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窓(차창)
아지랭이 슴결에 싸인
초가 지붕들이
조개껍질 아니면
게딱지 모양으로 엎드린
마을마다 피는
복사꽃이 살구꽃이
고와서
철은 그대로
봄답게만 마련되는
봄을
여인들이
보내는 마음도
아닌
기다리는 마음도
아닌
무심한 채로인
여인들이
가까이 온 봄을
먼 배경으로
서서 바라보고
무심한 여인들처럼
여기
돌아가는 이
떠나가는 이
어쩌면 모두
제 모습 아닌
남의 모습도 아닌
그런 얼굴들이
다가온 봄을
멀리 두고
가물가물 졸음 졸며
한낮 고달픈
旅程을 흘러간다
<고대문화 제 1집, 1955>
* 봄, 다가오는 봄, 복사꽃, 살구꽃 피는 그 다가오는 봄을 느끼고 나누고 싶어지는 때입니다. 인태성 시인은 1950년대 중반에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그런데, 첫 시집이 세상과 인연을 나눈 것은 30년 가까이 지나서입니다. 시인의 첫 시집 <바람 설레이는 날에>은 1981년 5월에 세상에 나와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1955년 작품이라 차창 밖으로 초가지붕들이 보이나 봅니다.
"표제를 '바람 불어 설레이는 날에'라고 했다. ' 그러고 보니 살아온 과정이 줄곧 바람 설레는 날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마음 산란하긴 여전히 바람 설레는 황량한 들판을 헤매는 느낌이다. 지금은 다만 앞날의 과제를 똑바로 인식하는 일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줄여서 말한다면, 머물다가 갈 한 시대와 사회를 보는 역사적 안목을 높여 나가는 일이라할까."
대장간에서
달아오른 시뻘건 쇳덩어리를 커다란 망
치로 두들겨대면 저녁나절의 어둠이 기
어들다가 놀라 깨어지며 불꽃 되어 튄
다. 이마에 연방 맺혔다가 떨어지는 수
정 땀방울. 대장간 움막은 너무 화끈거
려 삼복 더위도 얼씬 못한다. 대장장이
들이 시우쇠를 다루는 저 순수한 의도
와 집념을 보라. 불 먹은 쇠를 망치로
내려칠 때마다 털레거리는 저 건장한
남근 또한 얼만나 훌륭한가. 하나님도
빙그레 웃으시며 상을 주시리라.
<월간중앙, 1969>
* '저 순수한 의도와 집념, 불 먹은 쇠를 망치로 내려칠 때마다 털레거리는 저 건장한 남근 또한 얼마나 훌륭한가. 하나님도 빙그레 웃으시며 상을 주시리라.' 그 상이 무엇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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