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책을 보다가 엄마를 얼마로
잘못 읽었다
얼마세요?
엄마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는데,
책 속의 모든 얼마를 엄마로
읽고 싶어졌는데
눈이 침침하고 뿌예져서
안 되었다
엄마세요? 불러도 희미한 잠결,
대답이 없을 것이다
아픈 엄마를 얼마로
계산한 적이 있었다
얼마를 마른 엄마로 외롭게,
계산한 적도 있었다
밤 병동에서
엄마를 얼마를,
엄마는 얼마인지를
알아낸 적이 없었다
눈을 감고서,
답이 안 나오는 계산을
나는 열심히 하면
엄마는 옛날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엄마는 진짜 얼마세요?
매일 밤 나는 틀리고
틀려도
엄마는 내 흰머리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이영광 시인의 시 '계산'은 인간의 삶을 숫자로, 혹은 물질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깊은 깨달음을 담고 있습니다. 시 속에서 화자는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을 "얼마"라는 단어로 표현하지만, 어머니의 존재나 사랑을 단순히 물질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처음에 "얼마"와 "엄마"를 잘못 읽는 장면은 어머니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화자는 어머니를 "얼마"로 계산해보려 하지만, 그 가치는 결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을 깨닫습니다. 특히, 병동에서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의 몸과 존재가 점점 쇠약해지는 상황에서 자식이 느끼는 슬픔과 고통을 드러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존재는 그 어떤 계산으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화자는 그 무게를 깊이 느끼게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어떠한 물질적 가치로 환산될 수 없으며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나오지 않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여전히 자식을 감싸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어머니와 자식 간의 사랑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음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마스크들
어쩌다가 서울 가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모이 쪼는 양계장 닭처럼 승객들이 예외 없이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목을 빠뜨린 걸 보고
신은 과연 계시는구나, 싶었다
팬데믹 땐 단 하나 예외도 없이
다들 마스크 속에 얼굴을 묻은 채로 또
그걸 들여다보고 있어서
신은 한층 분명히 계시는구나, 싶었고
꼭 신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대단해 보이던 이들, 샐럽들은 물론 톱스타들,
재벌 총수에 대통령에 해외의 왕들까지도 마스크 속에서
코맹맹이 소리로 옹알대는 걸 들으면 어쩐지
세상이 공평해진 것 같더라고
예외가 없다는 것 ...... 이를테면, 중국인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일제히 뛰었다 내리면 지구가 궤도 이탈한다는
농담 속의 그 모두나 일제히 같은 말을 떠올리다보면,
계급은 죽고 평등 세상이 온 것 같더라고
하지만 갔다 왔는지 왔다 갔는지 모르겠던 조상귀신들처럼
팬데믹 지나간 시절, 볕 좋은 서울 거리,
그새 부음 몇줄 달랑 남기고 떠나버린 이들 생각나고
좋은 것 가지고는 그런 예외 없는 천국이란 게
올 리가 없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다, 아니
그러다가도 북적대는 인파에 떠밀리며
일제히 사라져버린 마스크들 생각을 하다보면 또
꼭 신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이 지구는 궤도를 잘만 이탈할 뻔하지 않았던가
모두를 괴롭혔지만 모두에게 정말 좋은 어떤 것이
단 한번 예외처럼,
우리 곁ㅇ[ 와 몇년씩이나 머물다가 그만
지쳐 떠나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이영광 시인의 시 '마스크들'은 팬데믹을 겪으며 마주한 현대 사회의 모습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평등과 허무함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똑같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평소엔 보이지 않던 평등의 순간을 느낍니다. 팬데믹 때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던 시절, 재벌, 톱스타, 대통령처럼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마저도 마스크 속에서 동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평소엔 멀게 느껴졌던 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이 잠시나마 공평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공평함은 한편으로 허무함을 동반합니다. 시인은 팬데믹 이후, 서울의 거리를 거닐며 사라져버린 이들을 떠올립니다. 모두가 평등했던 순간은 잠시였고, 다시 불평등한 현실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외 없는 천국"은 오지 않았고, 결국 평등이란 것은 잠시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시는 팬데믹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우리가 평소 느끼지 못했던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의 유한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했지만, 그것조차도 지나가는 순간일 뿐,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삶의 허무함과 부조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인간 나의 인형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피를 흘린 적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피 흘리는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감내하고 희생한 적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감내하고 희생하는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자랑하고 떵떵거린 적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자랑하고 떵떵거리는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명상하고 깨달았던
