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描(소묘) 33
우리의 숨막힌 푸른 4월은
자유의 깃발을 올린 날.
멍들어버린 주변의 것들이
화산이 되어
온 하늘을 높이 흔들은 날.
쓰러지는 푸른 시체 위에서
해와 별들이 울었던 날.
詩人(시인)도 미치고,
민중도 미치고,
푸른 전차도 미치고,
학생도 미치고,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의 얼굴과 눈물을 찾았던 날.
시인 박봉우는 분단의 비극과 아픔을 온몸으로 절규하던 시인이며 그 엄혹했던 시대에 통일을 지향했던 시인입니다. 그러나, 시대에 대한 울불과 격정을 삵이지 못하고 폭음과 방랑과 가난으로 점철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습니다. 심한 좌절의 시대에 갈등고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암울안 말년을 맞이한 비운의 시인이었습니다. 김관식, 천상병과 함께 한국 시단의 3대 기인으로 불렸던 박봉우(1934 ~ 1990)와 신동엽(1921 ~ 1968) 두 시인은 4.19 혁명과 분단, 그리고 통일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노래했습니다. 박봉우 시인은 분단의 슬픔과 그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고통을 묘사하면서도, 통일을 향한 희망적이고 긍적정인 메시지를 통해 분단을 넘어서는 인간성 회복을 꿈꾸었습니다.
休戰線(휴전선)
山(산)과 山(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火山(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姿勢(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風景(풍경). 아름다운 風土(풍토)는 이미 高句麗(고구려)같은 정신도 新羅(신라)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을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意味(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流血(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廣場(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休息(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붙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罪(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山(산)과 山(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火山(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姿勢(자세)로 꽃이 피어야 쓰는가.
新世界(신세계) 소금
소금에는 거짓이 없다
이슬방울같이 반짝이는 심호흡에는
바다가 밀려오고 또 출렁인다.
사랑에도 거짓이 없다
언제나 철저한 그 맛을 지니며
새로 열려가는
新世界(신세계).
소금에는 또한
戰爭(전쟁)이 없다.
언제나 적당한 장소에서
악수할 줄 아는 미소를 지녔다.
소금에는 거짓이 없다
너와 나와의 바이블에서도
소금은 존중한 것으로
孤獨(고독)의 표상.
소금은 언제나
新世界(신세계).
말없는 바다가 밀려오고 또 밀려가고
新世界(신세계)는
소금뿐인
이 孤獨(고독)을 .....
<1970. 현대문학>
박봉우 시인은 소금에서 자연 그대로의 진실함고 순수함을 보고 이 특성을 통해 인간의 삶과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들 - 진실, 평화, 내적 고독 -을 탐구합니다. 소금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본질에서 영감을 받아 진실하고 평화로우며 내면의 깊이를 인정하는 새로운 세계를 꿈꿉니다.
白頭山(백두산)
높고 넓은
또 슬기로운
백두산에 우리를 올라가게 하라
무궁화도
진달래도
백의에 물들게 하라
서럽고 서러운
분단의 역사
우리 모두를
백두산에 올라가게 하라
오로지 한줄기 빛
우리의 백두산이여
사랑이 넘쳐라
온 산천에 해가 솟는다
우리만의 해가 솟는다
우리가 가는
백두산 가는 길은
험난한 길
쑥닢을 쑥닢을 먹으며
한마리 곰으로 태어난
우리 겨레여
<1971. 讀書新聞(독서신문)>
그 백두산에서 "가위, 바위, 보 / 가위, 바위, 보 / 童心의 故鄕 / 童心의 地圖"를 그리며 통일의 기쁨, 해방의 기쁨을 온 겨레가 나눌 수 있는 그날을 꿈꾸는 4.19 혁명 전야 깊어가는 밤입니다.
창비시선은 1975년 '농무' 이후 49년만에 500호 시집이 세상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처음 시집들이 세상과 인연을 맺을 때는 1호, 2호, 3호... 그런 구분을 나누지 않았나봅니다. 창비시선 500호와 문학고지성 시인선 600호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모두 인연을 맺지는 못 하겠지만 스치는 것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부지런히 인연을 맺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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