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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목숨을 걸고》 이광웅, 창비시선 0073 (1989년 3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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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웅(1940~1992)는 1967년 <현대문학>에 유치환의 추천으로, 1974년 <풀과 별>에 신석정의 추천으로 등단하였습니다. 1982년,월북 시인의 작품을 읽었다는 이유로 전·현직 교사 9명이 구속된 '오송회'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됩니다. 이들은 20여 일간 모진 고문 끝에 '교사 간첩단'으로 조작되었습니다. 이광웅 시인은 주동 인물로 지목되어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87년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이후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했으나, 1989년 전교조에 가입하면서 다시 교단에서 쫓겨납니다. 2008년이 되어서야 이광웅 시인은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오송회' 사건의 재심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고, 2011년 대법원은 국가 배상을 판결했습니다.

  1985년 첫 시집 <대밭>을 시작으로 둘째 시집 <목숨을 걸고(1989)>, 셋째 시집 <수선화(19920>를 출간했습니다. 시인은 1992년 12월 22일, 고문과 투옥 후유증으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사건이 조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문과 가하고 사건을 조작한 자들이 엄벌에 처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은 고문과 사건을 조작한 책임자들은 반드시 법정에 엄벌에 처해져야 합니다.

 

 

대공분실 뒤뜰에는

 

대공분실 뒤뜰에는

한뙈기의 딸기밭

딸기밭 끝나는 데에

재래식 변소.

 

대공분실 변소 안은

감시의 눈길 닿지 않는

그 중 좋은 환경이라서

그곳에 나래 접는

평안한 마음.

하루 가운데에서 스물레 시간 가운데에서,

안도의 시간 있다면

그건 바로 좋은 환경, 변소의 시간.

 

안도의 시간 안에 또아리 치는 꾀 있어 .....

변소 바닥 신문지에 오줌물 적셔

변소 창문 유리에 그 신문 붙여

주먹으로 유리 깨어

동맥 끊는 일,

변소 밖에 기다리는

고문의 전문가, 노회한 형사 눈 속여

도둑질이나 하듯 몰래몰래

동맥 끊는 일.

 

 

그때 그 순간 악마가 ......

 

형사가 나를 고문했을 때

"네놈은 김일성주의자! 그랬을 적엔 네놈에겐 반드시 배후가 있다. 배후 내놔라."하고 드디어 고문의 막바지를

무지막지한 구둣발로 성큼 딛고 올라섰을 때

내 오장육부는 문드러진 채 일제히

소리치고 있었다.

지옥의 망령처럼 기진의 단애에서, 최후의 젖 먹던 힘

발악하고 있었다.

"내가 과연 김일성주의자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자유대한민국에 사는 한

김일성주의자면 어떻고

호치민주의자면 어떻단 말이오?

내가 모르는 소리를

당신들은 들이대지만

자신을 속이는 국가관을 들먹이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아무리 고문해봤자

나에겐 배후인물이 없고 당신들은 아무런 정보도 캐낼 수 없소.

그러니 약질의 가짜 간첩을 괴롭히지 말고

진짜 간접 거물을 좀 잡아보시오.

아무 배후인물 없는 미물을 갖고 놀리 마시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고문을 중단하시오.

비행기고문, 물고문, 통닭구이고문, 전기고문 ......

지겨운 고문,

고문을 중단 못할 바에는

어서 나를 총살시키시오.

원양어업이란 말보단 먼바다 고기잡이가 더 좋은 것이 사실 아니오?

개인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인민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뭐가 나쁘오?"

형사가 이를 갈았다.

"내 이런 악질은 처음 보겠군. 이 새끼가 드디어 발길질을 시작했군."

그때 그 순간 악마가 와서

심장이 든 내 가슴을 악마가 와서 난도질을 했다. 그러나

매와 고문과 그 견딜 수 없는 치욕에도

나는 살았다.

내가 까무러침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

노동계급답게

노동계급의

삶의

뿌리의

향기답게

살아 남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햇빛의 말씀

 

철장을 통해서 흘러 든 햇빛

얼어 곱은 두 손에 받아 든 햇빛.

그 햇빛 내개 건네는 말씀

...... 따뜻한 봄날이 머지 않으리.

 

얼어붙은 오늘 이 죽음의 땅에

봄맞이 서두르는 새들의 궁리 .....

산 같은 침욱을 깨뜨리고

새봄을 구가할 꽃들의 합창 .....

 

 

방주교회

 

대접 받은 한끼의 점심 밥상은

시장기 서린 한잦의 장벽에

다름아닌 바로 그것

'가뭄에 단비',

 

시장기 서린 장벽에

밥을 떠넣어주는 만큼이나

방주교회 목사님은

인자하신 분

목사님의 부인께서도

살틀하신 분.

 

하절에도 동절에도

인자하신 분

춘절에도 추절에도

살튼하신 분.

 

홍수에는 방주이고 싶으시고

가뭄에는 단비이고 싶으시고 .....

 

시장기 서린 장벽에

밥을 떠넣어주는 만큼이나

인지하신 분

살틀하신 분.

 

 

바깥의 노래

 

1

사과꽃이 아름답게 피고

길개천에 착한 노래

푸른 봄 햇빛.

님은 가시고

봄은 오시고

하늘끝 벋어간

슬픈 평행선.

 

2

옥중에서 불러본다.

무심히 떠오른 바깥의 노래,

드높은 담벼락 안에서도

사과꽃은 흐드러지고 ......

 

3

불귀, 불귀, 못 행해 간다.

젖줄 되어 넘치는 강

바깥의 들녘

꿈엔들 쉬이 잊을 수가 없는

시름의 주름살, 노모의 얼굴.

 

4

중천에 떠오른

태양의 나라

평화한 봄노래

불러본다.

잠자리 선득한 밤이어도

한낮의 빛바다

꿈곁에 보여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453997.html

 

재심과 국가배상을 넘어

반가운 일이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1983년 이적단체 결성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오송회 사건’의 연루자 9명과 그 유족·가족 등 3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www.hani.co.kr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5774.html

 

[안도현의 발견] 이광웅

군산에서 전주로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오장환 시집 <병든 서울>의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버스 안내원의 신고에 의해 경찰은 군산제일고 국어 교사 이광웅이 제자에게 시집을 빌려줬다는 사실

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