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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종환, 창비시선 0111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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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얼굴 속에서

 

수없이 많은 얼굴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찾아냅니다

수없이 많은 목소리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찾아냅니다

오늘도 이 거리에 물밀듯 사람들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구름처럼 다가오고 흩어지는 세우러 속으로

우리도 함께 밀려왔단 흩어져갑니다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오늘도 먼 곳에 서 있는 당신의 미소를 찾아냅니다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먼 길 속에서 당신은 먼발치에 있고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나 역시 작게 있지만

거리를 가득가득 메운 거센 목소리와 우렁찬 손짓속으로

우리도 솟아올랐단 꺼지고 사그라졌다간 일어서면서

결국은 오늘도 악수 한번 없이 따로따로 흩어지지만

수없이 많은 얼굴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수없이 많은 눈빛 속에서 당신의 눈빛을 기억합니다.

 

이 시는 많은 사람들, 수많은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에서도 당신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찾고 있는 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 시의 당신은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의 그 님과 같은 존재, 다양한 존재로 해석할 수 있는 존재이겠지요.

 

 

빛깔

 

봄에는 봄의 빛깔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의 빛깔이 있다

겨울 지등산은 지등산의 빛깔이 있고

가을 달래강에는 달래강의 빛깔이 있다

오늘 거리에서 만난 입 다문 이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살아오면 몸에 밴 저마다의 빛깔이 있다

아직도 찾지 못한 나의 빛깔은 무엇일까

산에서도 거리에서도 변치 않는 나의 빛깔은.

 

산에서도 거리에서도 변치 않는 나의 빛깔은 무엇일까?

 

 

 

제가 그 산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널리 퍼진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이름대로 그 산의 풍채는 멀리서도 기품이 있었고

능선을 타고 자란 나무들 뒤로 구름이 모여와줄 때나

산의 목소리를 따라 햇살이 줄을 지어 내려올 때면

거기 모인 이들은 경이로운 눈으로 산의 음성을 듣곤 했습니다

누구나 산의 얼굴을 좀더 가까이 보고 싶어했고

가까운 발치까지 가 그가 마련한 작은 나무 한 그루

돌 몇개를 얻어 뜨락까지 가지고 와

자랑스러운 듯 매만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산을 멀리하게 된 것은 그를 자주 대하면서였습니다

저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늘 그 곁에 모이는게 싫었고

함께 있으면서 그윽하던 골짜기 사이로

흉터와 그늘진 곳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빗줄기에 허물어진 옆구리 뇌상과 벽력 앞에서

어떤 때는 나약해 보이는 어깨사 저를 실망스럽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를 칭송하던 소리들이

쓰레기와 휴지더미가 되어 그에게 날아가고

그도 지친 듯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모습에 저는 그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시 이름높은 다른 산들을 찾아 떠돌기를 여러 해

나뭇잎이 지고 새로 돋는 산자락을 따라 스무 해 가까이

저도 조금씩 나이가 들고 세상 거친 바람에

상처를 입은 채 돌아온 그해 겨울

저는 어느 산기슭에 다리를 접고 신발을 벚었습니다

해진 신발이 머문 댓돌 위로 몇날 몇밤 눈보라가 치고

눈 녹는 물소리가 문풍지를 조심조심 건드리는 저녁 토방문을 열다가

저는 조용히 늙어가고 있는 옛날 그 산의 옆모습을 만났습니다

제가 돌아온 곳이 그 산의 어느 품안이었음을 안 것도 그때였습니다

가까이 있어서 귀한 줄 모르던 산이 거기 있었습니다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소중한 줄 모르던 그 산의 골짜기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산은 사랑하는 많은 이를 잃고도

말없이 몇마리 산새를 쉬게 하며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상처받고 돌아온 뒤에야 그 산의 모습이 바로 보였습니다

제가 지치고 나약한 모습의 보잘것없는 언덕이 되어

그의 근처를 찾은 것이 아니라

살이 날 그의 가슴 안으로 불러들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일과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어렴풋이 알고 나서야

산이 내 가슴속으로 들아와 나를 산으로 키우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 '산'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며 인생에서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진정한 이해와 사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발전하며,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까요?

 

오늘 하루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책 한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낙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지만

만나서 오래 기쁜 사람보다는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나는 또 내가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을 것인가

미워하는 마음은 많았으니 사랑하는 마음은 갈수록 작아지고

분노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이해하는 말들은 줄어들었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며

모르게 거칠어지는 내 언어만큼 거칠어져 있는 마음이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덜컹거렸다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혁명의 미래를 꿈꾸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상종하지 말아야 할 인간이 있다. 경계하고 주의하는 수 밖에 없을까? 물론 오모순 덩어리인 나를 반성하며 오늘 하루의 문을 닫으며 ,삶을 감사하고 감격하고 감동하며 셀레임 나누는  새로운 날의 문을 열고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