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book)/문학과지성 시인선

《봄비를 맞다》 황동규, 문학과지성 시인선 0604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8. 4.
728x90
반응형

오색빛으로

 

몸 다 내주고 나서

전복 껍데기는 오색빛 내뿜지.

몸 없어진 곳에 가서도 노래하시게.

더 낭비할 것이 사라진 순간

몸 있던 자리 훤히 트이고

뵈지 않던 삶의 속내도 드러나겠지.

좋은 날 궃은 날 가리지 않고

어디엔가 붙어 기고 떨어져서 기는

기느라 몸 없어진 것도 모르고

계속 기고 있는 몸 드러나겠지.

마음먹고 다시 둘러보면

주위의 모두가 기고 있다.

저기 날개 새로 해 단 그도 기고 있다.

뵈든 안 뵈든 묵묵히 기는 몸 하나하나가

오색빛 새로 두르게 노래하시게.

 

팔순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는 황동규 시인의 시 "오색빛으로"는 삶과 죽음,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주위의 모두가 기고 있다. 저기 날개 새로 해 단 그도 기고 있다"는 구절은 높은 위치에 있거나 특별해 보이는 존재들조차도 결국 같은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삶의 본질적인 면에서 모든 존재가 평등함을 의미합니다. 이 시는 희생과 고난을 통해 더 큰 아름다움과 진실을 깨닫게 되고,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단 사과

 

안동 다녀오는 길에 문경에 들려

가을빛 환한 사과밭에 간 적 있었다.

 

맛보기로 내놓은 두어 조각 맛보고 나서

주인의 턱 허락받고

벌레 먹었나 따로 소쿠리에 담긴

못생긴 사과 둘 가운데 하나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물었지.

입에 물린 사과,

입꼬리에 쥐가 날 만큼 맛이 진했어.

베어 문 자국을 보며 생각했지.

사과들이 모두 종이옷 입고 매달려 있었는데

이놈은 어떻게 벌레 먹었을까?

주인 쪽을 봤지만

그는 다른 고객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어.

혹시 이 세상에서 진짜 맛 들려면

종이옷 속으로 벌레를 불러들일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제 몸 덜어내고

벌레 먹은 과일 소쿠리로 들어가야 하는가?

초가을 볕이 너무 따가웠다.

상자 하나를 차에 실었다.

 

황동규 시인의 시 "단 사과"는 겉모습과 상관없이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입에 물린 사과, 입꼬리에 쥐가 날 만큼 맛이 진했어"라는 구절은 겉보기에는 못생기고 결함이 있는 사과가 실제로는 가장 진하고 풍부한 맛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겉모습이나 외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진정한 가치와 진리를 찾아야 함을 말합니다. "혹시 이 세상에서 진짜 맛 들려면 종이옷 속으로 벌레를 불러들일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라는 구절은 삶의 진정한 맛과 의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결함이나 고난이 필요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제 몸 덜어내고 벌레 먹은 과일 소쿠리로 들어가야 하는가?"라는 구절은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부를 희생하거나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이는 성장을 위해서는 고난과 희생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단 사과"는 겉보기에는 완벽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에서 오히려 진정한 가치와 맛을 발견할 수 있으며, 결함과 고난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외적인 조건보다는 내적인 성찰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뒤풀이 자리에서

 

지방 강연 끝낸 후 뒤풀이 자리에서 그 지역 신문기자가

거반 빈 잔에 맥주 새로 부어주며 물었다.

혹시 돌아가실 때 하실 말씀

준비된 게 있습니까?

강연 끝내고 돌아가며

남기고 싶은 말 있느냐 묻는다 생각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청중의 반응도 참 좋았고.'

대답하자 아차! 기자의 얼굴에 금시

그런 질문 아니라는 표정이 그어졌다.

맥주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시고

다시 답했다.

'살아 있는 게 아직 유혹일 때 갑니다.'

 

시인은 기자의 질문은 죽음을 앞둔 마지막 말에 대한 것이었지만, 시인은 처음에 이를 잘못 이해합니다. 이 오해를 통해 시인은 죽음에 대한 준비와 인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 순간까지도 삶의 유혹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살아 있는 게 아직 유혹일 때 갑니다"라는 구절은 삶의 모든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삶의 유혹과 즐거움을 충분히 느낀 후에야 비로소 삶을 마무리할 준비가 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황동규 시인은 '뒤풀이 자리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과 철학을 담담하게 표현하며, 삶의 순간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즐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래동안 산을 오르고 글을 읽고 막걸리 잔을 나누며 딱 그정도의 건강으로 살아 있는 게 아직 유혹일 때 조용히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4년 전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를 상재할 때 앞으로는 좀 건성건성 살아도 되겠구나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그ㅎ렇게 놔두지 않았다. 늙음이 코로나 글러브를 끼고 삶을 링 위에 눕혀버린 것이다. 이 시집의 시 태반이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