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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창비시선

《어여쁜 꽃씨 하나》 서홍관, 창비시선 0080 (1989년 9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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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때로는 왈칵 쏟아질 듯 그리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나를 감싸주던 밝은 가을 햇살과

뻐꾸기 소리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젊은 날

분노로 외치던 광화문 네거리와

목놓아 울던 막걸리집과

온몸을 말리우듯 태워대던

하숙방의 담배연기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조그만 인간의 진실들이 모여

커다란 사회와 역사를 이룬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인간이 때로는 끝없이 아름답고

뜨거울 수 있음을 보여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루내 나를 붙들고

눅진눅진 짓이기던 것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어느 날 석양길에

그리운 것들이 나를 찾아와

따스한 불길을 활활 지피어옵니다.

 

서홍관 시인의 시 "그리움'"은 인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그리움'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시는 어린 시절의 따뜻한 햇살과 자연의 소리, 그리고 젊은 시절의 격정적인 순간들을 회상하며 그리움의 본질을 표현합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의 분노, 막걸리집에서의 눈물, 하숙방의 담배연기 등 청춘의 강렬했던 순간들을 회상합니다. 시인은 개인의 경험과 진실이 모여 사회와 역사를 이루고, 그 안에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열정을 발견한 순간들을 그리워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기억에 그치지 않고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찾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움은 과거에 대한 애착을 넘어서,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감정임을 시는 전합니다.

 

 

인류의 미래

 

이날은 즐거운 날.*

지구상의 인류가 50억을 돌파했다고

유엔이 선포한 날.

 

핵무기를 티엔티로 환산해서

50억 지구가족 모두에게

일인 당 5톤씩 선물할 수 있을 만큼

지구가 풍족한 핵무기를 갖게 된 날.

이 중의 몇십분의 일만 사용해도

인류가 25억으로 줄어드는 날.

인구문제를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날.

 

이날은 즐거운 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10억이 굶주려도

선진국에서는 식량이 남아돌아서

식량생산을 제한한 날.

 

남은 식량을

고양이와 개의 애완용 식품산업에 사용한 날.

그 대신 팝송가수 몇 명이서

아프리카 구호기금 모금통 들고 다니면서

"지구는 하나! 우리는 형제!"라고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고 다닌 날.

 

또 이날은 즐거운 날.

단 하루 동안에 사용되는 전세계 군사예산액은

9억 달러에 이르고

이중 절반만 있어도

지구상의 10억이 앓고 있는 전염병 말라리아를

퇴치할 수도 있지만

 

단 하루도 군사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으므로

아직도 인류에게는 절망과 고통이 필요하므로

지구 인구가 100억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날.

 

그리하여 우리의 아이들은

핵전쟁과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지구의 소중함을 배우고

형제애와 인류애를 배우고

 

우리들이 아무리 "행복하다" "행복하다" 가르쳐줘도

걷잡을 수 없이 "으앙" "으앙" 울어대며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태어나는 날.

 

* 유엔은 1987년 7월 11일을 지구상의 인구가 50억을 돌파한 날로 선포하였고, 세계 곳곳에서 이에 대한 축하행사가 벌어졌다.

 

2024년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 5천만명. 전 세계적으로 약 12,121개의 핵탄두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지구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롭게 태어날 작은 인간 아이들에게 전쟁과 분쟁이 없는 평화롭고 안전한 지구별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 뚜벅뚜벅 앞으로 앞으로......

 

 

분만장에서

 

이 험난한 시대에도 아이들은 태어난다.

 

수배당한 친구의 행방을 대지 않는 대학생이

서울 한복판에서 물고문으로 숨지는

남영동 앞 조그만 산부인과에서도

천둥벌거숭이로 사내아이들이 태어나고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제적 여대생이

어둠 속에 성고문을 당하는

경찰서 취조실의 책상 위에서도

겁도 없이 여자아이들이 태어난다.

 

이 땅의 어느 산새 한 마리

들꽃 한 송이도

이 나라 산기운 물기운이 어우러져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더니

 

찬비가 뿌려지는 11월의 새벽,

산모의 뜨거운 신음소리와

아이가 터뜨리는 최초의 울음소리가

비 젖은 아스팔트에 낭자하게 흩어지고

 

분만장에서 나는 듣는다.

아이의 떨리는 울음소리가

이 나라 산맥들이 되받는 함성이 되어

피두겁 속에 새로 탸어나려는

고국산천에 메아리치는 것을.

 

2024년 대한민국에는 1980년대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민주공화정을 위기에 빠뜨린  인물들, 위대한 독재자들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국공화국의 가치를 훼손하고 인권이 존중되지 않았던 그런 시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에서, 지구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존을 추구하며 민주주의를 꽃 피워 나가야 합니다.

 

송면이가 떠나가요

 

아버지!

