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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사월에서 오월로》 하종오, 창비시선 43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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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마음먹은 대로 몸을 변신시킬 수 있다면

상계동 골짜기 맑은 물이 되어서

부모들 행상 나간 뒤 비탈진 골목에서

흙 만지며 노는 아이들 깨끗이 씻어주고

 

봄날엔 홀연히 많은 고액권이 되어서

삭월세 사는 주민들의 전세금으로

혹은 너른 땅을 사서 골고루 나눠주어

한 채씩 집을 짓게 하고

겨울날엔 옷과 밥이 되어

따뜻하게 지내게 해주고 그러나

 

그 일을 하기 전에 오늘밤에는

중동취업을 꿈꾸는 남편들에게

입사서류가 되어 배달되거나

포장마차 마련을 꿈꾸는 아내들에게

리어카와 연탄불이 되어 찾아가거나

학교 못 다니는 쓸쓸한 소년소녀에게

책이 되어 찾아가 공부하게 하고 그러나

 

마음먹는 대로 몸을 변신시킬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한나절 싸우고 우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이 되어 함께 놀다가

사랑이 되어 포근히 안아주다가

<마당·1982>

 

하종오 시인의 "마음"은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특히 서민들의 삶의 고단함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바람이 시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내면의 힘과 선함을 바탕으로 사회적 연대감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들녘

 

어미아비는 널 가지면서부터 온 삶이

저 흙 키우는 드넓은 대지이고 싶었다

언제나 가난하면 양식 주고

넉넉하면 거름 가져가는 들녘에서 

한 알의 곡식 아껴 먹으면서도

태어나지 않은 널 위해 안타까와했다

그런 밤마다 네 어미 만삭배에 귀 대고

꿈틀거리는 배냇짓 소리 들으면서

만약 가냘픈 계집아이라면

온 들녘 껴안을 큰 젓가슴 가질 거라고 생각했고

만약 실하고 거센 사내아이라면

온 들녘 갈 큰 손발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네 첫울음은 강물 흔들고

네 눈망울은 아침해 둥그렇게 떠올렸다

너의 어리디어린 목숨이 온 순간

땅이 이 세상에 끝없이 펼쳐졌다

이제 네 어미 들나물 먹고 젖 되먹고

네 아비 논밭에서 받은 힘 되받아

어미아비가 맺은 씨앗들 다 뿌리는 농부 되어야 한다

곡식 익는 때는 참으로 길고 머느니

지금부터 추수까지 해마다 잘 자라거라

황사바람 일어나는 목마른 저 흙에서

어미아비는 널 낳아 비로소 대지를 가졌다

<詩人(시인) 1집·1983>

 

이 시 "들녘"은 자식이 부모의 삶에 더해주는 풍요로움과 의미를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기대감, 그리고 성장해 가는 자식을 통해 부모의 희망과 꿈이 실현되는 순간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월애서 오월로

 

봄의 번성을 위해 싹틔운 너는

나에게 개화하는 일을 물려주었다

아는 사람은 안다

이 세상 떠도는 마음들이

한 마리 나비 되어 앉을 곳 찾는데

인적만 남은 텅빈 한길에서 내가

왜 부르르 부르르 낙화하여 몸 떨었는가

남도에서 꽃샘바람에 흔들리던 잎새에

보이지 않는 신음소리가 날 때마다

피같이 새붉은 꽃송이가 벙글어

우리는 인간의 크고 곧은 목소리를 들었다

갖가지 꽃을 함께 꽃가루 나눠 살려고

향기 내어 나비떼 부르기도 했지만

너와 나는 씨앗을 맺지 못했다

이 봄을 아는 사람은 이 압유도 안다

여름의 눈부신 녹음을 위해

우리는 못다 핀 꽃술로 남아 있다

<詩人(시인) 1집·1983>

 

1980년 5월 OO(이)여......

OO에 대한민국의 도시들이, 이 지구별 도시들이.....

"오월은 봄이 끝나는 곳에 있으니께

 이 길을 걸어다가 지쳐 누우면 안되여

 저 꽃가루에 묻어서 이 나라 쓸쓸한 곳마다

 향기를 뿌려주며 빨랑빨랑 가자잉" (하종오 "五月行(오월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