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페달을 밟고》 최영미, 창비시선 175
그 여름의 어느 하루 오랜만에 장을 보았다. 한우 등심 반근, 양파, 송이버섯, 양상추, 깻잎, 도토리묵, 냉동 대구살, 달걀..... 종이쪽지에 적어간 목록대로 쇼핑 수레에 찬거리를 담노라면 꼭 한두개씩 별외로 추가되는 게 있게 마련이다. 아, 참기름이 떨어졌지. 저기 마요네즈도 있어야 샐러드를 만들겠군. 그렇게 소소한 생활의 품목들을 빠짐없이 챙기는 동안만은 만사를 잊고 단순해질 수 있다. 불고기를 재고 도토리묵을 무쳐야지, 대구가 적당히 녹았을 때 밀가루를 뿌려야 하니 중간에 어디 들르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야지. 샐러드에 참치를 넣을까 말까. 적어도 이것과 저것 중에 하나를 택할 자유가 내 손에 달려 있을 때, 망설임이란 늘 즐거운 법이다. 행복이란 이런 잠깐 순간에 있는 게 아닐까? 양손에..
2024.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