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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의 편지》 강은교, 창비시선 105 벽 속의 편지 - 그날 이 세상 모든 눈물이이 세상의 모든 흐린 눈들과 헤어지는 날 이 세상의 모든 상처가이 세상의 모든 곪는 살들과 헤어지는 날 별의 가슴이 어둠의 허리를 껴안는 날기쁨의 손바닥이 슬픔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날 그날을 사랑이라고 하자사랑이야말로 혁명이라고 하자 그대, 아직길 위에서 길을 버리지 못하는 이여. 강은교 시인은 별이 어둠을 안아주고, 기쁨이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날,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에도 끝없는 희망과 사랑이 있음을 노래합니다. "그날을 사랑이라고 하자, 사랑이야말로 혁명이라고 하자"에서 사랑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랑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희망.. 2024. 5. 1.
《이별의 재구성》 안현미, 창비시선 306 와유(臥遊)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하게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봄비 내리는 밤 복숭아꽃(桃花, 도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도화주에 취하고 싶은 4월의 봄입니다. * 와유(臥遊):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臥遊山水(와유산수)는 옛 선비들이 방 안에 산수화를 걸어 놓고 누워서 상상 속의 절경 유람을 즐겼던 것을 뜻합니다. 이 별의 재규성 혹은 이별의 재구성     나하고 나 사이에 늙고 엉뚱.. 2024. 4. 29.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근화, 창비시선 402 대파에 대한 나의 이해   대파를 샀다. 중파도 쪽파도 재래종 파도 있었지만 대파를 샀다. 굵고 파랗다. 단단하고 하얗다. 맵고 끈적끈적하다. 대파다. 흙을 털고 씻었다. 부끄러운 것 같았다. 큰 칼을 들고 대파를 썰 차례다. 억울하면 슬픈 일을 생각하면 좋다. 도마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대파니까. 시장바구니에 삐죽 솟아오른 것이 대파였다. 설렁탕도 골뱅이도 없이 대파를 씹는다. 미끈거리고 아리다. 썰어서 그릇에 담는다. 대파여서 뿌듯하다. 종아리 같은 대파였으니까. 파밭의 푸른 기둥이었으니까. 뿌리를 화분에 심으면 솟아오르는 대파니까. 허공에 칼처럼 한번 휘둘렀으니까. 대파하고 파꽃이 피고 지면 알게 될까. 대파를, 뜨거운 찌개에 올려 숨 죽인 대파의 침묵을 어떻게 기록할까. 대파를 어떻게 만들 수.. 2024. 4. 28.
《밥상 위의 안부》 이중기, 창비시선 206 는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 등을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이중기 시인의 시를 모아 2001년 출간한 시집입니다. 한국 농촌도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습니다. 특히,  1997년 국가 부도 사태와  IMF 구제 금융 시대,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는 농촌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고, 많은 농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7년 이후 농산물 가격 하락과 내수 시장의 침체, 농촌 인구의 감소 등 여러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사과 수출도 영향을 받아 수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이는 과수원 운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무렵 이중기 시인도 키우던 사과 밭을 갈아엎었습니다. 풋것이 돈이 된다  나, 매음굴 하나 알고 있네초록은 날것의 상쾌함을 가져사내들 풋것.. 2024. 4. 27.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창비시선 204 해남 들에 노을 들어 노을 본다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해남 들 가운데를 지나다가들판 끝에 노을이 들어어찌할 수 없이서서 노을 본다노을 속의 새 본다새는내게로 오던 새도 아닌데 내게로 왔고노을은나를 떠메러 온 노을도 아닌데나를 떠메고 그러고도 한참을 더 저문다우리가 지금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저 노을 탓이다이제는 이승을 이승이라고 부르지 말자고중얼거리며조금씩 조금씩 저문다해남 들에 노을이 들어 문득여러날 몫의 저녁을 한꺼번에 맞는다모두 모여서 가지런히잦아드는 저것으로할 수 있는 일이란가슴속까지 잡아당겨보는 일이다어쩌다가 이곳까지 내밀어진 생의 파란 발목들을덮어보는 일이다그렇게 한번 더퍼보는 것뿐이다내게 온 노을도 아닌데해남 들에 뜬 노을저 수천만 평의 무게로 내개로 와서내 뒤의 긴 그림자까.. 2024. 4. 26.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이정록, 창비시선 404 우주의 놀이 천년 고목도 한때는 새순이었습니다.새 촉이었습니다.새싹 기둥을 세우고첫 잎으로 지붕을 얹습니다. 첫 이파리의 떨림을모든 이파리가 따라 하듯나의 사랑은 배냇짓뿐입니다.곁에서 품으로,끝없이 첫걸음마를 뗍니다.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은영원한 소꿉놀이를 하는 겁니다.이슬 비치는 그대 숲에서고사리손을 펼쳐 글을 받아내는 일입니다.곁을 스쳐간 건들바람과품에 깃든 회오리바람에 대하여. 태초의 말씀들,두근두근 옹알이였습니다.숨결마다 시였습니다.떡잎 합장에 맞절하며푸른 말씀을 숭배합니다. 새싹이 자라 숲이 됩니다.아기가 자라 세상이 됩니다.등 너머, 손깍지까지 당도한아득한 어둠을 노래합니다. 싹눈이 열리는 순간,태초가 열립니다. 거룩한우주의 놀이가 탄생합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성장과 창조의 순환. 생명으.. 2024.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