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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잠든 사람과의 통화》 김민지, 창비시선 0509 (2024년 9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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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전체는 이렇다

 

한 아이의 손끝

 

수수깡과 이쑤시개로 만든집

실로폰 채 끝에 그려 넣은 얼굴

 

돔과 같은 마음

둥근 천장을 향해 던지는 공

 

직선으로 뻗지 않고

허공을 하산하는 중력

 

김민지 시인의 시 '너의 전체는 이렇다'는 단순한 표현 속에서 아이의 세계와 삶의 흐름을 담당하게 들여다보게 합니다. '수수깡과 이쑤시개로 만든 집'은 아이가 손끝으로 창조해내는 작은 세계를 상징합니다. 소박한 재료로도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습은 비록 작아 보일지라도 그 의미는 무한히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돔과 같은 마음'과 '둥근 천장을 향해 던지는 공'은 아이의 둥글고 포근한 마음을 연상시킵니다. 직선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아이의 세계는  경계가 없이 확장되며, 상상력과 호기심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직선으로 뻗지 않고 허공을 하산하는 중력'은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삶을 은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아이의 세계는 직선적이지 않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며 흐르기도 합니다. 이 시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작은 사물과 순간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동굴영원

 

가만히 누워 맨발로 두서없이 움직여보는 발가락

날아갈 수 없는 기분이지만 버둥거리지 않는 기분

어렴풋하게 꿈에서 했던 말을 읊조린다

 

아쉬워할 사람이 하나 생기고

그리워할 사람이 하나 생긴다

그게 누구의 감정인지 모르고

 

불현듯 어떤 경우에도

접근성을 고려한 무의식은 없다

 

아는 사람들이 나오고

잇따른 감각이 나를 물리치던 꿈에도

 

걷기 편한 신발을 신어도

바닥을 탐구하고 있었다

 

기도에 빠지지 않는 내용

이럴 때만 찾아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을 만들면 믿이이 생겼다

 

김민지 시인의 시 '동굴영원'은 꿈처럼 몽환적이고 모호한 감정의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가만히 누워 맨발로 두서없이 움직여보는 발가락'과 '날아갈 수 없는 기분이지만 버둥거리지 않는 기분'은 억눌린 욕망과 차분한 체념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감정이 자유롭지도 억제되지도 않은 채 그저 고요히 흘러가는 듯합니다. '아쉬워할 사람이 하나 생기고 그리워할 사람이 하나 생긴다'는 감정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태를 표현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의 근원을 알 수 없을 때 막연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느끼곤합니다. 이 시 속의 '나' 역시 그 감정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있습니다. '접근성을 고려한 무의식은 없다'는 무의식 속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일깨웁니다. 꿈속에서도 무의식은 아무런 배려나 안내 없이 자유로이 흘러가며, 우리는 그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에 빠지지 않는 내용'과 '이럴 때만 찾아서 죄송합니다'는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절실할 때만 신앙이나 희망에 의지하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넵니다. 이는 믿음 속에 감춰진 죄책감을 은근히 드러내며 순간적인 갈구와 의지 속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일상의 미세한 감각과 무의식에 남은 감정의 파편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하며 그 안에 숨겨진 묵직한 심리를 담담하게 전해줍니다.

 

 

우양산

 

눈물이 나면 물을 마시는 사람처럼

빗물이 바다에 간다

 

이 모든 빗물, 이제는 바다로 덮일

세계를 살아갈 사람에게

뜨거워지는 지구와 바람을 주려는 신

 

아주 뜨거워지지 못하는 마음은

바람 없이 멀리 가지 못한다

 

신도 그걸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의 정면엔 내가 있을까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은

시간보다 덜 깨진 그림으로 남는다

 

비의 입장에서 눈물은

가끔 비일까

비도 사람 비슷한 눈에서 흐르고 싶을까

 

김민지 시인의 '우양산'은 눈물과 빗물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느낌이 듭니다. '눈물이 나면 물을 마시는 사람처럼'은 사람의 눈물과 빗물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인간의 감정이 마치 자연의 순환처럼 흘러 작은 눈물 한 방울이 어떻게 더 큰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줍니다. 빗물은 단순한 자연의 현상을 엄어 우리 삶의 한 장면처럼 다가옵니다. 비가 땅으로 스며들고 다시 바다로 가듯이, 우리 마음속 감정도 그렇게 흘러가며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은 시간보다 덜 깨진 그림으로 남는다'에서 자연이 곧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합니다. 흘러내리는 비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가 눈물처럼 흐르고 우리가 비처럼 세상을 적신다면, 결국 우리는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부의 말

 

딸꾹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다

고이면서 멀리 가는 것에는 형체가 없다

 

거짓말이다

하루 더 살고 알았다

 

지겨움을 이기는 자신 없음

죽음보다 먼저 일당을 번다

그것을 기다릴 게 어니었나

 

순서 없는 일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래서 안 되는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래, 대답하지 않고

잠든 사람과의 통화를 마치지 못한다

 

김민지 시인의 '인부의 말'은 짧은 일상 속에서도 깊은 감정과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딸꾹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다'에서 말은 하찮아 보이는 고통조차도 결국엔 살아있음을 나타냄을 보여줍니다. 이 시는 삶의 지겨움과 그 속에서 무언가를 버텨야 하는 인부의 고단한 마음을 담담하게 담고있습니다. '거짓말이다 / 하루 더 살고 있다'는 삶의 버거움 속에서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내는 인부의 심정이 묻어납니다. 죽음보다 먼저 일당을 벌어야 하고 순서 없는 일들과 싸워야 하는 삶의 피로가 '지겨움을 이기는 자신 없음'에서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순서 없는 일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 그래서 안 되는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는 삶의 불확실성과 관계 속에서 오는 갈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상과 고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사랑하고 애착을 갖는 그 마음, 비록 그것이 불완전하더라도, 사람은 그런 감정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대답하지 않고 잠든 사람과의 통화를 마치지 못한다'는 끝내 전해지지 못한 마음과 미련을 떠올리게 합니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어떤 관계,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놓지 못하는 마음을 이 시는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 놓인 기색들은

숙박업을 위해 마련한

같은 색의 수건들 같다

 

누가

누구의 것인지 모르게

새것처럼

 

이미 많은 올이 움직였지만

개수는 꼭 맞춰두었다

 

* 제 취향은 아니군요 .....

2024년 9월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