땐 왜 그 소리 부끄러워했나 몰라, 나이 드니 졸졸 개울물 소리 되려 창피해지더라고 내 오줌 누는 소리 시원타고 좋아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딸애들은 누구 오줌발이 더 힘이 좋은지, 더 넓게, 더 따뜻하게 번지는지 그런 놀이는 왜 못하고 자라는지 몰라, 궁금해하며 여자들 깔깔거리는 사이
문 밖까지 땅 끝까지 강물소리 자분자분 번져가고 푸른 잎새 축축 휘늘어 지도록 열매 주렁주렁 매단 오동나무가 흐믓하게 따님들을 굽어보시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갖 태어난 아기일때부터 그 오줌발에 대해 주목받고 칭찬 받곤합니다. 자라면서 친구들끼리 누구가 더 멀리 힘차게 오줌을 쏘는지 겨루기를 합니다., 이런 오줌발 시합은 다리에 힘이 빠져 죽기 직전까지 계속됩니다. 그런데, 여자이이들이 뭐가 부끄러울까요?. 그녀들도 눈치보며 졸졸, 찔금찔금 흘릴게 아니라 마치 폭포수처럼 내며 시원하게 오줌을 보면 어떻습니까.
몇 해 전에 파리에서 젊은 아가씨들이 바지를 내리고 시원하게 오줌을 누는 것을 두 번이나 목격했습니다. 첫 번째는 센강을 딸 유람선을 타고 가다가, 강변에서 파티를 벌이던 젊은 남녀 사이에서 한 여성이 갑자기 자리를 벗어나 강가로 가서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더군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센강변을 사진 찍고 있던 유람선 위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당황해서 바지를 급하게 주섬주섬 올리고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깡충깡충 뛰어갔습니다. 두 번째는 뛸르히 정원을 지나다가 멋있게 쓰러져 있는 고목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조절하고 있는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젊은 여성 두 명이 웃으며 숲으로 들어오더니, 아랑곳하지 않고 마라톤 숏 팬츠를 내리지 않겠습니까. 숨 쉴 틈도 없이 제빠르게 카메라의 방향을 돌렸답니다. 마라톤에 참가하면 일반적으로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리고 또 한번은,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서귀포의 한 감귤 하우스를 지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감귤밭에 들어갔습니다. 순간 제 눈에 탄력있어 보이는 하얀 엉덩이가 보이고, 그 가운데에서 힘찬 물줄기가 솟구쳐 나왔습니다. 인기척을 느꼈을 법한데 그 분은 자신의 생리작용을 멈추지않더군요. 저는 당황해서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섰고, 다시올레길을 찾아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하지만 그분은 자연스러운 생리작용이니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었 겠지요.
민둥산
세싱에서 얻은 이름이라 게 헛묘 한체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 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
환해진 젖꽃판 위로 구름족의 아이들 몇이 내려와
어리고 착한 입술을 내밀었고
인적 드문 초겨울 마른 억새밭
한기 속에 아랬도리마저 벗어던진 채
구름족의 아이들을 양팔로 안고
억새밭 공중정원을 걸었다 몇번의 생이
무심히 바람을 몰고 지나갔고 가벼워라 마른 억새꽃
반짝이는 살비늘이 첫눈처럼 몸속으로 떨어졌다
바람의 혀가 아찔한 허리 아래를 지나
깊은 계곡을 햝으며 억새풀 홀씨를 물어 올린다 몸속에서
바람과 관계할 수 있다니!
몸을 눕혀 저마다 다른 체위로 관계하는겨울풀들
풀뿌리에 매달려 둥지를 튼 벌레집과 햇살과
그 모든관계하는 것들의 알몸이 바람 속에서 환했다
더러 상처를 모신 바람도 불어왔으므로
햇살의 산통은 천년 전처럼
그늘 쪽으로 다리를 벌린 채였다
세상이 처음 있을 적 신께서 관계하신
알 수 없는 무엇인가도 내 허벅지 위의 햇살처럼
알몸이었음을 알겠다 무성한 억새 줄기를 헤치며
민둥한 등뼈를 따라 알몸의 그대가 나부껴 온다
그대를 맞는 내 몸이 오늘 신전이다
김선우 시인의 '민둥산'은 인간 본연의 모습과 자연의 일부로서의 삶에서 참된 자유와 해방, 그리고 평화를 노래합니다. 33살의 여성 시인이 원초적 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거침이 없군요. 가을에 억새풀이 장관을 이루는 민둥산을 다시 찾을 때, 이 시를 읽으며 산을 올라 보아야 겠습니다.