시간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명상하고
깨달은 둘 아는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쾌락의 늪고 회한의 골방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쾌락에 떨고 회한에 젖은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죄지었던 날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죄 많은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의문 없이 누굴 껴안았던 적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의문 없이 그 누구를 껴안은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이겨서 행복해하고 져서 행복해하던 때가
왜 없었겠나 하지만 이기고도 행복하고
지고도 행복한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살아왔다 그렇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과 싸우고 아무것도 아닌 것과
사랑했을 뿐이지 않나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인 줄 모르는 나의 인간 나의
인형이여, 아무것도 아닌 것과 싸우지 않고
무엇과 싸운단 말인가 아무것도 아닌 것과
사랑하지 않고, 대체 무엇과 사랑한단 말인가
이영광 시인의 시 '나의 인간 나의 인형'은 인간이 겪는 고통과 기쁨, 죄책감과 깨달음 같은 삶의 여러 경험들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과의 싸움과 사랑에 불과하다는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진흙 인간과 유리 인형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부서지기 쉬움을 표현합니다. 시의 흐름은 화자가 삶의 여러 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경험한 감정들을 하나씩 언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피를 흘리고, 희생하며, 깨달음을 얻고, 쾌락과 회한을 느끼고, 죄를 짓고 사랑하며, 승리와 패배를 겪었지만, 이 모든 경험이 결국 진흙 인간이나 유리 인형처럼 연약하고 무력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습니다. 즉, 많은 것을 겪었지만 그 본질은 허무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지만'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겪는 일들이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처음에는 중요한 듯 보이던 경험들이 덧없고 허무한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시인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과 싸우고 사랑했음을 깨닫습니다. 인간이 존재의 무의미함을 마주할 때 느끼는 허무함과 인간의 연약함을 상징합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과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한 싸움과 사랑이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무것도 아닌 것과 싸우고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시는 삶의 덧없음과 존재의 무상함을 담고 있으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투쟁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문이 신문 했다
「고대교우회보」 창간 50주년에 부쳐
「고대교우회보」 창간 50주년 축사를 쓰려고
2020년 7월 20일 자, 지령 제600호를 펼쳐보았다
군인은 고대에 왔다. 짓밟았다.
그리고 학교 문을 닫았다. 「10월 15일」
이렇게 적은 1971년 11월 5일 자 「고우회보」* 제16호 1면이,
600호 신문의 1면에 가득, 들어가 있었다
또, 그날의 14면은 오늘의 3면에서
이렇게 피 흘리고 있었다
캠퍼스 삼킨 최루탄 세례
곤봉과 군화의 난무 속에 비명과 통곡 가득
피 흘리며 잡혀가는 학생에 교수들 흐느껴
흥분과 분노 속에 투석으로 맞서기도
총구 앞에 가슴 내민 남학생 「쏠 테면 쏴라」
모든 것이 마흔아홉해 만에 함뿍 돌아와 있었다
우물 밑에서 깊이 올려다보는 얼굴처럼,
큰 바다에 떠오른 큰 배처럼
제자리에 처음 놓여 있었다
600호 가운데 딱 한번 이 16호를 발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러니,
위수령의 총칼에 신문을 통째 빼앗겼다는 말이 아니다
편집국장은 초교지를 편집인에게,
편집인의 유족들은 그걸 다시 모교 박물관에
빼돌리고 건네고 깊이 숨겨서 피 묻은 단 한부를
역사에 배달했다는 뜻이다
지옥에서 돌아온 레버넌트같이
교정에 그렁그렁한 꽃나무와 꽃 귀신들같이
지령 제600호 1면에 비로소 모셔진,
지령 제16호의 1면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렇게 고쳐 읽는다
군인은 고대에 오지 마라. 짓밟지 마라.
그리고 학교 문을 열어라. 「10월 15일」
고대는 살았고
독재는 죽었고
신문은 적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구름이 하늘에 떠가듯
자연스럽게,
아니, 물이 거꾸로 치솟듯
구름 하늘에 로켓을 쏘아올리듯 자연스럽게,
그러므로 반역처럼 자연스럽게
적어온 펜과 종이와
인간의 굳은 손
「고대교우회보」 50년이여,
경하하리로세
1971년 11월 5일의 제16호 「고우회보」여 단 한부여,
경하하리로세
고려대학교가 고려대학교 했다
「고대교우회보」가 그냥 「고대교우회보」 했다
신문이 신문 했다
"시 쓰는 시늉을 해온 것 같다. 시는 크고 나는 작다보니 별수가 없었다. 연인이었던 인연들을 인연인 연인들로 바꾸어 모시려 한 것이 한 시절 내 시늉이었던 듯하다. 나는 내가 조금씩 사라져 간다고 느끼지만 이 봄에도 어느 바람결에나 다시 살아나는 것들이 많다. 온전해지고 싶어 험난하게 애쓰는, 그 몬든 실정기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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