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의 안부>는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 등을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이중기 시인의 시를 모아 2001년 출간한 시집입니다. 한국 농촌도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습니다. 특히, 1997년 국가 부도 사태와 IMF 구제 금융 시대,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는 농촌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고, 많은 농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7년 이후 농산물 가격 하락과 내수 시장의 침체, 농촌 인구의 감소 등 여러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사과 수출도 영향을 받아 수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이는 과수원 운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무렵 이중기 시인도 키우던 사과 밭을 갈아엎었습니다.
풋것이 돈이 된다
나, 매음굴 하나 알고 있네
초록은 날것의 상쾌함을 가져
사내들 풋것이 좋아 날로 찾으니
두멧놈들이 그걸 알고 매음굴 만들었지
뱃살 붉은 복숭아 내음 기똥찬 두메
솜털 보송보송한 것들이 팔려 나가네
덜 익어야 날것의 상큼함을 가졌다고
깨물면 왈칵, 비린내 흘리는
상처의 둘레에 기생하는 연놈들이 달려와
보송보송한 풋것을 한 차씩 싣고 가네
나, 도시에 가서 보았네
노파들 암내 풍기며 쭈그려 앉아
오래 전 우리가 팔아 넘긴 풋것들
비쩍 말라 볼품없는 것들 팔아 넘기기 위해
헤이, 헤이 호객하는 풍경 보고 웃었네
ㅎㅎㅎㅎ 웃었네
덜 이익 과일을 내다 팔아 돈을 벌고, 오래 전에 팔려나간 풋것들이 말라비틀어져 볼품없어져 팔려 나가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슬픔.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가 어려울까요?
늙은 내외
아들 내외 일하는
저만치
늙은 내외 눈빛도 정답습니다
바람 한점 없는 복상밭,
귀때기 새파랗던 가시내들 눈가에
무르익는 저 절정
지나가던 새가 잽싸게 뛰어들면
늙은 내외는 왈칵 가슴 다쳐서
신방 지키는 장모처럼 빈 팔매만 내쏩니다
후여,
햇살 다칠라
꽁치 과메기
유사 이래, 인간의 총애를 받은 바 없는
옹색한 가문의 꽁치 명색에
와불처럼 용맹정진 선에 들었습니다.
지상의 찬바람과 햇볕에 육체를 연마하여
인간들에게 눈부신 정신을 바치려고
새벽까지 한사코 꽝꽝 얼음을 박았다가 풀며
그믐에서 보름까지 달빛에 몸단장도 하면서
동지섣달 산전수전 고스란히 다 겪습니다
결빙과 해빙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마침내 결박을 풀고 과메기가 되어
인간들의 거룩한 저녁 술상에 오르려고
북어처럼 용맹정진 선에 들었습니다
얼림과 풀림의 그 경계에서
노년의 평안과 평화, 그리고 얼림과 풀림의 경계에서 결빙과 해빙의 경계에서 삶을 성찰해봅니다.
"이 땅의 영원한 '소수민족'일 수밖에 없는 '농민'들, 오늘날의 저 거대 도시를 키워온 늙은 '농부'들, 그들만이 가진 근육질의 삶에서 묻어나는 슬픔과 분노의 근원을 노래하고자 했지만, 맥빠진 절규들만 웅웅거린다. 새 천년 연말, 빚에 쪼들리다 동학군처럼 싸우지도 못하고 목숨을 버린 많은 젊은 농부들에게 나는 살아서 부끄럽다. 모든 걸 다 비우고 이제는 경계에서 내려가고 싶다. 아니, 더 강파른 경계에 서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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