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 땋기
땅이야말로 진짜 스승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열린 가슴으로 선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생명 세계와 호혜적 관계를 맺는 향식이다. 스승은 당신이 준비되었을 때 찾아온다고 ...... 먼저 주고, 그 다음에 받는다 ..... 아파치어로 '땅'의 어원은 '마음'을 일컫는 단어와 같다. 뿌리를 캐는 것은 땅의 지도와 우리 마음의 지도 사이에 거울을 드는 것이다. 이 일은 침묵 속에서, 노래 속에서, 대지를 어루만지는 손길에서 일어나는 듯하다. 거울을 일정한 각도로 기울이면 길들이 합쳐지고 집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향모 태우기
윈디고는 우리 아니시나베 부족의 전설 속 괴물로, 윈디고는 결코 영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토록 욕망의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 그 고통의 본질은 영영 채워지지 않는 허기다. 윈디고는 먹으면 먹을수록 굶주림에 시달린다. 우리의 두려움과 실패로부터 탄생한 윈디고는 자신의 생존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우리 내면의 심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윈디고는 이기심 때문에 자제력을 잃어 더는 만족할 수 없게 된 인가이다. 탐닉하는 습관은 무엇이든 자멸적이며, 자멸은 곧 윈디고이다. 윈디고 이야기가 생겨난 곳은 공유 기반 사회다. 그곳에서는 나눔이 생존에 필수적이었으며 탐욕스러운 사람은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유 재산의 강박 때문에 외로운 구석으로 추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 세상에 하나뿐인 삶을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일시적인 위안은 되지만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는 물건을 더 많이 사들이는 데 쓰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추방까지도 달게 받아들였다. 그것이 윈디고 방식이다. 우리를 속여 소유가 우리의 허기를 채워줄 거라 믿도록 하는 것. 우리가 정작 갈망하는 것은 속함인데...... 내가 두려운 것은 세상이 뒤집혀 어두운 면이 밝은 면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방종한 이기심은 한때 끔찎한 것으로 지탄받았으나 이제는 성공의 비결로 찬양받는다. 탐욕을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여겼으나 지금의 우리는 탐욕을 존경하라고 요구받는다. 소비 중심의 사고방식은 '삶의 질'을 내걸지만 실은 우리를 속으로부터 파먹는다.
"서구 과학과 기술은 현재 규모의 훼손에는 적절하지만 개념적·방법론적 수단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머리와 손'을 짚고 물구나무선 복원이기 때문이다. 토착 영성이야말로 머리와 손을 인도하는 '심장'이다. ... 문화적 생존은 건강한 땅과, 인간과 땅의 건강하고 미더운 관계에 달려있다. 건강한 땅을 지켜온 전통적 돌봄의 책임은 복원을 아우르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생태 복원은 문화적·영적 복원 그리고 돌봄 및 세계 재생의 영적 책임과 불가분의 관계다." - 원주민환경네트워크 1994년 성명에서
옥수수 사람, 빛 사람 : 마야의 창조 설화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거룩한 존재이자 위대한 사색가들은 이름을 읊기만 하면 세상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은 말에 의해 창조된 동식물로 가득했다. 하지만 거룩한 존재들은 흡족하지 않았다. 그들이 창조한 경이로운 것들 중에서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노래하고 으르렁거릴 수는 있었지만 창조 이야기를 하거나 찬미할 목소리를 가진 것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신들은 인간을 만들기로 했다.
첫 인간들은 진흙으로 빚었다. 하지만 신들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았다. 추하고 흉한 몰골이었다. 말도 할 수 없었다. 걷는 것도 힘겨웠으며 춤추거나 신을 찬미하며 노래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어찌나 푸석푸석하고 어설프고 조잡한지 번식도 하지 못한 채 빗속에서 허물어져버렸다.
그래서 신들은 자신들에게 존경과 찬미를 바치고 세상만물을 먹여 살리고 기를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다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나무를 깎아 남자를 만들고 갈대 속으로 여자를 만들었다. 오, 이들은 유연하고 튼튼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말하고 춤추고 노래할 수도 있었다. 똑똑하기까지 하여 동식물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이들은 논밭과 질그릇과 집과 고기잡이 그물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만들었다. 이 사람들은 좋은 몸과 고운 마음과 고된 노동의 결과로 번식하여 세상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만물을 꿰뚫어 보는 신들은 이 사람들의 심장에 공감과 사랑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노래하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말에는 자신이 받은 성스러운 선물에 대한 감사가 빠져 있었다. 이 똑똑한 사람들은 감사하거나 보살필 줄 몰라서 나머지 피조물을 위험에 빠뜨렸다. 신들은 실패한 인간 실험을 끝장내고 싶어서 세상에 거대한 재앙을 내렸다. 홍수와 지진을 내려보냈으며 무엇보다 종끼리 서로 복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던 나무와 물고기, 진흙이 목소리를 얻어 나무로 만든 인간이 자신들을 멸시하며 슬픔과 분노를 토로했다. 나무는 인간의 날카로운 도끼에 분노했고 사슴은 화살에, 심지어 질그릇도 함부로 불살라지는 것에 분노하여 떨쳐 일어섰다. 지금껏 푸대접받은 창조 세계의 구성원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일제히 궐기하여 나무로 만든 인간을 부쉈다.
신들은 다시 한번 인간 만들기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양의 성스러운 기운인 빛으로만 만들었다. 이 인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며 태양보다 일곱 배나 밝았다. 아름답고 슬기롭고 힘이 아주아주 셌다. 그들은 아는 게 하도 많아서 자기네는 모르는 게 없다고 믿었다. 조물주의 선물에 감사하기는커녕 자신들이 신과 대등하다고 믿었다. 거룩한 존재들은 빛으로 만든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인간을 절멸시켰다.
그리하여 신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아름다운 세계에서 존경과 감사와 겸손함을 품고서 올바로 살아갈 인간을 다시 만들고자 애썼다. 신들은 노란색과 흰색 두 바구니의 옥수수를 곱게 갈아 물과 섞어 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옥수수를 먹였더니, 아, 이들은 좋은 사람이 되었다. 춤추고 노래할 수 있었으며 말이 있어서 이야기를 전하고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들의 심장은 창조 세계의 나머지 구성원에 대한 공장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현명하기에 감사할 줄 알았다. 신들은 지난번의 창조에서 교훈을 얻었기에 선배인 빛 사람들처럼 거만헤지지 않도록 옥수수 사람의 눈에 베일을 씌워 거울에 서린 입김처럼 그들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 옥수수 사람들은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세상을 존경하고 고마워했으며, 그렇기에 대지는 그들을 먹여 살렸다.
감사는 만물을 재생하는 호혜성의 문화를 찬미한다. 이 문화에서 부는 나눌 수 있을 만큼 가진 것이고 부자는 서로에게 이로운 관계를 많이 맺은 사람이다. 게다가 감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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