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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창비시선 262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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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누이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온느 길

여섯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짝 당겨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대만 화푸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을 보니

눈물 핑 돈다

 

* '시인이 술이 취한게야.' 이렇게 말 하고 싶지만, 시인은 역시  시인인가 봅니다. 그 버스에서 오누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2006년 서울, 경기, 인천은 교통카드를 사용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종이표를 사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2006년 여덟살 오빠와 여섯살 여동생은 2024년에 각각 26살 청년과 24살 숙녀로 성장했겠지요. 그때 오누이가 보여준 그 모습처럼 살고 있을까요? 그 고단한 18년의 세월을 서로 보듬으며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란 멋진 오누이가 어느 날, 버스에서 시인의 눈물을 다시 핑 돌게 하겠지요.

 

 

봄바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가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젓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쨰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 스타킹 속에 든 그 새끼발가락을 우연히 보게 된 순간, 나는 술이 번쩍 깼다.

그의 붉은 항문. 

설핏 붉어진 낯이 자랑이었나 그대 알몸은 그리워 이가 갈리다라 하면 믿어나 줄거나

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고소해 하던 옆집 가시내들은 어디로 갔을까

철없는 어린 갈보처럼

살 속으로 바람 가득 들고

花津, 온몸 열어 새 사내 맞는

늙은 나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겠네 한번

가슴과 허벅지는 소젓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도토리묵 과부 윤씨 가 같이 한술 뜨자고 소릴 지른다

묵국수를 말아내는 윤씨의 젖은 손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저 야윈 실핏줄들

몸 달아, 하아 몸은 달아

안 그런 척 몸 가까이 냄새만 설핏 맡아보고요

말라붙은 젖가슴 젖은 누굴 주고

 

  문학과 예술에서 성적 탐구와 실험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성적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프리섹스, 그러나 때로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프리섹스와 미투 운동 모두 성평등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성적 표현의 자유와 성적 책임 사이의 긴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엄격한 자기 검열에 빠지게 하곤 합니다. '서민들의 피곤한 일상을 위무하고 다독이며 재미를 주는 민중성의 시어입니다. 그리고 시들고 지쳐 꺼져가는 일상의 욕망에 잠깐 불을 붙이는 관능적인 시어입니다. 그러한 맑은 관능이 숨쉬기에.....고단한 삶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위무하려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는 의미에서입니다."(임무기)  이 민중의 시어들은 미투 운동을 넘어갈 수 있을까요?

 

  무엇이 그토록 창피해서  첫장에 하얀 라벨지를 붙였을까? 커피도 아닌 얼룩들, 설마 이 시집을 뒤척이다 그이의 참을 수 없는 뜨겁게 분출하는 내적 흔적이라도 남긴 것일까? 이 책을 헌책방에 판 그이는 어떤 이유로 그 얼룩들을 감추기 위해 라벨지를 붙였을까? 당신은...?? 그것이 무시 중요하겠습니까.....'시쓰기는 생을 연금(鍊金)하는, 영혼을 단련하는 오래고 유력한 형식이라고 믿고 있다.'는 시인의 말에 집중해 봅니다.

 

치욕의 기억

 

  영화배우 전자현을 닮은 처녀가 환하게 온다 발랄무쌍

목발을 짚고 (다만 목발을 짚고) 스커트에 하이힐 스카프

는 옥빛 하늘도 쾌천 그런데 (뭔지 생소하다 그런데)

 

  오른쪽 하이힐이 없다

  오른쪽 스타킹이 없다

  오른쪽 종아리가 무릎이 허벅지가 없다

 

  나는 스쳐 지나간다

  돌아보지 못한다

 

  묻건데

  이러고도 生은 과연 싸가지가 있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