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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내일의 노래》 고은, 창비시선 101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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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20세기는 얼굴로부터

사람의 얼굴로부터 시작했다

그렇게도 무시무시한 시대였으나

우리는

뒷골목 여자의 얼굴까지도

사람의 얼굴로 살아왔다

제국주의

반제국주의

전쟁과 혁명

그리고 파쇼

그리고 학살과 착취

이런 시대였으나

그럴수록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그 20세기가 가고 있다

 

앞으로는 지난 세기와 다르리라

다시 공룡의 시대가 오리라

벌써부터 아이들은 공룡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사람의 얼굴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의 오류야말로

사람의 멸망 바로 그것과 안팎인가

오 21세기의 화가들이여

 

"공룡"은 시대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모습과 인간의 행동이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고찰합니다. 시는 20세기의 역동적인 역사적인 사건들, 전쟁, 혁명, 학살, 착취 등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얼굴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래는 현재와는 다른 시대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불확실성을 이야기 합니다. 인간의 삶과 존재는 끊임없는 변화와 불확실성을 직면하고 있지만 우리는 인간성과 가치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초인적인 능력과 초인적 정열과 초인적 분방과 초인적 성취(송기숙)를 한 20세기 한국의 거목이여. 19세기나 20세기 초에머물렀던 천재의 기행이라고 미화할 수 없는 시인이여, 당신이 십대 청년이었던 그 무렵 이미 '세계인권선언'이 공표되었던 것을 잊으셨습니까. 당신은 21세기 괴물이 되었습니까.....ㅠㅠ

 

괴물 /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인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로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는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성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

 

 

다시 오늘

 

어제를 반성하기보다

오늘을 반성해야 할 때가 있다

어제는 죽음일 따름

아 짐승들은 자유롭구나

반성 없는 그들의 하루하루와 함께

우리는

오늘을 반성해야 할 때가 있다

 

오늘 니는 무엇인가

나는 짐승보다도 못하구나

반성이 없는 것과

반성이 있는 것 사이

그 질곡의 배회에 맴도는

나는 무엇인가

 

벌써 아침해의 찬란한 빛은 낡아

얼어붙은 것을 다 녹이지 못하고

다시 얼기 시작하는 저녁이

저쪽에서 다가온다

 

그러나 나는 이런 오늘을 때려죽이리라

나는 무엇인가

내가 몽둥이이기 전에

내가 벼락이기 전에

내일을 잉태한 몸으로

꽝 꽝 언 땅을 걸어간다

찬 별빛이 나로 하여금 반짝반짝 빛난가

 

아 그동안 오늘이 너무 컸다

 

과거를 넘어 현재를 적극적으로 살고 미래를 준비하며 나아가는 삶. 속수무책의 삶보다는 솔직담백한 삶, 진질되고 진솔한반성,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삶.....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박히면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

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처음부터 길이 있지는 않았겠지요. 저 아프리카 초원에서부터 걷다보니 저 바이칼 호수에서 동서로 나누어 걷다보니 길이 생기고 거기서부터 희망이었겠지요. 그 길은 진실의 길이고 진리의 길이고 거기서부터 희망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