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미누스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해.
그러나 그는 분명 어느 날, 어떤 곳에선가 태어났어.
빨간 치마를 입은 외제니 갱스보루 부인이 엄마고
옆에 서 있는 장 갱스보루씨가 아빠란 건 확실해.
그런데 만약 그가 다른 날,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저 멀리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다른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그랬다면 자코미누스는 자코미누스가 되지 못했겠지!
폴리카르프나 세자르, 아가통이나 뷔롱이 되었을 수도 있고,
레옹이나 나폴레옹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파란 털의 너구리나 분홍색 점박이 토끼가 되었을지도.
어쩌면 ... 먼 시간과 공간을 건너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네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래, 그랬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책은 지코미누스에 대한 이야기야.
다른 누구도 아닌.
평범한 하루, 그 위로 쌓이는 풍요로운 시간들
공원의 낙엽. 눈 위로 난 발자국. 밀물과 썰물.
달로 떠난 여행. 세상을 알려 준 많은 언어들.
다시 만나자는 약속. 아이들의 노랫소리.
이상하고 아름답고 쓸쓸한 꿈속의 꿈.
아몬드 나무 아래 불어오던 잔잔한 바람.
작고 느린 토끼 자코미누스가 사랑한 것들이에요.
평범한 날들이었지만 자코미누스는 그걸로 충분했지요.
작가의 인사
이 책의 첫 장을 넘긴 너에게 감사해.
나는 자코미누스의 시간을 상상하며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어.
부디 찬찬히 들여다봐 주길 바랄게. 그러면 어느 순간 많은 것들이 보일 거야.
네가 어른이라면 아마도 넌 이 책이 너와 상관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이건 그림책이니까.
정말 그럴까? 그게 얼마나 우스운 생각인지 곧 알게 될 거야.
이 책은 어른을을 위해 쓴 책이기도 하거든.
네가 어린아아라면 어떤 장면들은 좀 알쏭달쏭할지 몰라. 그래도 괜찮아.
생각은 조금만 하고 상상을 많이 해 봐. 글이 모든 말을 하진 못하니까.
혹시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부분을 만난다면
그에 대해 설명해 줄 어른이 한 명쯤은 가까이 있을 거야.
그럼 더 잘된 일이야. 이 책은 함께 보라고 만든 책이거든.
너는 이 책에서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 자코미누스의 삶을 만나게 될 거야.
너는 묻겠지? 왜 하필 자코미누스냐고.
그건 그가 자신의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도 그 삶이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
그럼 넌 이렇게 물을지도 몰라.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 뭐냐고.
이번렌 흠, 흠 헛기침을 몇 버 한 다음 대답할 거야.
나는 다른 책을 만들러 가야 하니 좀 봐 달라고.
그럼 넌 다른 어른을 찾아가 질문하겠지.
나는 네가 아주 잘 해낼 거라고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