송면이는 가요

저 어린 시절 고향의 타는 듯한 붉은 들길

하얗던 메밀밭을 뒤로 하고

가없는 저승길 주먹 쥐고 떠나가요.

 

지금껏 살아온 세월이래야

열다섯 해 오 개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잘 모르던

만 열네살에 공장에 들어가서

두 달 만에 수은중독에 걸려

남들은 학교에 가서 재잘재잘 공부하던 시간에

한 많은 이 나라를 떠나야 했어요.

 

야간공고에 보내주는 좋은 회사가 있다기에

친구들과 밤새워 상의한 끝에

서울로 올라왔지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서

개미처럼 벌어서 착하게 살려고 했는데

무지개처럼 길게 피어오르던 꿈을

몸서리치는 악몽으로 바꾸어

이 땅을 하직하려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요.

 

이 나라 근로기준법 51조에는

저 같은 어린 소년은 유해한 작업장에

일을 시킬 수 없게 돼 있다면서요

이 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유해한 작업장에서는 안전관리자를 두어 환경측정을 하고

작업장에 배치되기 전에는 사전에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면서요.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을 연다고

총경비 2조 4백억원이나 들여서

외국선수들 숙소에는 냉난방과 오락시설까지 갖춰놓고

우리 산업근로자들의 작업장에는

배기시설 안전설비도 안해놓고

수은을 먹건 카드륨을 먹건 내버려둔다면서요.

 

그러다가 중금속에 중독되면

산재보상도 안해주면서 시간을 끌다가

집도 팔고 논도 팔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린다면서요. 이제 저는 알아요

저만 이렇게 죽은 것이 아니고

이미 수천 명이 아닌 수만 명이

이런 식으로 죽어갔고

죽어가라리는 것을 알아요.

 

우리 회사 사장님은

서울은 매연이 심하다고 일요일마다

맑은 공기를 마시러 야외에 나가 골프를 치고

남의 자식은 수은증기 속에 가둬놓고도

제 자식은 한강물이 더럽다고

위생정수기로 물 받아 먹인다더니

 

제가 의식을 잃고 경련발작을 일으킬 때

진단서를 써준 의사한테 찾아가

수은중독이 아닌데

돈 먹고 써주었다고 행패를 부리면서

산재요양신청서에 도장 찍기를 거부했다니

누가?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게다가 노동부는 한술 더 떠서

사장의 도장이 없다는 이유로

국립대학병원에서 발급된 진단서를 받아주지 않아서

빚을 얻고 소를 팔아 제 입원비를 대야만 했으니

돈도 돈이지만 얼마나 억울한 황소울음을

아버지는 시골 서산땅에서 우셨겠어요.

 

우리 공장 환경관리 책임맡은 어느 병원에서는

미리 연락하고 작업장에 찾아가

형식적인 검사를 하고는

나의 수은중독이 작업장 때문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니

그렇다면 제가 수은을 비밀리에

취미삼아 먹기라도 했다는 말일까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편리한 책임회피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아버지 저기 멀리

제가 살던 서산땅 원북면이 가물가물 보이네요.

낮게 낮게 끊일 듯 끊일 듯 이어지는

조국의 산과 들도 보이네요.

감자밭, 수수밭머리에서 머리에 수건 쓰고

호미질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충격을 받아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아버지.

 

아버지 정신차리세요.

이미 팔아버린 소 세 마리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아버지의 귀한 자식 송면이만 중요한 것도 아니에요.

같이 서울에 올라온 친구들과

수많은 노동자들이 더 이상 희생당하기 전에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터로 향해 쇠나팔을 불면서

진군할 때예요, 아버지!

 

https://m.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40823111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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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는 사측이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미숙련 노동자들을 투입하다 공정 내 불량률이 급증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아리...

m.khan.co.kr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50227.html

 

“아리셀 화재, 30년 이주노동자 역사상 최대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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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i.co.kr

 

2024년은 어떤가요? 지켜야 할 것들 부터 지켜 봅시다, 제발 말입니다.  

 

"나의 첫시집을 준비하면서 시를 처음 써보던 시절을 오랫만에 기억해냈다. 그때는 1980년이었고 나는 의과대학 본과 2학년 학생이었다. 고교시절까지 시를 쓴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나에게 80년의 봄은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무척이나 길었던 휴교령 기간 동안 친구와 서울 근교에 갔다가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시라는 것을 난생 처음으로 쓰게 되었고 그뒤로 험하고 아름다운 삶의 길목에서 외롭고 그리울 때마다 일기장에 시를 쓰는 버릇이 생겼다."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218

 

故 신경림 시인, 국립암센터장의 ‘특별한 인연’ 조명 - 의학신문

[의학신문·일간보사=이승덕 기자]어제(22일) 한국문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이 별세한 가운데, 서홍관 원장의 추모를 통해 특별한 인연이 조명됐다.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은 지난 22일 SNS를 통해

www.bo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