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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74

《하얀 사슴 연못》 황유원, 창비시선 493 천국행 눈사람 눈사람 인구는 급감한 지 오래인데 밖에서 뛰놀던 그 많던 아이들도 급감한 건 마찬가지 눈사람에서 사람을 빼면 그냥 눈만 남고 그래서 얼마 전 눈이 왔을 때 집 앞 동네 놀이터 이제는 흙이 하나도 없는 이상한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을 봤을 때 그건 이상하게 감동적이었고 그러나 그 눈사람은 예전에 알던 눈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거의 기를 쓰고 눈사람이 되어보려는 눈덩이에 가까웠고 떨어져 나간 사람을 다시 불러 모아보려는 새하얀 외침에 가까웠고 그건 퇴화한 눈사람이었고 눈사람으로서는 신인류 비슷한 것이었고 눈사람은 이제 잊혀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눈사람에서 사람을 빼고 남은 눈이 녹고 있는 놀이터 사람이 없어질 거란 생각보다 사람이 없으면 눈사람도 없을 거란 생각이 놀.. 2024. 4. 3.
《바람 설레이는 날에》 인태성, 창비시선 25 車窓(차창) 아지랭이 슴결에 싸인 초가 지붕들이 조개껍질 아니면 게딱지 모양으로 엎드린 마을마다 피는 복사꽃이 살구꽃이 고와서 철은 그대로 봄답게만 마련되는 봄을 여인들이 보내는 마음도 아닌 기다리는 마음도 아닌 무심한 채로인 여인들이 가까이 온 봄을 먼 배경으로 서서 바라보고 무심한 여인들처럼 여기 돌아가는 이 떠나가는 이 어쩌면 모두 제 모습 아닌 남의 모습도 아닌 그런 얼굴들이 다가온 봄을 멀리 두고 가물가물 졸음 졸며 한낮 고달픈 旅程을 흘러간다 * 봄, 다가오는 봄, 복사꽃, 살구꽃 피는 그 다가오는 봄을 느끼고 나누고 싶어지는 때입니다. 인태성 시인은 1950년대 중반에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그런데, 첫 시집이 세상과 인연을 나눈 것은 30년 가까이 지나서입니다. 시인의 첫 시집 은 1981년.. 2024.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