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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book)/한강

《눈물상자》 한강 글, 봄로야 그림, 문학동네 어른을 위한 동화 (2008년 5월)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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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아주 오랜 옛날은 아닌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아이가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들은 차츰 아이에게 특별한 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아이의 눈물이었다. 물론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거나, 달리다 넘어져 무릎을 다치거나, 엄마가 큰 소리로 꾸지람을 할 때 울음을 터뜨렸다. 다만 이상한 점은, 보통의 사람들이 결코 예측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었다.

  이른 봄날, 갓 돋아난 연두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거미줄에 날개가 감긴 잠자리 한 마리를 보고는 오후가 다 가도록 눈물을 흘렸고, 잠들 무렵 언덕 너머에서 흘러든 조용한 피리 소리를 듣고는 베개가 흠뻑 젖을 때까지 소리없이 울었다. 하루 일에 지친 엄마가 흔들 의자에 앉아 쉬는 저녁 무렵, 길고 가날픈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진 걸 보면서도 눈물을 흘렸고, 키우던 개가 열 시간 동안 진통을 하며 새끼 여섯 마리를 낳는 걸 지켜본 뒤로는 개들을 볼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눈동자는 칠흑같이 검었고, 물에 적신 둥근 돌처럼 언제나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비가 내리기 직전, 부드러운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이마를 스치거나, 이웃집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뺨을 쓰다듬기만 해도 주르륵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의 엄마는 그런 아이를 걱정했다. 아빠는 울고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화를 냈다. 아이는 많은 시간을 혼자서 놀아야 했다. 친구들이 좀처럼 끼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물단지래, 울보래요. 눈물단지래, 울보래요."

  아이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눈물을 흘렸고, 층계에 걸터앉아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때때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를 구하러 오는 눈물에 감사한다.

2008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