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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49

《밥상 위의 안부》 이중기, 창비시선 206 는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 등을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이중기 시인의 시를 모아 2001년 출간한 시집입니다. 한국 농촌도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습니다. 특히,  1997년 국가 부도 사태와  IMF 구제 금융 시대,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는 농촌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고, 많은 농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7년 이후 농산물 가격 하락과 내수 시장의 침체, 농촌 인구의 감소 등 여러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사과 수출도 영향을 받아 수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이는 과수원 운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무렵 이중기 시인도 키우던 사과 밭을 갈아엎었습니다. 풋것이 돈이 된다  나, 매음굴 하나 알고 있네초록은 날것의 상쾌함을 가져사내들 풋것.. 2024. 4. 27.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창비시선 204 해남 들에 노을 들어 노을 본다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해남 들 가운데를 지나다가들판 끝에 노을이 들어어찌할 수 없이서서 노을 본다노을 속의 새 본다새는내게로 오던 새도 아닌데 내게로 왔고노을은나를 떠메러 온 노을도 아닌데나를 떠메고 그러고도 한참을 더 저문다우리가 지금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저 노을 탓이다이제는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르지 말자고중얼거리며조금씩 조금씩 저문다해남 들에 노을이 들어 문득여러날 몫의 저녁을 한꺼번에 맞는다모두 모여서 가지런히잦아드는 저것으로할 수 있는 일이란가슴속까지 잡아당겨보는 일이다어쩌다가 이곳까지 내밀어진 생의 파란 발목들을덮어보는 일이다그렇게 한번 더퍼보는 것뿐이다내게 온 노을도 아닌데해남 들에 뜬 노을저 수천만 평의 무게로 내개로 와서내 뒤의 긴 그림자까.. 2024. 4. 26.
《봄비 한 주머니》 유안진, 창비시선 195 자격 초가을 햇살웃음 잘 웃는 사람, 민들레 홑씨 바람 타듯이, 생활을 품앗이로 마지못해 이어져도, 날개옷을 훔치려 선녀를 기다리는 사람, 슬픔 익는 집ㅇ마다 흥건한 달빛 표정으로 열이레 밤하늘을 닮은 사람,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사랑하기에 너무 작은 작은 자신을 슬퍼하는 사람, 모든 목숨은 아무리 하찮아도 제게 알맞은 이름과 사연을 지니게 마련인 줄 아는 사람, 세상사 모두는 순리 아닌 게 없다고 믿는 사람, 몇해 더 살아도 덜 살아도 결국에는잃는 것 얻는 것에 별차이 없는 줄을 아는 사람, 감동받지 못하는 시 한편도 희고 붉은 피를 섞인 눈물로 쓰인 줄 아는 사람, 커다란 갓의 근원일수록 작다고 믿어 작은 것을 아끼는 사람, 인생에 대한 모든 질문도 해답도 자기 자신에게 던.. 2024. 4. 23.
《 사이 》 이시영, 창비시선 142 어린 동화 아랫도리를 홀랑 벗은 아이가 젊은 엄마의 손을 이끌고 대낮의 쭈쭈바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하느님이 뒤에서 방긋 웃다가 그 아이의 고추를 탱탱히 곧추세우자 젊은 엄마의 얼굴이 채양 사이로 빨갛게 달아 오른다 구례장에서 아침부터 검푸른 장대비가 줄기차게 오신다 천막 속에서 값싼 메리야스전을 걷다가 온 땅과 하늘을 장엄한 두 팔로 들었다 놓는 빗줄기를 하염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서 있는 한 중년여인의 옆 얼굴이 빨갛다 오늘 같은 날 일요일 낮 신촌역 앞 마을버스 1번 안 등산복 차림의 화사한 할머니 두 분이 젊은 운전기사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여보시우 젊은 양반! 오늘같이 젊은 날은 마음껏 사랑하시구려. 그래야 산천도 다 환해진다우" 오늘같이 젊은 날, 마음껏 사랑하지요. 생업 통태 싸유..... 물.. 2024. 4. 19.
《荒地(황지)의 풀잎》 박봉우, 창비시선, 창비시선 005 素描(소묘) 33 우리의 숨막힌 푸른 4월은 자유의 깃발을 올린 날. 멍들어버린 주변의 것들이 화산이 되어 온 하늘을 높이 흔들은 날. 쓰러지는 푸른 시체 위에서 해와 별들이 울었던 날. 詩人(시인)도 미치고, 민중도 미치고, 푸른 전차도 미치고, 학생도 미치고,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의 얼굴과 눈물을 찾았던 날. 시인 박봉우는 분단의 비극과 아픔을 온몸으로 절규하던 시인이며 그 엄혹했던 시대에 통일을 지향했던 시인입니다. 그러나, 시대에 대한 울불과 격정을 삵이지 못하고 폭음과 방랑과 가난으로 점철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습니다. 심한 좌절의 시대에 갈등고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암울안 말년을 맞이한 비운의 시인이었습니다. 김관식, 천상병과 함께 한국 시단의 3대.. 2024. 4. 18.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창비시선 262 오누이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온느 길 여섯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짝 당겨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대만 화푸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을 보니 눈물 핑 돈다 * '시.. 2024.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