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축
23도26분21초4119
지구의 기울기는
발기한
음경의, 기울기
이 기울기를
회전축으로
지구는
자전한다
창비시선을 하루에 한 권씩 읽으며 정리하고 하고 있습니다. 급성 충수염(맹장염) 수술을 하고 병원을 나와 집에 들어와 이번 주에 읽을 시집, 삼백번 뒤쪽의 시집 네 권을 집었습니다. 그 가운데 김언희 시인의 시집 <보고 싶은 오빠>. 2016년 출간되었을 때 사서 읽지도 않고 책장에 넣어두었었나 봅니다. 첫 시 '회전축'을 읽으며 처음인 것을 알았습니다, 김언희 시인의 많은 시들 가운데 제가 읽은 첫 시였습니다. "뭐지? 지구가 기울어서 회전하며 도는 것을 남자의 성기가 발기한채로기울어서 돌고있다고 표현하는 이렇게 강렬하고 도발적 이 시는 뭐지?" "도대체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은 누구지?" 1953년 태어나 환갑을 지난 여성인데, 마치 마광수 교수를 연상케 하는, 아니 마광수 교수 그 이상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김언희 시인. 마치 시인 앞에 앉아서 "혹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삶, 그리고 변화하는 삶 속에서도 에너지와 힘이 있음을 시에서 말하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시인은 "뭐라고, 헛소리 집어치우고 일단 내 사타구 사이를 빨기나 해!"라고 하거나 아니면 "뭐라고, 헛소리 집어치우고 일단 네 아랫도리 벗어봐 네 놈 자지나 보자"라고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할 것만 같습니다.
보고 싶은 오빠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어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토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 끊어질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가......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찍소리 없이 섹스들을 해, 찍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들이 됐나봐, 깝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지려, 하느님도 지리실걸, 낭심을 꽉 움켜잡힌 사내처럼,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
김언희 시인의 시 <보고 싶은 오빠>는 사랑과 고통, 햔실과 꿈, 일상과 체념 속에서 여전히 희망과 열정을 간직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노회한 여성이 신도 어떠한 남성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쌍십절 1
흑점(黑店)이었다
쌍십절이었다 뼛골이 빠지는
사랑의 밤이었다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양다리를
걸친 밤이었다 잘못 도달한 절정에서
잘못 부른 이름이었다 천번의
따귀로도
멈추지 못할 딸꾹질이었다
못 들어서 미치는 말이었다 못해서 미치는
말이었다 피를 토하듯이
우어젖히는
폭소로 절규하고 폭소로 울부짖는 벙어리였다
벙어리를 두부처럼 가르는
열십자로 가르는
능욕의
칼끝이었다
무시무시한 음담(淫談)이었다
외로워요뼈가녹아내리도록외로워요벽지위에
자지를하나그려놓고첩첩핥을수도있을거같아요무작위로
날리는 문자였다 물어뜯긴
손톱이었다 수천번
죽은
죽어보지 않은 죽음이 없는 대역
이었다 밤새도록 시간(屍姦)
당한 무연고의
얼굴이었다
이 강렬하고 도발적인 시는 무엇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깊은 고통과 절망, 혼란과 외로움. 시인에게서 누구와의 사랑이 상처와 폭력, 그리고 그로 인한 깊은 절망을 노래하게 했을까요? 자신의 시적 예술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않고 받아주지 않으려는 그 비통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문장들
아비의 낯가죽을 손톱으로 벗기는 문장, 어미의 뼈를 산채 바르는 문장, 젖이 아닌 것을 물리는 문장, 젖이 아닌 것을 빠는 문장, 갈보 중의 상 갈보, 죽은 몸을 파는 문장, 죽은 몸을 대패로 밀어서 팔아먹는 문장, 부위별로 값이 다른 문장, 구석에서 대가리가 떨어져나가도록 하고 있는 문장, 대가리가 떨어져나간 줄도 모르고 하고 있는 문장, 떨어진 개미떼에 떠들려 뿔뿔이 흩어지는 와중에도 하고 있는 문장, 숨이 끊어진 다음에도 알을 까고 있는 문장, 컴컴한 물 밑에서 죽은 자의 항문을 쪽쪽 빨고 있는 문장, 창자까지 게워 바치는 문장, 다 게운 다음에도 더 게우는 문장, 부질없는 삽날을 물고 독을 질질 흘리는 문장,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성기로 가져가는 문장, 세상의 중심을 혀끝으로 벌려보는 문장, 나를 아홉 구멍으로 범하는 문장, 어떤 죽음도 이미 죽음이 아닌 문장, 내 죽은 얼굴에 오줌을 싸는 문장, 내 죽은 얼굴에 칼질을 하는 문장,
"선생님의 시는 거침없는 표현과 사유, 진보적인 미학과 태도 등으로 인해 진작부터 '전위'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그런 문단의 평기에 대해 일정 부분 합의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내가 보기에도 선생님은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철저한 자기부정, 언어에 대한 회의와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 등으로 미루어볼 때 충분히 '전위적인 시인'이시다. 하지만 과연 선생님께서는 이런 세간의 평가에 대해 수긍하실까. 아마도 부정하실 것이다. 어쩌면 전위든 후위든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으실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선생님은 그저 혈혈단신, 적수공권으로 이 세계와 맞서는 '치열한 단독자'로 남고자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김남호 '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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