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book)/문학과지성 시인선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변혜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593

by Sisnaajinii(씨스나지니) 2024. 4. 17.
728x90
반응형

하늘과

             땅

사이에

             뭐가 있더라?

 

 

  인부는 먼저 공사를 진행 중이다. 푸른 초원 위에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집을 짓는 것은 나의 오래된 소망이었

다. 벽돌로만 집을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나를 위

해 기꺼이 해주겠다고 인부는 내가 가진 것을 아주 조금

만 받겠다고 말해주었다. 땀을 흘리며 줄눈을 바르는 인

부의 목덜미가 아름답고, 부지런히 구름을 캐내는 희고

푸른 하늘이 아름답고, 이 모든 아름다움은 오후에 상장

했다가 저녁이 되면 폐지될 예정이다. 아름답다는 말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

각을, 생각을 그만두는 마음 한편에 앉혀두고서. 기다려.

얌전한 개가 된 생각애개 명령한다. 지급 대금을 공란으

로 남겨둔 인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그

는 내게 첫눈에 반했는지도 모른다. 하늘로 가지를 뻗은

나무가 땅을 그러쥐듯이, 한쪽 무릎을 푸른 초원에 단단

히 뿌리박은 채, 내게 구애해올지도 모른다. 인부는 어느

새 절반 이상의 공사를 완성했고, 나의 붉은 벽돌집이 윤

곽을 드러내고 있다. 초원에서 자란 것들은 나의 아름다

운 초원,이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어항 속 열대어의

마음을 가진 채. 나는 지불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어쩌

면 인부는 내가 지불할 수 없는 것을 대금란에 적을지도

모른다. 붉은 벽돌집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 나머지, 내

것을 송두리째 빼앗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갈지도.

인부는 나를 자신의 앞으로 데려간다. 당신의 집이 완성

되었습니다. 기다리세요. 그는 계약서의 공란에 적었다.

집은 내가 앉기에 좋았으며, 웅크려 누울 수 있을 만큼

안락했다. 이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면 되겠다.

그렇지?

 

  "하늘과 땅 사이에 뭐가 있더라?"는 한 여성이 오래된 꿈이었던 붉은 벽돌집을 인부가 짓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인부는 여성에게 구체적인 물질적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그녀는 이를 통해 인부의 의도와 감정을 고민하게 됩니다. 인부의 땀방울과 작업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그녀의 밈한 감정의 변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은 말 그대로 그 둘을 잇는 공간, 즉 인간의 삶과 꿈, 그리고 그것을 이루려는 과정 자체를 상징할까요? 이 시에서 이 공간을 통해 인간의 소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와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것일까요? 여성이 오랫동안 꿈꿔온 붉은 벽돌집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꿈과 현실의 접점을 상징할까요? 여성과 인부 사이의 관계는 이 꿈을 현실로 구현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교류와 상호작용을 드러낸 것일까요?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정서적인 동요와 인간 관계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손꼽아 기도하던 날이 도래하였고, 그리하여 모든 이

들이 엽총과 포도 한 송이를 손에 쥐고 세계를 떠났다.

그것은 풍요를 바라는 의식으로, 이제 와인은 틀렸군. 창

밖을 보다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이번 시도 실

패할 것이다. 세계에 홀로 남겨진 사람이 울거나 결심하

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의 칩거에는 사람들의 눈을 잡

아둘 여지가 없다. 떠나지 않으려던 게 아닌데. 하필 잠

이 많아서. 하릴없이 나 홀로 이렇게 창문 바깥을 바라

보며 서 있는 것인데. 하늘에서는 흰 것과 검은 것이 쏟

아져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을 무無로 되돌리고 있었다. 충

분히 절망해야 하는데. 무릎을 꿇고 주먹을 쥐어야 하는

데. 창문 밖에서 쏟아지는 것이 눈인지, 비인지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자, 나는 불안하게 방 안을 서성이기 시작하

였으며, 그것을 알기 전에는 도무지 눈물 같은 것은 쏟을

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울고 싶은 것이

다. 그러는 동안에도 읽는 사람들도 있다. 울기 시작한다

면 나는 바빠질 것이다. 바빠서 가슴을 두드리며 실패한

이야기를 읽는 자들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것이

다. 거울을 보아야 하고, 최대한 아름다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 뺨에 흐른 눈물을 최대한 맛본 뒤에, 눈물의 맛을

적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눈물을 닦아주려는 자가 뒤에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눈물 흘리는 이유를 경멸하는

자가 뒤에 있을 것이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 눈물을 옹호

하려는 자 또한 있을 것이다. 눈물 흘리는 것을 아름답다

고 여기는 자가 있을 것이다. 멸망한 세계에 너무 많은

자들이 남아 있어서 세계는 반쯤 질려버릴 것이다. 그러

는 동안 그리고 또 그러는 동안...... 나는 눈으로 길러낸

것들을 다시 눈 속으로 넣겠다. 창밖에 쏟아지는 것이 여

전하고, 나는 그것이 눈인지 비인지 여전히 모른다. 아직

까지 페이지를 덮지 않은 사람이 남아 있다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대답해주는 사람이 또한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고, 그것은 이야기

가 끝나버려서 더 이상 적지 못한다.

 

  멸망한 후의 세계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생각은 계속되고 복잡성을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필이면 잠이 많아서, 세계의 모든 이들이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상태에서, 창밖으로 쏟아지는 것이 눈인지 비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과 불안. 그 불안감은 울음으로 이끕니다. 그렇지만 그 울음이 무엇 때문이진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자각하고 내면의 힘을 발휘하여 자신을 이해하고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은 근복적으로 중요합니다. 결국 이러한 자각과 내면의 힘은 우리가 혼돈과 절망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지 않을까요?

 

 

탑독

 

  따듯한 빵을 손에 쥔 사람들이 영원히 배고프지 않은

세계입니다. 한 송이 백합을 꺽은 것은 나인데. 모든 이

들이 뒤돌아보는 정원입니다. 오늘은 벽장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꺼내 젖은 몸을 닦아주었습니다. 울음을 그

친 사람은 나의 정원에 썩 잘 어울려요.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는 자꾸만 잊어버리고, 얼굴을 잃어도 마

음이 계속됩니다. 이것은 지속 가능한 사랑이에요......

그런 말을 중얼거리다가 책을 펼치면, 페이지 속의 모든

단어가 바뀌어 있어요. 너를 주고 이 세계를 샀습니다.