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book)/창비시선

《벽 속의 편지》 강은교, 창비시선 105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5. 1.
728x90
반응형

벽 속의 편지 - 그날

 

이 세상 모든 눈물이

이 세상의 모든 흐린 눈들과 헤어지는 날

 

이 세상의 모든 상처가

이 세상의 모든 곪는 살들과 헤어지는 날

 

별의 가슴이 어둠의 허리를 껴안는 날

기쁨의 손바닥이 슬픔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날

 

그날을 사랑이라고 하자

사랑이야말로 혁명이라고 하자

 

그대, 아직

길 위에서 길을 버리지 못하는 이여.

 

강은교 시인은 별이 어둠을 안아주고, 기쁨이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날,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에도 끝없는 희망과 사랑이 있음을 노래합니다. "그날을 사랑이라고 하자, 사랑이야말로 혁명이라고 하자"에서 사랑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랑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으로 서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며 나아가는 용기가 함께 할 것입니다.

 

 

한 여자가 있는 풍경

 

벚나무 밑에서 

한 젊은 여자가 울부짖고 있다

제 가슴을 쥐어뜯는다

얇은 나일롱 블라우스가

몰려 서 있는 은빛 안개를 흔든다.

 

아침이 그치고

여기저기 젖은 창마다

푸시시한 얼굴들이 내걸린다

기웃거리는 은빛 안개.

 

젊은 여자의 길고 높은 목소리

벚나무 굽은 가지를 흔들며

젖은 창마다 급히 달려가다가

오만하게 솟은 벽에 부딪쳐

부스스 부서져 내린다

피가 흐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젖은 창들이 스르르 닫히고

여자의 옆에 팽개쳐진 잡동사니 그릇들에

이제 일어선 햇빛

핏빛으로 반짝이며 고여들 뿐,

 

우리들의 벽은 튼튼하고 튼튼하다.

 

"한 여자가 있는 풍경"은 벚나무 아래에서 젊은 여자가 울부짖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이 젊은 여자는 폭력 앞에 쓰러져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젖은 창마다 나타나는 푸시시한 얼굴들과 부서지는 목소리, 여자가 울부짖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무관심과 엮이지 않으려는 남남의 벽이 튼튼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의 냉혹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연대해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소통과 연대로써 우리는 강건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흰 눈 속으로 

 

여보게, 껴안아야 하네

한 송이 눈이 두 송이 눈을 껴안듯이

한데 안은 눈송이들 펄럭펄럭 허공을 채우듯이

 

여보게, 껴안아야 하네

한 조각 얼음이 두 조각 얼음을 껴안듯이

한데 안은 얼음들 땅 위에 칭칭 감기듯이

함께 녹어 흐르기 위하여 감기듯이

 

그리하여 입맞춰야 하네

한 올 별빛이 두 올 별빛에 입맞추듯이

별빛들 밤새도록 쓸쓸한 땅에 입맞추듯이

 

눈이 쌓이는구나

흰 눈 속으로

한 사람이 길을 만들고 있구나

눈길 하나가 눈길 둘과 입맞추고 있구나

 

여보게, 오늘은 자네도

눈길 얼음길 만들어야 하네

쓸쓸한 땅 위에 길을 일으켜야 하네.

 

눈이나 얼음은 차갑고 서로 녹아내릴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사랑과 소통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인은 눈송이와 얼음처럼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를 껴안고 입맞추며 살갑게 비비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야 함을 노래합니다. "흰 눈 속으로"는 서로를 껴안고 함께하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지상의 모든 

피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지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보이는 길과

지상의 모든

보이지 않는

길들에게

 

말해다오

나, 아직 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