요즘은 남녀혼성 싱크로나이즈 경기도 있지만, 여러 해 전 올림픽 중계에서 한 아나운서가 해설가에게 왜 싱크로나이즈에는 남성 경기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해설가는 "OOO 아나운서님, 물속에서 털로 뒤덥힌 굵은 발이 갑자기 불쑥 쏫아오르면 어떨까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아나운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만약 김선우 시인의 시 '민둥산'이 남성 시각에서 쓰였다면, 음 상상하기 싫군요.
물로 빚어진 사람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
깊은 우물 속에서 계수나무가 흫러나고
사랑을 나눈 달팽이 한쌍이 흘러나오고
재 될 날개 굽이치며 불새가 흘나오고
내 속에서 흘ㄹ나온 것들의 발등엔
늘 조금씩 바다 비린내가 묻어 있네
무릎베개를 괴어주던 엄마의 몸냄새가
유독 물큰한 갯내음이던 밤마다
왜 그토록 조갈증을 내며 뒷산 아카시아
희디힌 꽃타래들이 흔들리곤 했는지
푸른 등을 반짝이던 사막의 물고기떼가
폭풍처럼 밤하늘로 헤엄쳐 오곤 햇는지
알 것 같네 어머니는 물로 빚어진 사람
가뭄이 심한 해가 오면 흰 무명에 붉은,
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올렸다는 옛이야기를 알 것 같네
저의 몸에서 퍼오린 즙으로 비를 만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바다 냄새로 달이 가득해지네
김선우 시인의 시 '물로 빚어진 사람'은 여성성, 모계연속성,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깊은 연결을 감각적인 언로로 탐구합니다. 여성의 몸과 월경을 자연의 순환 과정과 연결 짓고, 특히 여성의 몸이 가지는연결과 그 속에서의 생명력과 재생의 힘을 노래합니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아내, 딸, 그리고 손녀의 이야기입니다.
요실금
일찍기 오줌을 지리는 병을 얻은 엄마는
네번째 나를 낳았을 때 또 여자아이라서
쏟아진 양수와 핏덩이 흥건한 이부자리를 걷어
내처 개울로 빨래 가셨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
요실금을 앓는 여자의 아랫도리처럼
얼음 사이로 소리죽여 흘렀을 개울물,
결빙의 기억이 저를 다 가두지 못하도록
개울의 뿌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뜨거운 수액을 조금씩 흘려온 갓인지도 모릅니다
혹한의 겨울에도 동네마다
얼어붙지 않는 개울이 한두개쯤 있었고
나는 종종 보곤 했던 것입니다
한겨울 비루해진 개울이 뜨거운 제 살 속에서
흰눈을 폭포처럼 퍼올리는 것을
먼길을 걸어온 여자들이
흰눈을 뭉쳐 조금씩 녹여 먹으며
겨울나무 줄기에 귀를 대고 있었습니다
죽기 전에 오줌 한번 시원하게 눠봤으면 좋겠다던
엄마의 문이 눈밭 위에서 활짝 열리곤 하였습니다
김선우 시인의 시 '요실금'은 여성의 신체적 고통과 삶의 취약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오줌 한번 시원하게 눠봤으면'하는 것 뿐이겠습니까.....
"사랑한다, 사라한다고 원없이 말하면서 날마다 무릎 꿇고 이 땅에 입맞춘다. 스스로를 가두어놓고 이토록 행복해질 수 있다니, 생애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면서 문득 길의 몸을 본 것 같다. 더듬거리며 그 몸을 찾아나설 때가 다시 오고 있음을 안다. 더 멀리 가야 한다. 더 큰 고통과 축복의 몸들에게로. 여전히 내 언어는 불화의 쪽에 있지만, 내 속에서 오래도록 나를 불러 온 허방으로 두려움없이 가야겠다.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다."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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